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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백년가게'도 젠트리피케이션에 운다

1980년 문 열고 '을지로 노가리 골목' 태동시킨 을지OB베어

지난해 백년가게 지정…최근 건물주로부터 임대료 인상 요구

변호사 선임해 법적 소송 나서, '젠트리피케이션' 희생자되나

'40년 백년가게'도 젠트리피케이션에

1980년 문을 연 후 40년 가깝게 한 자리를 지키며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있게한 을지OB베어 모습. 백년가게와 서울미래유산이란 글씨가 가게 앞에 선명하게 보인다. /김승호 기자

'백년가게' 중 하나인 서울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터줏대감 을지OB베어가 40년 가까이 지켰던 자리를 내줄 위기에 처했다.


백년가게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 성공모델을 확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정부가 현판을 내걸고 홍종학 장관까지 나서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선 백년가게도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을지OB베어는 현재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요구를 놓고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을지OB베어는 중기부가 지난해 8월 당시 처음으로 선정, 발표한 백년가게 16곳 중 하나다.


중기부는 이곳을 백년가게로 지정하면서 ▲오픈 당시의 맥주 안주인 노가리, 번데기, 쥐포, 멸치를 지금까지 유지하면서 사업 중인 전통 맥주집 ▲냉장숙성방식으로 특별한 맥주 맛을 유지 ▲노가리 맥주 안주를 장기간 유지해온 노가리 골목의 오랜 맥주집이자 전국적으로 노가리 열풍이 불게 한 맛집으로 평가했다.


을지OB베어는 황해도 출신인 강효근씨가 1980년 당시 생맥주 체인점인 OB베어의 서울 2호점으로 문을 연 곳이다. 지금도 간판에는 OB베어의 상징인 파란색 곰의 모습과 'SINCE 1980'이란 글씨가 오랜 역사를 가늠케 한다.


을지OB베어가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오랜기간 한 자리를 굳게 지키면서 도심의 골목 상권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을지OB베어를 시작으로 주변 골목에 지금까지 10곳이 훌쩍 넘는 노가리 생맥주집이 생기면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형성, 하루에도 수 백명의 애주가들이 이용하는 명소가 됐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2015년에 을지OB베어와 골목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또 매년 5월 중순엔 '을지로 노가리 호프 축제'가 열려 골목 전체가 불야성을 이루기도 한다.


가게 앞에서 노가리를 굽고 있던 강씨는 "건물주에게 기존 임대료보다 두배를 올려주고라도 장사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현재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을 하고 있다"면서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지키며 이곳에서 장사를 해 왔는데, 요구하는 임대료를 올려준다고 했어도 이미 임대차 기간이 끝난 터라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40년 백년가게'도 젠트리피케이션에

을지OB베어 내부에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백년가게' 현수막이 붙어 있다.

주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이면도로에 위치한 노가리골목내 점포들의 경우 1층을 기준으로 월 임대료가 300만~400만원 수준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을지OB베어의 경우 주변의 또다른 'ㅁ 호프'가 사업 확장을 위해 자리를 차지하려고 시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기부 관계자는 "백년가게로 선정된 곳에 대해선 금융지원, 홍보 등의 정책적 지원만 가능하다"면서 "상가의 임대료 인상 등에 대한 대응은 앞서 법무부가 개정, 시행에 들어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통해 가능하지만 백년가게만을 위한 별도의 방안은 없다"고 전했다.


지난해 하반기 법무부는 관련 법 개정을 통해 기존에 5년이던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10년까지로 확대한 바 있다. 또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 기준액을 현재의 6억1000만원에서 9억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이달 초 입법예고한 상태다.


퇴근 후 노가리 골목을 종종 이용한다는 직장인 이모씨는 "장사가 좀 된다고 하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달라거나 아예 본인이 장사하기 위해 가게를 비워우라는 이야기를 곳곳에서 보고, 듣고 했는데 수십년간 자리를 지켰던 가게도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서울만해도 서촌, 북촌, 홍대, 경리단길, 망리단길, 대학로, 성수동, 연남동 등이 특히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임차인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극심한 곳으로 꼽힌다.


중기부는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회에 걸쳐 총 81곳의 백년가게를 선정, 발표한 바 있다.


김승호 기자 bada@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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