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와 바흐의 ‘샤콘느’
Bach Sonatas and Partitas for solo Violin, BWV 1001-1006
90년대 중반, 20대 대학생이었던 필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영화 중 하나는 <바이올린 플레이어 (Le Joueur de Violin, The Violin Player, 1994)>라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음악은 특정 계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위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현재도 필자는 이 영화의 OST를 자주 듣는다. 그리고 요즘처럼 비가 자주 오는 날에는 이 음악들이 더욱 잘 어울린다. 칸느 영화제에 출품될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흥행에 실패하였다. 필자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날에도 관객이 5명이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흐 샤콘느(Chaconne)에 대해서
이 영화는 <샤콘느>를 위한 영화라고 할 만큼 이 음악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샤콘느>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바흐의 <샤콘느>라고 하면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소나타와 파트티타(Sonatas and Partitas for solo Violin, BWV 1001-1006)> 중 파르티타 2번의 다섯번째 곡을 일컫는다. 과거에는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이라는 표현을 “바이올린 조곡”과 같이 일본식 표기를 사용하거나, “무반주 바이올린”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지만, 현재는 거의 “독주를 위한”으로 통일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독주를 위한”이라는 용어를 붙여가면서까지 제목을 길게 써야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소나타에 피아노 반주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별도의 피아노 반주가 없는 소나타를 구분하기 위하여 “독주를 위한”이란 용어를 쓰게 되었다. 대부분의 바흐의 소나타나 모음곡 형태는 한 곡의 길이가 5~6분 정도이지만, <샤콘느>는 15분 정도의 긴 독주곡이다. 파르티타 2번의 다섯 곡 중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긴 연주시간때문에 다른 소나타나 파르티타 모음곡 전체보다 더 대곡으로 느껴진다.
물론 기교와 표현의 측면에서도 웬만한 바이올린 전공자들조차 쉽게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기도 하다. 바흐 시대의 음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악보가 친절하지 않다. 빠르기나 강약에 대한 표현들이 거의 없고, 연주자가 악보에 대한 해석과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해서 연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주의 정답도 없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연주하기는 더욱 어렵다. <샤콘느>는 1720년에 작곡되었지만, 실제로 100여년이 지나도록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고 한다. 헝거리 출신 바이올린 리스트 <요제프 요하임(Joseph Joachim, 1831-1907)>에 의해서 처음으로 세상에 빛을 보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독주용 바이올린 연주곡 중 필수 레퍼토리가 되었다.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에서 <샤콘느>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으로 사용된다. 감독 <찰리 밴 담므>는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심오한 아름다움을 영화 속에서 훌륭하게 영상으로 표현해낸다. 음악가와 악기를 주제로 한 많은 영화들이 중에서, 라스트 신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를 최고라고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
1971년 사진작가로 데뷔한 <찰리 밴 담므(Charlie Van Damme)>는 이 영화로 1994년 가장 주목 받는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그의 첫 번째 영화인 <바이올린 플에이어>는 현재까지 마지막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데뷔작으로 칸트 영화제 본선까지 진출할 만큼 그의 연출 능력이나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그는 이후 더 이상의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는 앙드레 오데의 소설 <뮤지칸트>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 프랑스의 거장 <르네 클레망(Rene Clement, 1913-1996)>이 참여하였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영화를 완성한 것은 <찰리 밴 담므>였다.
<바이올린 플레이어>를 감상한 사람이라면 한결같이 라스트 신 15분을 화제로 삼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어떤 대사나 자막도 없이 어두운 지하도에서 <샤콘느>를 연주하고, 세상에서 소외된 다양한 사람들이 이 음악을 듣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어떤 대사나 설명보다도 주인공이 이 곡을 연주하는 목적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15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샤콘느>라는 곡 하나에 할애할 만큼 이 곡이 가지는 무게는 진중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역을 맡은 <리샤르 베리(Richard Berry, 1950-)>는 완벽하게 <샤콘느>를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충분한 연기를 하였다. 실제 연주는 바이올린 거장인 <기돈 크레머 (Gidon Kremer(1947-)>가 맡았고, 이 영화 전체의 음악 감독까지 하였다. <기돈 크레머>는 이 영화에서 환상적인 <샤콘느> 연주뿐만 아니라 <이자이> 곡들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새로운 카덴차를 선보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고, 이런 시도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과도 잘 연결된다.
<바이올린 플레이어>는 비록 20년이 더 지난 오래된 영화지만, 음악의 본질에 대한 감독의 메시지는 지금 시대에서도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이 영화의 DVD 조차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감동을 받기를 기대한다.
음악을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음악가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 영화는 음악을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음악하는 하는 사람들에게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바흐 샤콘느 추천음반
1.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Dmitry Sitkovetsky) - 1985년, ORFEO
시트코베츠키의 인생 레코드로 손꼽을 만큼 대단한 연주를 보여준다. 정열적이면서도 세련된 바흐를 느끼고 싶다면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최근에 3장의 LP로 다시 제작되어 판매되고 있다.
2. 기돈 크레머(Gidon Kremer) - 1994년, Audivis Traveling OST
다른 영화 OST와 달리 바흐의 <샤콘느> 전곡 연주가 포함되어 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 감동을 이 OST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3. 요제프 시게티(Joseph Szigeti) - 1977년, Vanguard Classics
시게티를 거론하지 않고 바흐 <샤콘느>를 얘기할 수는 없다. 기교도 음질도 불완전하지만 순수한 영혼의 전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초판 음반을 구할 수 있다면 당신은 행운아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