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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왕후' 코미디에 조선은 이용당했다?

19금 손짓 묘사하는 조대비부터 '지라시' 된 조선왕조실록까지

역사 및 문화재 전문가들 한목소리로 과도한 희화화 우려

역사 왜곡 위험성에 세계유산 가치 폄훼 문제 지적 받아

서경덕 교수 "중국 역사 왜곡과 충돌 있는 시기…조심했어야"

노컷뉴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방송 캡처)

높은 시청률의 기쁨도 잠시,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가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방송 2회 만에 문화유산 및 실존 인물 희화화를 두고 문제가 제기된 탓이다.


'철인왕후'는 불의의 사고로 대한민국 대표 허세남 영혼이 깃든 중전 김소용과 두 얼굴의 임금 철종 사이에서 벌어지는 스캔들이 담긴 코믹 판타지 사극 드라마다.


지난 12~13일 방송된 1·2회에는 장봉환(최진혁 분) 영혼이 들어간 중전 김소용(신혜선 분)이 허수아비 왕처럼 보이는 철종(김정현 분)과 처음 만나 울며 겨자 먹기로 부부의 연을 맺는 모습이 그려졌다.


시청률 성과는 좋았다. 대한민국 허세남이 된 김소용과 능글맞은 조선 임금 철종의 쇼윈도 부부 '케미'와 각종 등장인물의 'B급 코미디'가 돋보였다. 1회는 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동일) 시청률을 기록해 역대 토일극 첫 방송 시청률 2위에 올랐고, 2회는 이보다 0.8%P 상승한 8.8%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제작발표회 당시 연출을 맡은 윤성식 PD는 '철종'을 비롯해 실존 인물을 다뤘다는 지적에 대해 "'철인왕후'는 코미디를 표방한 판타지 퓨전 사극이다.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보다는 현대 영혼이 특정 역사에 들어갔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라"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거 시대 인물들이 현대 영혼을 가진 인물을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역사에 파동이 생기길 바랐다. 조선 시대 가장 쇠퇴했던 시기의 왕, 철종 시대에 그런 파동을 일으키면 어쩌면 조선이 새로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허구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전제에도 우려했던 역사 왜곡 논란은 피하기 어려웠다.


일각에서 문제로 꼽은 장면은 조선왕조실록을 두고 "한낱 '지라시'"로 칭하는 김소용의 대사와 조대비(조연희 분)가 철종과 김소용의 잠자리를 노골적인 손짓으로 표현하는 부분이다.


이들 시청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의 가치 폄훼와 실존 인물이자 조선 시대 왕족인 신정왕후(조대비)에 대한 자극적인 희화화를 비판했다. 더구나 김소용에 깃든 장봉환은 상당한 역사 지식을 가진 인물로 그려져 관련 묘사가 모순될 뿐만 아니라 역사적 배경이 코미디만을 위한 도구에 그친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역사 및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 역시 한목소리로 과도한 희화화가 부를 부정적 영향을 우려했다. 아무리 코믹한 연출을 위해 쓰였다지만 이런 요소들이 역사 왜곡 위험성을 높인다는 의견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14일 CBS노컷뉴스에 "이미 실존 인물 등장에 '허구적 이야기'를 앞세운 것 자체가 일종의 문제 방지 차원이라고 본다. 문제가 있을 것을 알면서도 밀어붙인 것 아니냐.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황 소장은 "철종 시대나 조선왕조실록은 아직 더 연구할 부분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희화화하거나 폄훼하는 묘사가 들어가면 당연히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를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하는 게 맞다. 아니면 완전히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켰어야 했다"고 제작진의 역사 인식을 꼬집었다.


한 문화재 관련 전문가 또한 "허구적 요소가 들어간 콘텐츠 제작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네스코'로부터 인정받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희화화한 지점은 안타깝다"라고 짚었다.


신정왕후의 후손인 풍양조씨 종친회는 '철인왕후' 내 인물 묘사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풍양조씨 종친회 측은 같은 날 CBS노컷뉴스에 "인물소개부터 (신정왕후가) '온갖 미신을 믿는' 캐릭터로 나와 있어 어떻게 대응할 지 고려 중이었다"면서 "아무리 코미디이지만 실존 인물에 대한 모욕적이면서도 저속한 표현은 심히 유감이며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류 콘텐츠의 광범위한 전파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국내 드라마들은 '4차 한류'로 불릴 만큼 넷플릭스 등 다양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와 비례해 한류 콘텐츠 영향력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역사 관련 내용은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을 대상으로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이 한창인 시기라 더욱 그렇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코믹한 터치를 넣는다 하더라도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실존 인물 등에 대한 표현은 조심스러웠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무엇보다 현재 한복, 아리랑, 김치 등을 두고 중국의 억지 주장, 역사 왜곡으로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역사적 사실의 중요성을 배제할 수 없고, 어떤 루트로든 한류 드라마를 굉장히 많이 보기 때문에 인식 영향 차원에서도 유의할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철인왕후'는 중국 인기 드라마 '태자비승직기'의 한국판이다. 방영 전에는 '태자비승직기'의 원작 소설작가가 고려인, 한국인 멸칭 등을 다른 소설에 쓴 것으로 알려져 혐한 논란 작가의 드라마화된 작품을 리메이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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