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다고 날 비웃은 친구, 때리고 심부름도 시켰다…잘못인가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42] 영화 '파수꾼'
학교폭력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둘만의 일이 아니다. 거기엔 어떤 이유로든 폭력을 못 본 척하는 수많은 방관자가 존재한다. 자신의 일이 아니니까 방관하고, 혹시 말리다가 자신도 폭행을 당하는 신세가 되진 않을까 하는 공포에 모른 체한다.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는 가운데 피해학생은 철저히 소외되고, 폭력의 주체는 교실 내에서 헤게모니를 갖게 된다.
어느날 기태(이제훈)는 희준(박정민)의 뺨을 때린다. 자신의 가정사를 건드린 희준에 대한 서운함이 폭력의 출발점이 됐다. 【사진 제공=필라멘트픽쳐스】 |
'파수꾼'(2010)은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 입장을 각각 살피며, 학교폭력이 어떤 식으로 확대되고 재생산되는지 들여다보는 영화다. 처음엔 서로에게 호감을 품었던 친구들은 아주 사소한 감정 다툼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된다. 친구가 자신의 섭섭함을 알아주길 바라서 상대방 감정에 작은 상처를 주려던 시도는 돌연 학교폭력으로 변질된다.
기태, 동윤, 희준은 같이 여행을 가고, 서로의 집에 놀러갈 정도로 가까운 친구였다. 【사진 제공=필라멘트픽쳐스】 |
영화는 기태(이제훈)의 아버지를 따라가며 진행된다. 기태가 자살한 뒤 그는 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헤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분명히 확인하게 되는 건 자신이 아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아들과 친한 줄 알았던 친구들은 아들에 대해 묻는 그에게 '나는 별로 친하지 않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가장 친하다는 친구는 장례식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기태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사실 굉장히 외로운 인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사진 제공=필라멘트픽쳐스】 |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이 이처럼 외면되는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아들이 어떤 학생이었는지 잘 모르는 아버지이긴 하지만, 기태가 늘 무리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잘생기고 힘센 그는 쾌활하기까지 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았다. 특히 동윤(서준영), 희준(박정민)과는 집에도 자주 놀러가고, 여행도 같이 갈 정도로 단짝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고민에 귀 기울이고, 평생을 함께할 벗처럼 시간을 보냈다.
겉으로는 즐겁게만 보이는 이 교실엔 사실 권력 관계가 있다. 【사진 제공=필라멘트픽쳐스】 |
영화는 멀리서는 친밀하게만 보이는 이들의 관계에 늘 긴장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윤과 기태는 중학교부터 알았던 반면, 희준은 고등학교 때 두 사람과 친구가 됐기 때문에 언제나 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또한 기태가 "많이 컸다"며 장난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희준은 불쾌했다. 그가 자신을 '꼬붕'으로 여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기태는 장난처럼 "많이 컸다"는 말을 한다. 사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희준은 기분이 상했다. 【사진 제공=필라멘트픽쳐스】 |
친구 간의 갈등은 어느 날 별것 아닌 일을 계기로 증폭된다. 희준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이 기태에게 관심을 더 많이 갖는 모습을 목격하며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기태가 그 와중에도 여학생과 자신을 이어주려고 하는 것을 보며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 희준은 기태의 자존심에도 흠집을 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다.
희준은 기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의 가정사를 건드리게 된다. 【사진 제공=필라멘트픽쳐스】 |
희준은 기태가 부모 이야기만 나오면 화제를 돌리는 것에 그의 결핍이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다른 친구들과 그 문제에 대해 뒤에서 얘기도 나눈다. 여느 때처럼 부모 이야기에 기태가 화제를 돌리자, 다른 친구와 눈을 마주치고 웃는다. 기태가 그런 기묘한 비웃음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집에 돌아갔을 때 반겨줄 엄마가 없다는 건 자신에게 가장 큰 콤플렉스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부모 이야기를 할 때 끼어들 수 없다는 건 기태에게 큰 스트레스다. 【사진 제공=필라멘트픽쳐스】 |
사실 두 사람의 이런 기싸움은 사춘기를 지나는 어느 친구 간에도 있을 법한 갈등이다. 친구의 말과 행동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는 말을 순순히 털어놓으면 어쩐지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자신도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학교폭력이라는 다소 불편한 소재를 다룬 이 영화가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친구 관계의 보편적 양상을 섬세하게 묘사한 데 있다.
친구끼리 말다툼을 하는 장면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사진 제공=필라멘트픽쳐스】 |
여기까지만 봤을 땐, 둘 사이에서 희준이 조금 더 비열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태가 희준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고의가 아니었던 반면, 희준은 기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다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 가정사를 건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에 기태가 희준에게 복수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단 한 번으로도 친구 관계를 박살내는 파괴력을 지닌 것이었다. 그는 친구 관계에 교실에서의 서열을 끌어들이기로 마음먹는다.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 두 사람과 친구가 된 희준은 늘 약간의 벽이 있다고 느낀다. 【사진 제공=필라멘트픽쳐스】 |
기태는 담배를 피우다가 희준에게 망을 보라고 시킨다. 곧장 장난이 너무했다며 사과하지만 희준이 받아주지 않자 뺨을 때린다. 며칠 뒤 관계를 회복해보려는 자신의 노력을 무시하자 "고개를 들라"고 명령조로 얘기한다. 그걸로도 성이 풀리지 않자 희준의 가방을 뺏고, 안에 들어 있는 책을 태운다.
늘 폭력적이었던 기태, 그를 방관했던 희준
목줄 풀린 도사견처럼 날뛰던 기태는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널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다"는 희준의 말과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된다"는 동윤의 얘기를 듣고 자기 처지를 직면한 것이다. 세 사람의 대화는 학교폭력이 지닌 속성에 대해 많은 것을 드러낸다. 학교폭력은 피해자의 육체와 정신을 멍들게 만들지만,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가해자에게도 온전한 인간 관계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건 상대방이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껴 한 행동을, 가해자는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태를 가해자로, 희준을 피해자로만 그리는 이분법적 구도에 머물지 않는다. 극의 초반부를 스치듯 지나가는 신(scene)에서 기태는 한 학생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있다. 희준과 동윤을 비롯한 친구들은 그저 씁쓸한 표정으로 그 폭력을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맞고 있는 학생의 사연이 나오진 않지만, 어쩌면 그 역시 과거엔 희준과 마찬가지로 무리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기태의 시한폭탄 같은 폭력성에 희준과 동윤 또한 일정 부분 책임을 갖는다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마지막에 겪게 되는 파국은 '폭력적이지만 나에겐 착한 친구'라는 기만에 대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영화 `파수꾼` 포스터. 【사진 제공=필라멘트픽쳐스】 |
장르: 드라마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박정민, 서준영, 조성하
평점: 왓챠피디아(3.9/5.0), 로튼토마토 팝콘지수(76%)
※2022년 8월 5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U+모바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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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