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해야지’ 보다는 ‘일을 매끄럽게’
김지호의 스타트업 에세이
김지호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일을 잘해야지’ 보다는 ‘일을 매끄럽게’
작은 회사가 가지는 장점. 유연함. 하지만 몇몇 조직은 그 유연함을 ‘규율이 없는’이라 착각한다. 예로 ‘우린 딱딱한 회사가 아니에요’라며 자유주의를 표방한 어리숙함을 들 수 있다. 작은 조직일수록 우리는 어벤저스와 같은 ‘프로페셔널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필요가 있겠다. 개개인의 실수가 모이니 회사 전체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더라. 회사 내부에서는 자기들 마음대로여도 좋다. 하지만 외부와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적절한 규정이나 규율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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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스타트업에 종사하며 생각했던 가장 큰 착각은 ‘감정적 호소’가 먹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즉, ‘회사의 규모가 작고 얼마 안 된 회사이니 어설퍼도 이해해주겠지’라는 착각이 실로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허나 스타트업으로서 SI를 해야 할 때도 있었고, 컨소시엄을 통해 다양한 회사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해야 할 때도 있었고, 매입/매출에 따른 거래처 간 견적/발주/계약/발행 등의 업무와 같이 수많은 협업 상황을 경험하며 매끄럽지 않은 일처리가 기업의 입장에서 엄청난 손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성공적인 다이어트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과연 굶기만 해서 살을 빼면 그만일까? 다이어트 식품만 먹는 게 좋은 것일까?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확률로 본다면 유기농 식단을 한 번 더 챙겨 먹는 것이 아니라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일을 많이 하고 오래 하고 빨리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프로세스를 회사 대내외적 모든 협업관계와 ‘매끄러움을 통해 실수와 실책을 줄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매끄러움의 시작은 기본에서부터 시작한다.
몇 가지 경험적 사례를 떠올려 상황극을 만들어본다.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고 알려야 하는 과정에서 영업 담당자나 제휴 담당자로부터 홍보용 메일이 심심찮게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OOO에서 보고 연락드립니다. 저희는 어쩌고저쩌고, 제가 연락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는 이러한 꿈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시작한 스타트업입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연락을 주세요. 아니면 여기에 문의를 남겨주세요. (구글 폼 링크)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회사이니 작은 회사에게 이런 식으로 홍보용 멘트를 날리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구구절절한 방식의 표현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무리 동종 스타트업계라도 ‘스팸’으로 인식해 첫 줄을 보자마자 ‘휴지통’으로 보내는 일이 제법 많다. 이렇게 호흡이 긴 문체를 ‘만연체’라고 한다. 비즈니스에서 ‘만연체’는 곧 ‘휴지통’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흔히 회사에서 겪는 ‘다시 써와!’도 ‘내가 요구하는 혹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거나 간결하지 못하다는 것에 한 몫한다. 차라리 짤막한 소개와 함께 ‘귀사와 제휴를 논의하고 싶은데, 제휴 담당자와의 연락을 원합니다.’라고 전달한다면 보다 더욱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첫인상을 보여줄 때 ‘감정적 호소’는 그리 매리트 있는 소개/영업 방법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특히 이러한 홍보메일은 한 곳에서 여러 번 메일이 올 경우가 많은데 공통적으로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제법 많다. 일례로 ‘참 좋은 서비스인데 한 번 써보세요. 당신에게 제휴를 제안드립니다.’라는 뉘앙스로 어느 기업에 팩스를 보내었다가 정보통신법 위반으로 신고를 당해 750만 원의 벌금 통지서를 받은 적도 있었다. 법 위반은 스타트업이라도 벌금 경감이 없다는 점을 유의하자.
속았다는 셈 치고 전화를 걸었다. 야리야리한 앳된 목소리의 여자분이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상대 : ‘여보세요’
나 : ‘아.. 혹시 OOO 회사 아닌가요?’
상대 : ‘아, 네 맞는데요. 누구 찾으세요?’
전화를 끊고 싶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되지 않길래’ 하는 생각이 든다. 상식적으로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라면 최소한 ‘감사합니다. OOO(회사명) OOO(이름)입니다’ 정도는 나와주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아무개 씨랑 수다 떨려고 회사 번호로 전화를 건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최소한 상대에게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고 먼저 밝혀주는 것이 좋다. 첫인상에 상대를 무안하게 만들어놓고 어떠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 그 전화가 ‘제휴가 될지, 계약이 될지, 고객이 될지, 투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특히 개인번호를 남겼다면 더욱 그러하다. 저렇게 첫 단추부터 삐그덕 거리면 ‘뭔가를 의뢰해도 어설픈 결과가 예상되는 건 기분 탓일까..’이라는 선입견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프로를 만난 적이 있다. 몇 년 전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 건으로 미팅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약 1시간가량 미팅을 마치고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거는데 한 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불과 10분 전에 마친 미팅의 회의록이 담당자로부터 도착한 것이다. 회의록은 간결 그 자체였다. 덕분에 나도 그 회의록에 당사의 의견을 더하여 내부 보고가 더 빨라질 수 있었다. 내부 회의는 무엇인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소집이 주를 이룬다. 이럴 땐 노트북이나 휴대폰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외부 회의는 상대방과 협의나 협상이 아닌 상호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 모이는 경우가 많아 함께 이야기 나눈 내용을 근거로 삼기 위해 기록 및 공유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겠다. (이러한 문서는 날인이 박힌 공문이 아닌 이상 법적 효력은 없다.)
우열곡절 끝에 담당자와 연락이 닿아 회사를 내방하게 되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몇 안 되는 인원에도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뭐야 저 사람’이라는 눈총을 주곤 자기들끼리 모여할 일들만 하고 있다. 심지어 고객과 통화를 하는 팀원이 있는데도 옆에서는 언쟁을 높이고 싸우고 있다. 나도 괜히 방해주는 것 같아 잽싸게 미팅실로 들어간다. 어떤 조직은 담당자가 오기 전까지 책임자가 명함을 들고 찾아와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고, 어떤 조직은 눈이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네어주었던 모습들과는 상반되었다. 잠시 뒤 담당자는 회의가 늦어졌다며 죄송하다고 달려와 명함을 건네어준다. 그리곤 내 명함을 받자마자 자신의 노트 사이에 끼워 넣는다.
“이 회사는 진심으로 우리 회사와 거래를 할 생각이 있는 것일까?”
‘일의 매끄러움’에서 왜 비즈니스 매너를 말하는가.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의 상황인 것이다. 하나는 내부적으로 실무에 필요한 매끄러움. 그 매끄러움은 본인 스스로가 모르면 묻고, 배우고, 기록하고, 실수하면 깨지고, 포기하지 않고 인고의 시간이 흐른다면 자연스레 터득해나갈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위와 같이 외부적으로 필요한 매끄러움이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왜 ‘갑질’ ‘갑질’ 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조직의 프로페셔널함을 나타낼 수 없다면 ‘갑질’을 할 수 있는 규모의 회사와 거래조차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위의 사례가 하나의 기업에서 나타났다면 나는 아마도 특수한 관계가 아닌 이상 거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경험 없는 초년생들이 득실거리는 기업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믿을 만한 결과물을 고사하고 설령 거래를 시작한다 한들 우리 실무진들이 고생할 것이 눈에 선하며 심하게 말하자면 저 회사의 안정성도 의심스러울 것 같다. 과연 큰 기업들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겠나?
피하지 말자. 사실 지극히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스타트업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러한 비즈니스 매너는 확실히 대기업 출신들이 깔끔하다. 한 공동창업자는 ‘미팅 어디 다녀왔어요?’ 라길래 ‘아, OO 본사 다녀왔어요’라고 말했다가 ‘회사 이름만 말하면 된다고’ 면전에서 엄청나게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본사라는 표현이 너무 아마추어스럽단다. 아마도 대기업은 수 십, 수 백억의 거래를 위해 실수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샌가 스타트업에서는 수평적 문화라는 표현이 유행이 된 듯 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규율이나 규정이 없는 문화는 오히려 기업을 악화시킨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을 바탕으로 한 ‘일의 매끄러움’이다. 거래가 끊기고 협업이 안되는데 우리끼리 즐거우면 무엇하랴.
By 김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