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길 끝내 만나지 못한 롯데·농심 형제
신격호 별세
생전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갈등 빚던 신춘호 농심 회장, 끝내 빈소 찾지 못해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왼쪽), 신춘호 농심 회장/사진=롯데, 농심 |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타계했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그룹을 국내 5대 재벌로 성장시키고 주요 재벌그룹 창업주 중 마지막까지 일선에서 활동한 성공한 경영자였지만, 형제간 반목이나 아들간 경영권 분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신 명예회장이 향년 99세로 별세한 후 이 같은 반목과 갈등이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먼저 신 명예회장이 눈을 감는 날까지 사이가 소원했던 두 아들,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장례 사흘차인 21일까지 매일 함께 빈소를 지키면서 화해 장면을 연출했다.
이는 2018년 10월 신 회장에 대한 국정농단·경영비리 재판 2심 선고 때 마주친 이후 1년 3개월여만으로 극적인 가족 상봉이었다.
생전 신 명예회장과 갈등을 빚어온 막내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도 여동생 신정숙씨 내외와 함께 빈소를 찾아 자리를 지켰다.
신 명예회장은 생전 형제들과도 갈등을 빚어왔다. 막내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롯데제과, 롯데칠성 등 주요 계열사 대표 자리를 거치고,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운영본부의 부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1996년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 소유권을 둘러싸고 법정 소송을 치르며 사이가 벌어졌다.
이후 그는 그룹의 요직에서 밀려났고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할된 롯데우유 회장으로 취임했다. 롯데그룹은 '롯데' 브랜드 사용 금지 요청을 넣었고,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신준호 회장은 이 같은 갈등 이후 신 명예회장과 일절 교류하지 않았지만, 신 명예회장 타계 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하면서 화해 장면이 연출됐다. 신준호 회장은 신 명예회장이 별세한 당일 여동생 신정숙씨 내외와 함께 빈소를 찾아 초례(장례를 시작하고 고인을 모시는 의식)를 치르고, 자리를 지켰다.
반면 신 명예회장과 갈등을 빚어온 또 다른 형제, 신춘호 농심 회장은 끝내 빈소를 찾지 않으면서 신 명예회장과의 갈등을 봉합하지 못했다.
지난 19일 저녁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롯데그룹 신격호 창업주 장례식 초례(장례를 시작하고 고인을 모시는 의식)에서 참석자들이 절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롯데지주 제공) 2020.1.20/뉴스1 |
3남인 신춘호 회장은 신 명예회장과 수십년간 교류를 하지 않았다. 신춘호 회장은 일본롯데 이사로 재직하던 1960년대 신 명예회장의 만류에도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신춘호 회장은 1965년 롯데공업을 차리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고, 두 사람의 갈등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후 신춘호 회장은 롯데공업을 농심으로 개명하면서 롯데 이름을 포기했다.
신춘호 회장은 신 명예회장의 타계에도 불구하고 끝내 직접 빈소를 찾지 못해 갈등을 완전히 풀지 못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을 남겼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신춘호 회장이 서울 신대방동 농심 사옥에도 출근하는 등 거동에 큰 불편함은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대신 신춘호 회장은 그의 아들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을 보내 대신 19일 빈소를 지키도록 했다.
한편, 신 명예회장의 장례는 그룹장으로 4일간 진행된다. 영결식은 오는 22일 오전 7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롯데그룹은 서울에서 신 회장의 운구 행렬이 울산에 도착하는 22일 오후 2시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선산에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