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만원 스팀다리미, 한국에선 왜 잘팔릴까
다이슨 대성공 이후 발뮤다·로라스타·드롱기 인기…韓 '테스트베드' 부상
해외 브랜드 거부감 적고, 소비력도 선진국 못지 않아…블루오션 시장
수입 소형가전 韓 판매가 2배 차이도…업체마다 '초고가 마케팅'
LG전자 공기청청기·무선청소기 시장 주도…삼성전자 추격도 거세
[편집자주] 수입 소형가전 공세가 심상치 않다. 삼성·LG전자가 놓쳤던 틈새시장을 파고들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성능과 기술력에 비해 너무 비싼 가격과 부실한 애프터서비스(AS) 불만은 문제로 지적된다. 수입 소형가전 열풍의 명암을 짚어봤다.
스팀다리미가 450만원…韓 안방 점령한 수입 소형가전
3월7일 오전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 서울에서 열린 스위스 프리미엄 스팀다리미 '로라스타' 신제품 출시 기념 론칭행사에서 리누스 폰 카스텔무르(왼쪽) 주한 스위스 대사, 장 몬니 로라스타 CEO가 모델과 함께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커넥티드 스팀다리미 로라스타는 전용 어플을 통해 원격 제어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
해외 소형가전이 국내 안방을 점령했다. 최근 몇 년 새 1인 가구 시장이 급성장한 데다 수입업체마다 삼성·LG전자가 주력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결과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국내 전체 가전시장은 제자리 걸음했지만 소형가전은 20%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과도한 고가 마케팅과 '초고가'에 걸맞지 않는 애프터서비스(AS)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10일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2018년 국내 가전 소비재 시장 규모는 전년도(38조600억원)와 비슷한 38조52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소형가전 분야가 23.1% 성장했다는 것이다. 스틱형 무선청소기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다이슨 이후 해외 가전업체의 프리미엄 판매전략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대표주자는 '가전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일본 발뮤다가 첫 손에 꼽힌다. 스팀오븐 토스터기(31만9000원)를 앞세워 전기 주전자(19만9000원), 태양광 LED 데스크 라이트(49만9000원), 프리미엄 선풍기(54만9000원)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발뮤다 오븐 토스터기는 최근 판매량이 급증했다. 발뮤다는 지난달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공기청정기 신제품(74만9000원)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등 한국 시장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스위스 중소 가전업체인 로라스타가 이달 초 출시한 스팀다리미 가격은 328만~448만원에 달한다. '세탁소급 다림질'이 가능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지난해 국내에서만 무려 4000대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 프리미엄 소형가전의 원조격인 다이슨은 지난해 하반기 23.75캐럿짜리 이탈리아 피렌체산 금박을 입힌 헤어드라이어( 55만9000원)를 출시했다. 다이슨 헤어드라이어만 사용하는 미용실이 등장할 정도로 '팬덤'이 형성됐다. 이들 업체 외에도 드롱기(이탈리아), 일렉트로룩스(스웨덴) 등도 한국 시장에 앞다퉈 출사표를 던졌다. 한국 소형가전 시장이 해외업체의 테스트베드(시험무대)로 급부상한 셈이다.
테라오 겐(Terao Gen) 발뮤다(BALMUDA) 대표가 지난달 12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 호텔에서 열린 신제품 공개 기자간담회에서 발뮤다 스탠드 더 라이트(The light)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
수입 소형가전 성장은 소득을 갖춘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비쌀수록 잘 팔린다) 등의 사회 현상이 맞물린 결과다. 무엇보다 세계 탑 수준의 가전 제조사인 삼성전자 (44,650원 상승1000 2.3%)와 LG전자 (74,400원 상승900 -1.2%)가 크게 신경쓰지 않는 틈새 시장 공략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수입 소형가전 열풍 속에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특히 부실한 애프터서비스가 문제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직영 AS센터를 운영하지 않다 보니 '제값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품질조사조차 받지 않은 제품이 있을 정도로 품질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다.
이인석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수입 가전에서 명품을 소유할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며 "고가인 만큼 내구성 등이 제값을 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몰려온다…AS 부실 여전해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 가전업체들의 공략 시장에서 후순위였다. 아시아 시장 자체가 미국·유럽에 밀렸고 아시아에서도 한국은 줄곧 인구 1억,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자랑하는 이웃나라 일본 다음이었다. 이런 기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해외 가전 브랜드 중 예전처럼 한국 시장을 가볍게 보는 곳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무선청소기 원조로 통하는 영국 다이슨을 비롯해 일본 발뮤다, 스웨덴 일렉트로룩스, 스위스 로라스타 등 해외여행을 가지 않으면 보기 어려웠던 브랜드들이 한국시장으로 몰려오고 있다. 올 들어 대대적인 신제품 출시 행사를 열고 시장 공략에 나선 해외업체만 줄잡아 대여섯 곳에 이른다. 이들이 앞다퉈 한국으로 향하는 것은 국내 시장이 검증받은 테스트베드(시험무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 세계 가전업체 가운데 1, 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 (44,650원 상승1000 2.3%), LG전자 (74,400원 상승900 -1.2%)가 건조기, 의류관리기, 공기청정기 같은 신가전 시장을 키워놓은 데다 시장 변화도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폐쇄적인 중국, 일본 시장보다 해외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도 적은 편이다. 인구나 소비력에서 전체 시장 규모도 선진국 못지 않게 매력적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해외 브랜드 입장에서 삼성, LG가 중소기업 시장을 넘본다는 여론을 의식해 진입을 꺼리는 한국 소형가전 시장은 그야말로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소형 가전시장에서 국내 중소·중견 업체는 저렴한 보급형 제품을 내놓는 수준에 머문다. 고급 제품에 대한 시장 수요를 프리미엄 제품과 브랜드 파워로 무장한 해외업체가 장악한 셈이다. 무선청소기 시장의 강자 다이슨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나마 청소기 시장에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방어에 나서지만 중소기업 제품만 있는 헤어드라이기, 다리미 시장에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가 진입하면 속수무책이다.
반대로 가성비를 철저히 따지는 소비계층의 수요는 샤오미, 하이얼 등 중국업체가 장악해가는 상황이다. 문제는 수입가전에 대한 수요나 시장 성장 속도에 비해 사후관리(AS·애프터서비스) 시스템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다이슨이나 발뮤다는 아직 국내에 직영 서비스센터가 없다. 다이슨은 국내 업체에 위탁한 서비스센터를 전국에 50곳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 밀집돼 있다. 발뮤다는 서울 용산에만 서비스센터가 있다.
3년차 직장인 박미진씨(28·전북 남원)는 "첫 월급을 받아 큰 맘 먹고 부모님께 100만원 가까운 청소기를 선물했는데 수리를 제때 받지 못해 애먹은 경험이 있다"며 "한국 소비자에게서 '우리가 호갱이냐'는 불만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관리에 좀더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슨 관계자는 "국내 서비스센터를 지난해 32곳에서 50곳으로 늘리고 다이슨 제품을 잘 아는 전문상담원으로 콜센터 인력도 충원했다"며 "서비스의 질을 더 개선하겠다"고 답했다.
"비싸야 잘 팔린다?"…수입 소형가전 '韓만 고가전략'
일본 발뮤다 스팀 토스터기는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31만9000원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누리고 있다. 49만9000원짜리 프리미엄 선풍기 등 발뮤다가 국내 출시한 다른 소형가전도 이와 비슷하다. 소비자 사이에서 '평생 곁에 두고 싶다'는 찬사를 받으며 핫 아이템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발뮤다 본사가 위치한 일본 시장에서의 가격은 어떨까. 토스터기는 22만9000엔(약23만원), 선풍기 3만6000엔(약 36만4000원)으로 한국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발뮤다 말고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수입 소형가전 업체의 공통점은 강력한 '팬덤'을 등에 업고 초고가 마케팅을 펼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점을 제대로 파악한 셈이다.
지난해 수천대가 팔렸다는 스위스 로라스타 스팀다리미의 국내 가격은 448만원(모델명 스마트-U). 동일한 제품은 스위스에서 현재 1999프랑(약 223만원)에 팔린다. 한국 소비자들이 거의 2배 가량 비싼 가격에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수입 소형가전이 인기를 끄는 비결은 최근 30~40대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일점호화'(一點豪華) 소비가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점호화란 다른 곳 씀씀이를 줄이는 대신 특정 분야에는 아낌없는 소비성향을 말한다.
이런 소비는 보통 특정 제품의 팬덤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44,650원 상승1000 2.3%)와 LG전자 (74,400원 상승900 -1.2%)가 만들지 않는 제품군인데다 맹목적인 명품 브랜드 선호 심리가 유독 수입 소형가전에 집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팬덤의 그늘에 해외 가전업체도 할 말이 많다. 일단 한국에 처음 진출하기 때문에 애프터서비스(A/S)망 구축에 따른 신규 채용과 교육 등 각종 초기 투자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발뮤다 코리아 관계자는 "시중에서 팔리는 제품은 환율차와 수입통관비용이 전부 포함된 가격"이라면서 "A/S와 고객서비스(CS) 인력을 전부 정직원으로 뽑아 진행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게 국내 가전업계 판단이다.
지난해 다이슨 스틱형 무선청소기가 크게 인기를 끌자 반대급부로 '차이슨'(차이나와 다이슨을 합친 말)에 눈길을 돌리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처럼 초고가 외산 소형가전 시장도 조만간 '가성비'(가격대비성능)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 발뮤다 토스터기, 이탈리아 드롱기 전기포트 등 히트친 수입 소형가전과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인 국내외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LG전자 가세, 수입가전 시장 '격전'
'LG 오브제'/사진제공=LG전자 |
가전업계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수입산 공세가 거센 소형가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차별화된 기술력과 고객서비스가 무기다. 먼저 나선 쪽은 LG전자 (74,400원 상승900 -1.2%)다. 공기청정기, 무선청소기는 물론 홈 뷰티기기 'LG 프라엘(LG Pra.L)'과 캡슐맥주제조기 'LG 홈브루' 등을 출시하고 시장 점유율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코드제로 A9'과 '퓨리케어 360°'는 무선청소기와 공기청정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코드제로 A9'의 경우 최근 물걸레 기능까지 더하면서 고객 주문량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LG전자는 이달까지 코드제로 A9에 탑재하는 물걸레 전용 흡입구 '파워드라이브 물걸레' 키트 생산량을 기존보다 3배 늘릴 예정이다. '퓨리케어 360°'는 모든 방향에서 공기를 빨아들여 청정 사각지대가 없는 '360도 디자인'과 강한 바람을 만들어 깨끗한 공기를 멀리까지 보내는 독자적인 '클린부스터' 기술로 인기몰이 중이다. 'LG 프라엘'도 매년 10%씩 급성장하고 홈 뷰티 기기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으로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LG전자는 이와 별도로 싱글족을 겨냥한 프리미엄 프라이빗 가전 'LG 오브제'도 내놨다. 가전(家電)과 가구(家具)를 결합한 융복합 가전으로 냉장고와 가습 공기청정기, 오디오, TV 등이 제품 라인업이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H&A) 사업부 매출액과 수익성에 기여하는 대표 제품이 소형 가전"이라며 "아직은 소형 가전 매출 대부분이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점차 해외에서도 각광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 로봇청소기 '파워봇'/사진제공=삼성전자 |
삼성전자 (44,650원 상승1000 2.3%)의 추격도 매섭다. 업계 최대 흡입력(200와트)과 ‘고효율 대용량 배터리’를 통한 사용시간(60분) 확대를 내세운 무선청소기 삼성 '제트'가 선봉장이다. 공기청정기 삼성 '큐브'도 결합과 분리가 자유로운 '모듈형 큐브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낮엔 큐브를 결합해 거실에서 대용량으로 쓰고, 밤엔 방마다 분리해 개별 사용이 가능하다.
로봇청소기 '파워봇'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미국 소비자 유력지인 컨슈머리포트는 삼성 '파워봇'을 최근 10년간 자체 구매·평가한 5만1000개 청소기 중 최고의 제품으로 꼽기도 했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소형가전은 최근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며 "삼성전자, LG전자가 수입 업체들이 부족한 서비스센터를 활용한 고객 만족도 제고와 잇따른 혁신 제품 출시로 소형가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이정혁 기자, 심재현 기자, 최석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