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대가’에서 부도 처리되면서 처참히 몰락한 사업
국내에서 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업으로 꼽히는 현대그룹.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갖췄던 삼성가와 달리 농사를 짓던 정주영 회장이 소를 팔아 세운 자수성가형 그룹으로도 유명하죠. 1947년 설립된 현대 그룹의 대표 사업은 자동차 사업입니다. 하지만 국내 대표 기업으로 자리 잡기까지 수많은 사업에 도전했죠. 오늘은 현대그룹에서 작심하고 운영했지만 결국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한 계열사와 사업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1983년 현대그룹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며 현대전자산업(주)를 설립했습니다. 현대 전자에선 반도체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 영역에 도전했는데요. 그중 하나가 게임 사업입니다. 북미판 패미컴(NES)를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해 게임보이, 슈퍼패미컴, 닌텐도 64까지 닌텐도의 하드웨어를 정식 수입했습니다.
현대전자는 ‘슈퍼 마리오와 닌자 거북이’, ‘드래콘 퀘스트 시리즈’ 등을 수입하며 인기를 얻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닌텐도 관련 상품 판매가 부진해졌는데요. IMF 외환위기까지 함께 터지며 결국 현대전자는 게임 사업을 철수하게 됩니다.
현대 그룹에서 독립한 사업도 있습니다. 현대전자 정보기기 사업본부에선 PC 사업을 개시했죠. 이후 정보기기 사업부는 (주)현대멀티캡으로 분사되며 현대그룹 품을 벗어났는데요. 2000년 현대전자 지분까지 매각해 완전한 독립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현대 컴퓨터(주), 현대멀티캡(주)로 상호를 변경하며 회사를 재창업하기도 했죠.
현대전자는 삼성, LG와 함께 휴대폰 생산에도 뛰어들었는데요. 1994년 ‘시티맨’이라는 휴대폰을, 1997년 ‘현대 걸리버’란 이름의 휴대폰을 내놓았습니다. 2000년부터 ‘네오미’라는 브랜드를 쓰기 시작해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구 현대전자)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현대큐리텔로 분사했습니다. 현대큐리텔은 연간 5백만 대 생산 규모를 자랑하며 국내 업계 3위를 차지했지만 2002년 업계 5위였던 팬택에게 인수당했죠.
1999년 현대전자와 LG 반도체의 빅딜로 탄생한 하이닉스 반도체는 부채가 15조 8000억에 달하는 거대 부채기업이 되었습니다. 2001년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 반도체로 사명을 바꾸며 메모리 사업을 제외한 30여 개의 사업부를 전부 분사시켰죠.
위에서 언급한 현대큐리텔, 현대 컴퓨터 역시 당시 분사된 사업부입니다. 하이닉스 반도체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손을 떼고 메모리 생산에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2003년 자금 부족으로 위기를 맞았죠. 불량품, 수율에 민감한 반도체 업계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반도체 생산 기계 재사용으로 생산 수율을 올린다는 전략을 세웠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다 2011년, 하이닉스 주주협의회에서 하이닉스 매각을 논의하며 새 주인을 찾게 되었는데요. SK 그룹과 STX가 인수 경쟁에 참여했으나 STX의 인수 의사 철회로 SK 텔레콤이 3조 4천억 원대에 단독 입찰에 성공했습니다. 결국 2012년 하이닉스 반도체는 SK 그룹에 편입되었으며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했죠. 높은 매출과 영업이익을 자랑하던 SK 하이닉스는 반도체 업황 악화로 부진한 영업 실적으로 고전 중입니다.
현대그룹은 연예, 오락채널 HBS(현대 방송)을 운영했습니다. 당시 고정 번호 19번이었던 이 채널은 대부분의 프로그램 스폰서가 현대그룹 계열사의 광고였죠. SBS와 공동제작한 드라마 <사랑하니까>의 실패와 (구) iTV 개국 첫 연속극 <가족>을 제작, 납품했으나 (구) iTV의 경제난으로 일일극이 폐지되어 경영 악화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요. 이후 넥스트미디어 코퍼레이션에 인수되어 (구) NTV로 이름을 변경해 여러 시도를 감행했지만 역시 실적이 부진했습니다.
이후 현 CJ E&M 방송 사업 부문에서 NTV를 인수했죠. 하지만 지상파 3사의 모든 드라마 및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해온 드라마넷과의 경쟁에서 밀려 영화 전문 채널로 장르를 완전히 변경했습니다. 그렇게 Home CGV라는 새로운 채널명으로 탈바꿈하게 됐죠. 물론 초반에는 OCN에 밀렸지만 아날로그 케이블 TV 보급형 상품을 통해 송출되며 세계 주요 영화채널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됩니다. 현재는 채널 CGV라는 채널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대 그룹의 주요 계열사 중 하나였던 현대상선은 해운업의 침체기에 워크아웃으로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었습니다. 당시 한진해운, 현대상선, STX팬오션은 빅 3라 불렸던 업체들 역시 적자를 면하지 못했는데요. 방만 경영, 고가 장기 용선 계약 등으로 흔들리는 해운업에 현대상선 역시 사태가 매우 심각해지며 법정관리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했던 현대상선을 지키기 위해 현정은 회장이 300억의 사재를 출연하는 등의 노력을 이어갔죠. 그럼에도 결국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이 감자 및 출자전환을 통해 40% 이상의 주식을 확보하며 현대그룹의 손을 떠나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2020년 4월 디 얼라이언스 (독일의 하팍-로이드, 일본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 대만 양밍해운이 속해있는 해운동맹에 가입 예정입니다.
1989년 대한 화재가 지분 51%를 출자해 한국생명보험으로 설립해 시작한 현대 생명. 1994년 현대그룹이 지분을 점차 사들였고 2000년 조선 생명과 정식 인수합병되어 현대생명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요. 하지만 타 보험사와의 경쟁에서 열세를 보이며 2001년 삼신 올스테이트 생명, 대신생명과 함께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되어 계약이 다시 대한 생명으로 넘어갔습니다. 이후 파산 선고를 받은 후 퇴출되었고 2012년 법인까지 소멸되었죠.
현대카드 겸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정태영 역시 보험업에서 부진을 겪었는데요. 정태영은 2012년 현대차그룹에서 녹십자 생명을 인수하며 시작한 현대라이프생명(현 푸본현대생명)에 투입됩니다. 그는 상품차별화와 질적 향상에 치중하며 마케팅 등에 힘을 썼지만 영업활동의 중요성을 간과했는데요.
이후 적자를 겪어오다 2017년 희망퇴직과 지점 축소, 법인대리점 채널 판매 제휴 중단 등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결국 총 78개 지점을 폐쇄했고 2000여 명에 달하던 전속 설계사들 역시 대부분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2018년 9월 대만 푸방금융그룹이 유상증자를 통해 최대 주주에 오르며 현재까지 푸본현대생명으로 재출범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