전쟁까지 일으킨 시대의 향신료 육두구, 그 매력은?
17세기 금보다 귀했던 향신료, 귀족들의 부의 상징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네덜란드, 육두구 산지 소유하고 뉴욕 넘겨
코로나19 이후 향신료 수요 커지며 육두구 관심도 증가
음식의 향미 높이고 비린내 제거에 탁월
현재 향신료는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지만 중세 유럽인들에게는 ‘부의 상징’이었다. 명품 브랜드처럼 자신의 부를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값비싼 사치품이었던 셈이다.
대부분 아시아에서 생산됐기에 향신료는 ‘천국의 향기’로 불리며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다. 향신료에 대한 목마름으로 15세기 말부터 19세기까지 유럽 국가들은 아시아 지역의 향신료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특히 향신료 중에서도 넛맥(nutmeg)으로 불리는 육두구는 포르투갈에 의해 17세기 유럽으로 전해졌다. 당시 금값에 달했던 후추보다 대략 10배나 비싼 몸값을 과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는 뉴욕을 영국에 내어주는 최악의 협상 실수(?)까지 저지르고 만다. 육두구 산지였던 인도네시아 반다제도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영국과 전쟁을 벌였고, 승리국 네덜란드는 육두구 산지 반다제도와 사탕수수 산지 수리남의 소유권을 인정받는 대신 뉴욕을 영국에 넘겨준 것이다.
이처럼 당시엔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녔던 육두구는 오묘한 향기에 그 매력이 있다. ‘사향 냄새 나는 호두’라는 뜻을 가질만큼 독특한 향을 지녀 음식의 풍미를 한 껏 올려준다. 모양은 호두처럼 생겼다. 호두와 같은 열매 속 흑갈색 씨앗 부분을 갈아서 사용한다.
후추보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고급스러운 향미를 지녔으며, 특히 달걀이나 고기의 비린내 제거에 탁월하다. 푸딩처럼 달걀을 이용한 디저트나 음료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달걀과 우유를 기반으로 만드는 ‘에그녹(Eggnog)’ 칵테일이 대표적이다. 에그녹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즐겨 마시는 음료로, 달걀의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육두구를 넣는다. 에그녹처럼 칵테일이나 음료에 활용하면 향기로움까지 더할 수 있다.
원산지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육두구는 현지 음식에서 자주 활용되는 향신료로, 인도네시아 음식 맛의 비결로 언급된다. 미국 방송사 CNN 선정,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한 렌당과 나시고랭에도 육두구가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다른 향신료처럼 몸에 이로운 작용도 한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의 동물실험(2019)에서는 육두구의 항산화물질인 리그난(폴리페놀계 화합물)이 노화를 늦출 뿐만 아니라 근육을 재생하고, 운동 능력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익순·최종순 박사 연구팀은 “리그난 화합물의 강력한 노화 억제 기능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항해 시대를 이끈 동시에 전쟁까지 일으켰던 향신료 육두구가 이후에는 세계사에서 존재를 감춰버렸지만, 최근에는 관심이 점차 높아지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확산 이후 발이 묶인 전 세계인들이 에스닉푸드(이국 음식) 레시피에 주목하고, 면역력 증진 성분이 관심을 받으면서 향신료 사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내 또한 레스토랑에서만 맛보던 이국 음식을 집에서 만들기 시작하면서 육두구나 정향과 같은 향신료 사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리얼푸드=육성연 기자] gorgeou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