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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by 피클코

공중분해 되었던 곳이 1위...다 아이유 덕분이었다

창업 73년 만에 맞은 부도

소주시장에서 독점력 키워

처음처럼과 치열한 경쟁

진로의 새 주인 '하이트진로'

요즘 뉴트로가 흥하고 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뉴트로 마케팅을 앞세운 회사가 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70·80년대 블루 톤의 진로 라벨을 기반으로 과거 디자인을 복원하고 재해석한 원조 브랜드 ‘진로’를 출시하여 20·30대 층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지난 5월까지 3억병 이상 판매되는데요.

진로의 인기몰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30·40대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에겐 신선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진로그룹은 창업 73년 만에 부도를 맞이하였던 그룹인데요. 공중분해되었던 진로가 어떻게 현재 소주업계 1위를 지키고 있는 걸까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로의 시작 ‘진천양조상회’

진로의 시작은 평안남도 용강군 진기동이었습니다. 장학엽 회장은 1924년 진기동의 ‘진’을 따서 진천양조상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소주 증류 시 술방울이 이슬처럼 생긴다 해서 이슬 ‘로’를 딴 진로라는 소주 브랜드도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소주 이전까지는 사람들은 주로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막걸리는 장기 보관이 불가능하고 부피가 컸다는 단점이 있었는데요. 장기 보관도 가능하고 운반하기도 쉬운 소주가 나오자 소주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보편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장학엽 회장은 해방 뒤 북한 지역에서 장사를 해왔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이끌고 월남하게 된 것이었죠. 그리고는 1953년 휴전 후 서울로 상경해 영등포공장에 서광주조(주)를 설립해 ‘진로’를 되살려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진로그룹의 마스코트는 평안도 지역에서 복을 상징하는 원숭이였습니다. 하지만 월남 이후 장수의 상징인 두꺼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진로는 소주 업계 1위가 아니었습니다. 호남 기반으로 소주 시장을 장악해온 삼학소주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삼학은 진로에게는 버거운 상대라고 평가되었습니다. 진로그룹은 마케팅에 열을 올렸습니다. 두꺼비가 그려진 병뚜껑을 가져오면 재봉틀이나 금두꺼비를 주는 등의 파격적인 고객 경품 행사를 진행하며 마케팅에 총력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삼학이 탈세 사건에 연루돼 폐업하게 되자 진로의 독주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진로는 소주 시장 1위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전국구 소주시장 개막

전국 소주시장의 49% 정도를 진로가 장악하였고 수도권은 70%를 넘으며 진로는 소주시장에서 독점력을 키워갔습니다. 그러던 중 정부가 지방 소주업체 육성을 위해 1976년 자도주 의무 구입 제도를 시행하게 됩니다. 이는 주류도매상들이 지역 소주를 50% 이상 구매하도록 하는 정책이었는데요. 이로 인해 지역 소주의 경쟁력이 높아지게 됩니다. 강원도는 경월소주, 경복 금복주, 광주 보해소주 등이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역 소주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불평등 경쟁을 초래한다는 의견이 쏟아지자 헌법재판소는 1996년 자도주 의무구입 제도 위헌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로 인해 전국구 소주전쟁 시대가 개막하게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습니다. 수도권 시장이 넓어지자 진로의 독점력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두산주류 처음처럼과 경쟁 본격 시작

유튜브 @ Spinel CAM

두산주류와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두산주류는 톱스타 이효리를 내세워 처음처럼을 출시하였는데요. 소주 업계 최초 최단기간 100만 상자 판매를 세우게 됩니다. 이때부터 처음처럼과 참이슬의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진로와 두산의 패권 싸움은 점점 치열해졌습니다. 두 그룹은 허위사실 유포나 비방 광고로 맞대응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계속하였습니다.

최종부도 처리, 장진호 회장의 사망

탄탄대로를 걷던 진로에게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1997년 진로그룹은 최종 부도 처리가 되었습니다. 주가는 폭락했고 환율과 금리는 올랐습니다. 창업주 2세인 장진호 회장이 1988년 취임 후 탈주류 산업을 선포하며 무리한 사업 다각화를 벌인 결과였습니다. 진로는 시외버스터미널 사업, 케이블 TV, 가전제품 업계 등에 진출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내몰리게 된 것입니다.

1990년 국제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투자전문컨설턴트인 골드만삭스가 진로그룹에 접근합니다. 부도를 막아주겠다는 명목이었는데요. 진로에게 자문을 해준다는 빌미로 그룹의 기밀을 공유 받게 됩니다. 골드만삭스는 진로가 흑자 도산 상태인 것을 알아낸 후 채권을 값싸게 사들입니다. 총 3400억 원어치의 채권을 사들인 골드만삭스는 최대 채권기업이 된 것이죠. 진로가 공중분해된 후 분식회계, 비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던 장진호 회장은 돌연 해외로 도피합니다. 그러던 와중 중국에서 베이징에서 장진호 회장은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인수전과 진로의 새 주인

진로의 새 주인을 찾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인수전이 펼쳐졌습니다. 외국자본까지 진로를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요. 아사히·산토리·기린 등 일본의 대형 주류 업체도 입찰에 뛰어들었습니다. 진로의 매출 규모는 1~2조에 불과하지만 이익률이 높다는 이유로 많은 기업들이 군침을 흘렸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롯데·CJ·두산의 삼파전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입찰에 참가한 업체 중 가장 작은 외형을 지닌 하이트가 진로의 새 주인이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2005년 진로와 하이트맥주의 합병으로 하이트진로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진로소주는 세계 증류주 시장에서 10년 연속 판매 1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명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창업 2세가 맞은 위기로 진로그룹은 결국 부도를 맞았습니다. 진로그룹은 사라졌지만 국민 술이라는 진로의 브랜드의 명성과 가치는 우리 곁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 박다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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