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 언제쯤 대중화가 될까요?
얼마전 대통령 직속기구인 “4차 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VR은 우선순위에 있지않으며, VR보다 시급한 것들이 많다”고 얘기하여 VR 업계에서 장위원장에게 많은 서운함을 내비친 사건이 있었다.
최근 VR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은 장위원장의 인터뷰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VR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던 해외 조사기관들은 앞다투어 시장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오큘러스와 더불어 VR HMD 시장을 리딩하고 있는 HTC가 VR 사업을 매각한다는 루머가 나오기 시작했다.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심지어 구글까지 HTC의 VR 사업을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아이템이자 '미래의 먹거리'로 추켜세워졌던 VR이 왜 올해에 들어서 갑자기 찬밥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그림 1] 좌로부터 Oculus Rift, HTC Vive, Sony PS-VR 가상현실 HMD 제품 |
“Show me the money”
정부의 관심과 투자를 요청하기에 국내 VR 산업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별로 없다.
2년 전만 해도 VR은 우리 생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다양한 VR 콘텐츠들이 연일 화제가 되고, 동네 곳곳에서 PC방이 VR방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서울 강남에서도 VR방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동안 국내 VR 산업 저해 요인 중 하나로 정부의 규제를 지적하였다. 최근에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이 시도되고 있지만, 현재 VR 산업 동향을 보면 더딘 성장이 과연 규제의 문제였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3대 메이저 VR HMD 기업인 오큘러스 Rift, HTC 바이브, 소니 PS-VR 제품 조차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양한 게임/가전 국제 전시장에서 VR 디바이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식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듯하다.
VR 기대치 하락, 무엇이 문제일까?
첫 번째로, VR HMD는 세컨드 디바이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때 스마트워치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테블릿 PC보다 대중화를 이끌지 못했다. 여전히 스마트폰에 이은 세컨드 디바이스는 스마트 패드 또는 경량 노트북 PC가 더 현실적이다.
두 번째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VR 특성상 제한된 공간과 시야가 차단된 환경에서 사용해야하며, 장시간 사용할 수 없다.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지속적인 사용을 유도하기 어렵다. 현재로선 데스크탑 PC 기반의 게임들과 경쟁해야 하는 수준인데, 이마저도 공간 제약 때문에 PC방에서 VR 디바이스 도입을 선호하지 않는다.
세 번째로, 비용 대비 사용자 경험의 가치가 높지 않다.
“VR 안해본 사람은 있어도, 계속하는 사람은 없다”는 우스갯소리는 VR 산업의 현주소를 잘 표현하고 있다. 여전히 비싼 장비들과 높은 사양의 PC 스펙을 요구하지만, 왠만한 매니아 취향이 아니면 이 비용을 지불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VR, 언제쯤 달라질까?
VR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있지만, 여전히 VR의 성장 가능성을 부정적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50년간의 암흑기를 거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최근 인공지능 서비스의 발전을 보면 VR은 암흑기에 들어선 적도 없다.
VR 산업이 대중화가 되려면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까?
우선, 지금보다는 저렴한 비용의 하드웨어와 좀 더 높은 수준의 콘텐츠 제공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스마트 디바이스는 하드웨어가 리딩하고 콘텐츠가 뒤를 받쳐준다. 그에 반해 VR은 비싼 하드웨어 대비 가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콘텐츠 제작비가 다른 스마트 디바이스류에 비해서 높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앞으로 콘텐츠 제작비를 낮출 수 있는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
단순히 시각적인 측면만으로는 VR의 진면모를 보여줄 수 없다.
실감미디어(Immersive Media)는 시각, 청각, 촉각을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실감미디어는 컨트롤러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각과 청각은 헤드셋이 커버할 수 있지만, 촉각을 위한 인터페이스는 다양한 형태의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전극을 이용하여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는 형태의 컨트롤러도 등장하였다. 좀 섬뜩한 느낌이 들겠지만, 안정성이 검증된다면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실감미디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2] Finch DK1 Wireless VR Controller |
VR 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수년 내에 대중화를 이끌지 못한다면 과거 인공지능처럼 장기간 빙하기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VR업계는 경쟁사가 없다고 한다. 시장이 확보되어야 경쟁이란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