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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노래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혁명’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으로 자신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대통령이 되었다. 대내외적으로 부끄러운 사건이지만, 세계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국민들의 저항으로 혁명이라 불릴만하다. 사실 세계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혁명은 유혈을 동반하며 많은 저항 세력들의 희생의 기록이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탄핵소추안이 인용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음악이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 “Do you hear the people sing?(민중이 노래가 들리는가?)”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노래 

이 장면의 역사적 배경은 실패로 끝난 1832년 6월 “파리 봉기”다.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덕분에 성공한 다른 혁명들보다 더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6월 봉기는 1848년 2월 혁명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 민주적 집회의 대명사가 된  “촛불시위”는 2002년 미국 장갑차에 목숨을 잃은 <효순이 미순이 사건>으로 시작되었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로 이어졌다. 결과론적으로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집회였지만, 현재의 대규모 촛불집회의 기반을 만든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혁명은 단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수년 또는 수십 년간 수많은 도전과 시도들의 결과이며, 축적된 산물인 셈이다. 

러시아 근현대사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혁명의 노래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러시아 근대사에서 혁명 논란(?)의 작곡가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i Shostakovich, 1906-1975)”다.


구소련의 “철의 장막” 시대를 만들었던 독재자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ln. 1879-1953)” 시대에 쇼스타코비치는 저항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그의 최대 걸작이라고 불리는 1937년에 작곡된 <교향곡 5번(Symphony No.5 in D minor), 혁명>에 대해서는 부제와는 달리 작곡가의 의도에 대해서 논란이 뜨겁다.

 

우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혁명> 4악장을 들어보자.

쇼스타코비치는 "정당한 비평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현실적이고도 창의적인 반응”이라고 이 곡을 소개하였다. 이 애매한(?) 표현 덕인지 쇼스타코비치는 이전 곡인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과 달리 스탈린의 미움을 받지 않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예술가의 혼을 버렸다고 비난하기도 하고, 권력에 빌붙은 “기회주의자”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저항은 곧 죽음인 스탈린 독재 시절에 쇼스타코비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비판적 상황에서도 <교향곡 5번>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베토벤 교향곡 5번>과 비교할 만큼 논란의 여지가 없는 걸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생사를 좌우하는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1979년에 출간된 소련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의 책 <증언>에 소개된 것처럼 “강요된 즐거움”이며 “위협 속에서 만들어진 환희”일 것이다. 그가 위대한 예술가인 이유는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적 의지를 가졌다는 점일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쇼스타코비치의 또 다른 업적은 “데스노트”라 불리는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깬 작곡가이기도 하다.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드보르작, 말러 등 위대한 작곡가들이 모두 9번 교향곡을 작곡한 후에 사망하였다. 심지어 말러는 9번 교향곡의 징크스를 깨기 위해서 실제로는 9번째 교향곡에 번호를 붙이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이후 9번 교향곡을 작곡한 후 세상을 떠났다. 쇼스타코비치는 15번 교향곡까지 작곡하였다.

 

대중적으로는 쇼스타코비치 음악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삽입곡으로 사용된 “재즈 모음곡 2번 중 왈츠”가 더 유명하다. 배우 이병헌과 이은주가 해변가 석양을 배경으로 왈츠를 추는 장면은 어느 영화의 한 장면보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벌써 16년 전이다)

어느 때보다 우리는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이런 역사는 존재하였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은 자연스럽게 시대를 반영하게 된다.

비록 혁명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알 수 없지만, 예술적 가치는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폄하되지는 않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혁명’ 추천음반

혁명의 노래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1. 예프게니 므라빈스키(Evgeni Mravinsky)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4년 Tokyo Live <Altus>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자인 므라빈스키의 러시안 작곡가에 대한 존중과 탁월한 해석. 수많은 므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연주 중에 으뜸이다. 1984년 에라토. 1954년 멜로디아 음반 연주도 뛰어나다.

혁명의 노래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2.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59년, Sony

번스타인의 쇼스타코비치와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러시아 음악이지만, 어째튼 아름답다.

혁명의 노래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3. 베르나르드 하이팅크(Bernard Haitink) -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1981년 Decca

네덜란드 출신답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그의 수족과 같은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우와의 호흡도 뛰어나다.

혁명의 노래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4.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 -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2012년 Decca

현존하는 러시아 최고의 지휘자라는 평가를 받는 게르기에프 최신 음반. 뛰어난 음질과 탁월한 해석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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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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