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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 Frida Kahlo, 1926 @Enrique Garecia Formenti

자화상 속의 눈썹과 눈빛은 그녀가 안고 있는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짐작하지 못하게 합니다. 등 뒤에 이는 검은 물결로 세상의 모든 미물 같은 것들을 쓸어 버릴듯, 그녀는 도도함의 표상으로 강하게 출렁거렸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나이 열여섯에 전차에 치여 몸이 부서지는 사고와 세 번의 유산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생명력이 무너지는 참사를 겪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며 마음까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습니다.

 

47년이라는 짧은 생 동안 프리다 칼로가 겪은 고통들을 전해 들으며 그녀의 ‘자화상’이란 살아가는 ‘의지’를 잊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화상 외의 그림들을 통해 그녀가 표현하는 고통이란, 고통이 실존한다고 말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녀가 그 앞에서 부서지지 않고 스스로 그 실존을 그려나가고 있다는 의지의 표명임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명의 프리다

프리다 칼로는 그녀의 일기를 통해 ‘여섯 살 즈음 한 소녀와의 가상의 우정을 강렬하게 경험한 때가 있었다’고 했고, 추후 ‘그 마법과도 같은 우정을 경험한지 어느덧 34년이 흘렀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돌봐 주던 그녀와 상상의 프리다 등 ‘두 명의 프리다’가 존재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초현실적인 자아를 만들어냈던 그녀는 성인이 돼서도 ‘두 명의 프리다’를 품고 살았던 듯 합니다. 고통을 겪는 두려움 속의 ‘나’와 의지로 점철된 ‘나’가 필요했습니다. 현재의 분리된 ‘나’. 그리고 고통과 의지 속에 형성된 현재의 ‘프리다’와 고통을 알지 못했던 어린 ‘프리다’ 사이에도 이중성이 존재합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프리다의 일기 중 일부

그림 속에서도 이런 ‘프리다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두운 낯빛으로 또 하나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투영된 현재의 프리다와 좀더 생명력 있는 색깔로 붉게 물든 어린 프리다. 그러나 어두운 낯빛의 얼굴엔 의지의 표정이 도드라지며, 소극적으로 숨어있는 또 다른 그녀를 보호합니다.

 

이 그림의 배경이 된 일기에 그녀의 마음은 이렇게 내달립니다.

‘둘, 소용이 없는 것은 나쁘다.

달. 최악이다

태양은 평범하다…그렇지 않아?

겉으로 봐서는 그렇지?

그럼 

물론이지.

그것을 부숴버려’

‘태양과 달’을 함께 받치고 있는 이젤

그녀의 여러 작품들에는 태양과 달을 연상시키는 구(sphere)가 등장합니다. 앞서 말한 평범한 태양과 최악인 달. 어찌 보면 생명력을 가진 자궁과 그러한 능력이 식어버린 자궁을 상징하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희망은 없다, Frida Kahlo, 1945 @Museo Dolores Olmedo

그녀는 병상에서 뭔가를 섭취하고 있는지 발산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하지만 관객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며 누워있습니다. 그녀의 입으로 연결된 잡다한 영양의 원천에는 온갖 고깃덩어리들과 해골이 보입니다. 고깃덩어리지만, 그것은 생명을 다한 시체들의 다른 이름이며 해골과 더불어, 프리다 칼로가 죽음의 기운도 같이 흡입하는 느낌이 듭니다. 순간 스쳐가는 기시감에 머릿속에 진동이 입니다. 황급히 도록 사진들을 넘기다 찾아낸 또 다른 병상 위의 프리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침대에서 그림을 그리는 프리다와 미헬 코바루비아스, 1940

고깃덩어리들과 죽음을 같이 받치고 있는 그림 속의 프레임과 병상의 프리다에게 그림 작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젤이 오버랩 됐습니다. 그녀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젤이지만, 여전히 그녀는 그 위에 고통을 그려나가고 그 고통을 섭취합니다.

 

저 작품의 이름은 ‘희망은 없다’입니다.

고통과 의지 사이에 생명은 나오지 못했다

그녀가 더욱 아픈 삶을 살았던 이유는 고통과 의지 사이에서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정반합의 변증 논리는 갖다 붙일 게 아닌 듯 하지만 그리고 그럴 법도 하지 않냐는 안타까움이 들지만서도, 그런 극적인 삶의 국면은 그녀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세 번의 유산. 어찌 보면 여성으로서 가장 큰 고통이었을 그러한 과정은 그녀의 액자 속에서도 마음 아프게 고스란히 나타났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프리다와 유산, Frida Kahlo, 1932 @Museo Dolores Olmedo

그녀의 한쪽 몸은 생명의 세포분열인지, 그녀의 정신분열인지 모를 분열의 과정과 아이가 생명선으로 이어져 있지만, 다른 한쪽 몸은 최악인 달의 얼굴을 한 듯한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둡게 칠해진 그 몸은 스스로 잎을 내고 뿌리를 내린 하나의 생명 혹은 그 근원이 되고자 했습니다.

 

생명은 이 그림뿐 아니라, ‘루터 버뱅크의 초상화’ 등 많은 작품에서 갈구와 안타까움, 순환과 신비의 모습으로 형상화 되었습니다. 생명은 때론 뿌리로, 때론 잎맥의 모습으로 프리다 칼로 특유의 상징적 표현의 힘을 빌어 가장 중요한 자리에 배치되었습니다.

 

마치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인 것처럼. 생존하거나 실존하는 그녀를 뛰어넘는 이유 말입니다. 프리다 칼로의 짧은 인생에 그 축복의 빛은 내려오지 않았지만, 생명이란 것은 고통 속에 실존하는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가장 중요한 동기였습니다. 그래서 더 안쓰러운 마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루터 버뱅크의 초상화, Frida Kahlo, 1931 @Museo Dolores Olmedo

초인

프리다 칼로는 기발한 상징들을 통해 자신의 고통과 실존에 대해 절실히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것이 전달돼야 억울하지 않은 듯이. 그리고 그러한 아픔을 인지한 그녀의 인생은 그에 굴복하지 않고 멕시코와 민중, 생명을 화폭에 남기는데 바쳐졌습니다. 

 

정작 그 자신이 생명을 배출하진 못했지만, 아픔과 죽음을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세대를 넘어 사람들에게 숨을 불어넣어줬습니다. ‘생명을 잉태시키는 일’, 사람의 일일까요, 신의 일일까요. 적어도 그녀에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는 ‘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영역에 신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팠지만, 프리다 자신과 디에고, 생명과 그림을 사랑했던 그녀는 초인이며 혁명가입니다.

 

*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 니체, '우상의 황혼'

* 초인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글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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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와 노래들을 쫓아... 뜨내기 영화 사랑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