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금지법 시행됐는데..”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원 현재 상황
영화 ‘이웃사람’ |
지난 8월 아파트 경비원을 폭행해 사망하게 만든 입주민이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입주민은 그동안 수차례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으며, 경비원을 ‘머슴’이라 부르며 ‘갑질 행위’까지 이어갔는데요. 2014년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원 분신 시건, 2016년 경비원 담뱃불 사건 등 ‘경비원 갑질’ 사건은 꾸준히 문제가 되어 왔죠. 이에 정부는 이번 달부터 ‘경비원 갑질 금지법’을 시행했습니다. 과연 ‘경비원 갑질 금지법’ 시행 이후 경비원들의 환경은 많이 나아졌을까요?
21일부터 ‘갑질 금지법’ 시행
연합뉴스 |
지난 21일 정부에서는 경비원에 대한 갑질을 막기 위해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시행했습니다. 소위 ‘갑질 금지법’이라 불리는데요. 이 시행령에 따르면 경비원 업무는 ‘낙엽 청소, ‘제설작업’,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리’, ‘위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차량 이동조치’, ‘택배·우편물 보관’ 등으로만 한정됩니다.
연합뉴스 |
위에 언급한 경비원 업무 외에 ‘입주민 택배 배달’, ‘대리주차’, ‘관리사무소 · 입주자 대표자회의 관련 동의서 서명 받기’, ‘입주민 심부름’, ‘위험한 작업’ 등은 모두 금지되는데요. 만약 경비업체에서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지시할 경우에는 경비업 허가가 취소되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갑질 금지법’을 시행하며 정부에서는 “공동주택 경비원의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을 유도하고, 공동주택의 상생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죠.
‘갑질 금지법’ 어떻게 달라졌을까?
뉴스1 |
‘갑질 금지법’이 21일부터 시행됐지만 아직 대부분의 경비원들은 택배 배달, 대리주차 등의 허드렛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A 씨는 “21일부터 법이 시행됐다는데 딴 나라 이야기”라며 “우리는 관리원으로 계약을 해서 경비 업무부터 온갖 잡일을 다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B 씨 역시 “이전에 경비원 업무를 하던 때와 똑같이 일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연합뉴스 |
‘갑질 금지법’이 겉으로 보기에는 근로조건이 나아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업무환경이 더 불편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 경비원들의 업무는 아파트 경비보다는 대부분 청소, 조경, 분리수거 등이었는데요. 이런 경비 외 업무들이 ‘갑질 금지법’으로 합법화됐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이제는 청소, 조경 등의 업무들이 법적으로 인정되니까 매달 경비원들이 따로 받던 2만~3만 원 상당의 분리수거 수당조차 못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밝혔습니다.
뉴스1 |
연합뉴스 |
‘경비원’이 아닌 ‘관리원’으로 채용해 일을 시키는 아파트 단지도 있습니다. 해당 아파트의 경비인력 98명은 2018년 이후 ‘경비원’이 아닌 ‘관리원’으로 채용됐는데요. 명칭만 ‘관리원’으로 바뀌었을 뿐 업무는 이전과 같습니다. 관리원은 경비원과 달리 ‘갑질 금지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경비원을 관리원으로 이름만 바꿔 고용하면 이전의 근무환경과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영화 ‘임계장’ |
연합뉴스 |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갑질 금지법’이 시행된다고 변하는 것은 전혀 없다”라며 “엄격하게 규제한다고 해도 아파트에서 실제로 경비원들의 업무를 조정하는지는 지켜봐야 한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가 이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법이 현실에 잘 적용되고 있는 계도해야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직장 내 갑질 금지법’ 만들어졌지만…
연합뉴스 |
지난 14일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 ‘근무장소 변경·배치전환·유급휴가 명령 등 피해자에 대한 조치’ 등의 내용이 추가된 ‘직장 내 갑질 금지법’이 새로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은 5명 이상의 사업장에만 적용하기 때문에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직장 내 갑질 금지법’에 해당되지 못하는데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직장 내 갑질 금지법’에 보호받지 못합니다.
영화 ‘오피스’ |
드라마 ‘미생’ |
또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직장 내 갑질 금지법’ 내용을 모르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의 홍보 부족으로 직장 내에서 갑질을 당했음에도 피해 사실을 숨기거나 직장을 떠나는 사례가 많았는데요. 이에 직장 갑질 119는 ‘직장 내 갑질 금지법’ 개정안 시행을 기념하며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죠.
연합뉴스 |
‘갑질 금지법’에 대해 누리꾼들은 “이 정도면 법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법 없이도 당연히 안 해야 하는 갑질을 어떻게든 하려고 하네” “우리 아파트도 이러던데…경비원을 관리원으로 이름 바꾸고 경비 아저씨 몇 명은 미화원으로 계약서 다시 썼다고”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