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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그대들에게

김필남의 블루 시네마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진모영 감독, 2014)를 보고


바야흐로 연애(사랑)의 시대다. 물론 연애나 사랑이란 말이 더 이상 무효한 시대이지만 나는 연애에 대한 고백부터 출발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휩싸인다. 전율, 자극, 미묘한 뉘앙스와 연루되어 있는 이 단어를 떠올리자말자 나는 나의 오래된/실패한 연애사를 떠올렸다. 왜 나는 연애는 하지 못하는 걸까? 계속되는 연애의 실패는 과연 나(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연애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연애의 지속기간은 짧아지고 있으며 연애-관계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고 조건 맞으면 결혼에 이르는게 지금 아닌가. 여기 '사랑'이 있는가? '연애-쾌락'에의 명령은 더욱 거세지고 있지만 연애-관계가 지속되기가 어려운 게 바로 지금 아닐까. 이 사이에서 자본은 밸런타인데이, 빼빼로데이 등의 연인들의 날을 만들고 미디어는 연애에 대한 욕망을 추앙토록 하며 나(우리)로 하여금 짧고 가벼운 연애하기를 종용케 한다. 이제, 사랑은 열정과 낭만의 대명사가 아님이 분명해 보인다.


연애-쾌락의 감정에 익숙해져 있는 지금 흔하디흔한 ‘사랑’에 대해 말하는 진모영 감독의 다큐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관심을 보이는 관객들의 모습은 낯설고 또 흥미롭다. 왜, 우리는 이 다큐영화에 이토록 열광할까?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그대들에게

강원도 횡성군 어느 산골마을 76년 동안 알콩달콩 살아온 노부부가 있다. 어디를 가든 커플 한복을 입고, 꽃밭에선 서로 꽃을 달아주면서 어여뻐하고, 시냇가에선 돌멩이와 바가지로 물장난을 치며 즐거워하고, 낙엽을 쓸 때에도, 눈을 치울 때도 짓궂은 장난을 마다않는 노부부의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 누구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사실 이런 사랑을 이야기하는 내용은 주부들이 즐겨보는 다큐멘터리 <인간극장>(KBS)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신파라고 볼 수 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노부부 또한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처음 알려졌다) 텔레비전을 통해 한 차례 방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다큐영화는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4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할 정도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초반부는 노부부를 통해 변하지 않는 사랑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후반부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를 영화적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 같던 노부부에게도 시련이 닥치는 데 그것은 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잦아지면서 시작한다. 겨울, 할아버지는 몇 번의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할머니는 조용히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어느 햇빛 좋은 날, 할아버지는 모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와 곱게 커플한복을 맞춰 입고 몇 번씩이나 쉬며 가며 끝에 장에 도착한다. 긴 걸음 끝에 노부부가 간 곳은 속옷가게다. 손주들에게 줄 내복을 사는가 싶었더니 노부부는 먼저 간 자식들에게 살아생전 입혀주지 못한 겨울내복을 할아버지 저승 갈 적에 함께 보내기 위해서 구입한 것이다. 할머니는  벌써 오래 전 맞춰놓은 할아버지의 수의를 꺼내 살펴보고, 할아버지가 즐겨 입던 옷들을 아궁이에 태우며 남편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며 눈물짓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의 첫만남을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할아버지를 이야기할 적의 할머니의 얼굴은 소녀의 수줍은 모습과 다르지 않는데 벌써 이별이라니, 세월이 고약하지만 할머니는 애써 담담한 척 한다. 만남과 헤어짐을 이토록 처연하게 보여주는 다큐영화에 눈물 흘리지 않을 관객은 없어 보인다. 영화는 노부부의 76년 한결같은 사랑을 갈라놓는 것이 죽음뿐이 없음을 전달하는데 그 목적을 다하고 있다.

 

노래가사에서나 듣던 영원한 사랑을 눈앞에서 목격한 관객들은 곧 다가올 할아버지의 죽음을 예감한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시간은 흐른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노부부는 세월을 원망하는 대신 봄날의 꽃에 감격하고, 여름날의 무더위를 느끼고, 단풍을 만끽하며, 눈싸움을 하며 어제와 다른 일상을 즐긴다. 귀여워하던 강아지가 죽고, 다른 강아지는 주인 몰래 새끼를 낳기도 하고, 언제 다시 볼 줄 모르는 계절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소중함을 아주 천천히 보고 느끼고 감각하는 노부부의 삶에서 관객은 아마도 ‘나’를 보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그것은 노부부의 ‘사랑’으로 촉발된 것이지만, 관객들은 사랑보다 훨씬 평범한 것들에 감동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그대들에게

늘 곁에 있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 느끼지 못하는 것들, 잊고 사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영화는 (내일이 없는 노부부를 통해) 바로 오늘을 기억하도록 만들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 자연, 사람들을 둘러보도록 한다. 그를 통해 지금-여기야말로 아름다운 현실이라고 말한다. 너무 빨리 무너지고, 사라지고, 만들어지고, 변해가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노예로, 돈의 노예로 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나/우리가 있는 이 각박한 세상을 잠시 잊게 만들며, 노부부가 완성한 ‘사랑’이라는 따뜻한 감정에 잠시나마 안식을 느낀다. 혹은, 아직은 존재하고 있는 이 사랑에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 사랑의 영원성에.

 

물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한 편의 동화와 다르지 않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정권을 경험한 노부부의 노곤한 인생(역사)은 지워지고, 자식 중 그 누구도 노부부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으며, 영화는 오로지 불멸의 ‘사랑’에만 포커스를 두고 있다. 이 영화를 두고 다큐-사실이 아니라 각색되고 편집된 ‘영화’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노부부의 사랑을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보고 싶은 것, 보여지고 싶은 것만 보도록 하는 것을 우리는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토록 건너지 않길 바랐던 강을 할아버지는 건넜다. 백발의 연인은 죽음으로 갈라섰다. 홀로 남은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홀로 남아 통곡한다. 날은 저물어가고 있지만 할머니는 계속 거기 있다.


글 김필남(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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