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나타난 구세주' KBO리그 대체 외인들
[스잘알]
1999년 롯데 기론·2000년 SK 브리또, 대체 선수로 합류해 KBO리그서 경력 이어가
2002년 삼성 엘비라, 대체 선수로 합류해 평균자책점 1위 차지…KT 로하스, MVP로 성장
2013년 삼성 카리대 3경기 2⅓이닝 7실점 방출·2017년 LG 로니, 2군행 지시에 팀 이탈 등 실패 사례도
2002년 삼성 라이온즈 대체 선수로 합류한 나르시소 엘비라. 그해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프로야구에서 외국인 선수는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잘 뽑은 외국인 선수는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잘못된 선택은 시즌 농사를 아예 망칠 수도 있다.
첫 뽑기가 실패로 귀결되더라도 남은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선수 교체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최대 3명의 외인을 등록할 수 있는 현 규정에서는 2회에 한해 추가등록을 할 수 있다.
시즌 중반 합류하는터라 리그 적응 등의 변수가 크지만 대체 외국인 선수가 잭팟을 터뜨렸던 사례도 제법 존재한다.
처음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1998년부터 올해까지 25시즌 동안 숱한 선수들이 대체 자원으로 KBO리그를 오갔다.
대체 선수로 합류해 타이틀 홀더까지
초창기에 가장 눈에 띄는 대체 외국인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의 에밀리아노 기론이다. 기론은 1999년 5월 마이클 길포이를 대신해 롯데의 일원이 됐다.
구속은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기론은 체인지업이라는 무기를 발판 삼아 조금씩 입지를 넓혀갔다. 1999시즌 5승1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30의 준수한 성적을 냈고, 삼성 라이온즈의 플레이오프에서도 맹활약해 기적 같은 4승3패 역전에 기여했다.
재계약에도 성공한 기론은 이듬해 10승(8패) 투수가됐다. 롯데팬들은 팀이 위기에 빠지면 묵묵히 등장해 공을 던지는 그에게 '고무팔'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2001년 롯데에서 10경기를 뛴 뒤 방출된 기론은 2003년 한화 이글스의 부름을 받고 또 다시 대체 선수로 뛰기도 했다.
틸슨 브리또도 대체로 시작해 오랫동안 KBO리그에서 경력을 이어간 케이스다.
2000년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전신)의 유격수로 중도 등장한 브리또는 그해 103경기에서 타율 0.338로 타율 3위를 차지했다. 2001년에도 122경기에 출장해 타율 0.320, 22홈런, 80타점으로 제 몫을 해냈다.
이후 브리또는 삼성(2002년, 2003년), SK(2004년), 한화 이글스(2005년) 등 3개팀이나 거치면서 대체 선수 성공 신화를 써내려갔다. 2004년에는 삼성전에서 경기 중 상대 더그아웃을 습격하는 기상천외한 장면까지 남겼다.
2002년 도중 삼성 유니폼을 입은 나르시소 엘비라는 빠르게 KBO리그에 안착해 22경기에서 13승6패 평균자책점 2.50을 수확했다. 대체 선수로 합류했음에도 평균자책점 1위까지 차지했다. 외국인 선수가 KBO리그에서 평균자책점 타이틀 홀더가 된 건 엘비라가 처음이었다.
그해 LG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승리를 따내며 삼성의 우승 숙원을 푸는데 일조했다. 그렇게 잊혀졌던 엘비라는 2020년 멕시코에서 괴한의 총격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올드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수원=뉴시스】 19일 오후 수원야구장에서 프로야구 현대유니콘스대 두산베어스 경기에서 현대 7회말 2사상황 브룸바가 좌월솔로홈런을 날리고 있다. /이동원기자 dwlee@newsis.com |
2003년 현대 유니콘스의 선택은 팀의 운명을 넘어 KBO리그 판도까지 뒤흔들었다. 현대는 마이클 플랭클린을 대신해 미래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이 될 클리프 브룸바를 택했다.
첫 해 70경기에서 타율 0.303, 14홈런으로 예열을 마친 브룸바는 2004년 타율 0.343, 33홈런, 105타점으로 30홈런-100타점 고지를 동시에 밟았다.
2년 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2007년 돌아온 브룸바는 현대의 마지막 4번 타자로 활약했다. 2008년 우리 히어로즈, 2009년 히어로즈를 끝으로 한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MVP가 된 로하스, 구단 최장수 외국인 로맥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0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2차전 두산 베어스 대 kt 위즈의 경기, 3회말 2사 주자없는 상황 로하스가 솔로홈런을 친 뒤 기뻐하며 홈으로 향하고 있다. 2020.11.10. myjs@newsis.com |
대체 외인 대박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KT 위즈 출신 멜 로하스 주니어는 대체의 꼬리표를 떼고 재계약을 체결한 것을 넘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했다.
2017년 KT와 연을 맺은 로하스는 입단 첫 해 83경기서 타율 0.301, 18홈런 56타점으로 예사롭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듬해는 43홈런, 114타점으로 더욱 펄펄 날았다.
최고의 한 해는 2020년이었다. 타율 0.349, 47홈런 135타점 116득점, 출루율 0.417, 장타율 0.680으로 홈런·타점·득점·장타율 부문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해 MVP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KBO리그의 활약을 발판 삼아 로하스는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와 2년 최대 550만 달러(약 60억원)짜리 대형 계약을 맺었다.
로하스와 같은 해 SK에 입단한 제이미 로맥은 5시즌 동안 뛰며 매해 20홈런을 넘게 쳤다. 구단 최장수 외국인 선수로 뛰다 선수 은퇴도 SK에서 했다.
'꽝 이어 또 꽝' 대체 외인이 남긴 악몽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 리그 KT 위즈 대 LG 트윈스 경기, 10회말 원아웃 주자 만루에서 LG 로니가 끝내기 안타를 치고 있다. 2017.08.16. park7691@newsis.com |
대체 외인이 성공만 가져다 준 건 아니었다.
LG는 2000년 브렌트 쿡슨을 대체 외국인 타자로 영입했다. 그해 쿡슨은 20경기에서 6홈런을 쳤지만 타율은 0.222로 저조했다. 손가락 부상까지 겹쳐 방출을 피하지 못했다.
2003시즌을 앞두고 LG는 다시 한번 쿡슨을 데려왔다. 놀랍게도 동명이인이 아닌 2년 전 자신들을 괴롭게 했던 그 쿡슨이었다.
이번에도 LG와 쿡슨은 함께 웃지 못했다. 쿡슨은 23경기 타율 0.214, 2홈런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다시 한번 시즌 중 옷을 벗었다.
삼성이 2013시즌 대체 선수로 데려온 예스마일린 카리대도 역대 최악의 외국인 선수에 이름을 올릴 만한 이력을 가졌다. 선발 데뷔전 후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는 등 로테이션 한 자리조차 지켜주지 못했다.
결국 3경기서 2⅓이닝만 던지고 1패 7실점의 초라한 성적만 남겼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된 그는 시즌 후 아시아시리즈 불참까지 선언, 팀을 더욱 황당하게 했다.
2017년 LG가 루이스 히메네스의 대체 외국인 타자로 계약한 제임스 로니는 갑작스런 이탈로 팀을 당혹스럽게 한 케이스다. 23경기에서 타율 0.278, 3홈런 12타점으로 저조한 성적을 내자 2군행 통보를 받았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구단은 결국 그를 임의탈퇴했다.
메이저리그 경력도 KBO리그 적응을 보증하진 못한다. 2018시즌 중 두산은 빅리그에서 29홈런을 때려낸 스캇 반 슬라이크를 영입했다. 큰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다. 반 슬라이크는 12경기서 타율 0.218(39타수 5안타)에 그쳤고, 담장을 넘어간 타구는 단 1개에 그쳤다. 설상가상 허리 통증까지 겹쳐 세 달도 안 돼 다시 짐을 쌌다.
반환점을 돈 올해도 몇몇 대체 선수들이 합류했다.
디펜딩 챔피언 KT는 2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활용해 웨스 벤자민, 앤서니 알포드와 손을 잡았다. 한화도 라이언 카펜터와 닉 킹험을 내보내고 예프리 라미레즈, 펠릭스 페냐와 계약했다. 최근 몇 년째 외국인 타자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LG는 시카고 컵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거친 로벨 가르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