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 등 재벌가 딸들의 호텔 전쟁, 왜 하는거야
(왼쪽부터)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사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
최근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에서 서울 명동에 문을 연 양식당 ‘마이클 바이 해비치’ |
외국인이 돌아오며 서울 명동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명동에 선제 투자한 곳이 있습니다. 무려 3개의 레스토랑을 동시에 오픈한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이하 해비치 호텔)입니다.
해비치 호텔은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의 옛 KT서울중앙전화국 자리 건물 3층에서 일식, 중식, 양식 3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총 298석 규모입니다.
자신감이 넘칩니다. 이미 5년 전 종로 센트로폴리스 빌딩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직장인들 사이 맛집 인정을 받은 레스토랑이기 때문입니다. 해비치 호텔하면 제주인데, ‘홈그라운드’를 벗어나 세(勢)를 넓히는 모습에 관심을 더 받고 있습니다.
국내 호텔업계 지형이 바뀌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중소 기업이나 개인이 운영하던 호텔들은 구조조정 혹은 매각을 단행했습니다. 글로벌 체인 호텔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외국인들의 발길이 뚝 끊기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도 제대로 할수 없게 되자 문을 닫아야만 했죠.
살아남은 곳은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 곧 자본력이 뒷받침되는 곳이었습니다. 지난 3년간 버는 돈은 거의 없어도 실탄 장전이 가능했던 곳은 다름 아닌 국내 대기업 계열사 호텔입니다. 재벌가 2,3세 딸들이 운영하거나 몸 담고 있는 곳이 살아남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해비치 호텔이 바로 그러한 곳 중 하나입니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더욱 되고 있습니다. 비교 대상보다 우위를 점하려니 불꽃튀는 경쟁이 불가피합니다.
재벌집 딸들 운영하는 호텔, 어디야?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사장 |
지난 2003년부터 해비치 호텔을 이끌고 있는 정윤이(55) 사장은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의 셋째딸입니다. 제주 해비치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현대 기아자동차가 턱하니 전시돼 있는 이유, 아시겠죠?
화성에 위치한 롤링힐스 호텔도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의 호텔입니다. 그러니까 정 사장은 제주, 서울, 화성 등을 오가며 호텔 경영을 도맡고 있습니다.
정 사장은 해비치의 대주주였던 어머니 고(故) 이정화 여사의 뒤를 이어 호텔 사업을 하는 것인데요.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식음료(F&B) 사업에 힘을 싣는 모습입니다.
해비치 호텔에 따르면 현재 해비치가 호텔 밖에서 운영 중인 고급 식당은 서울과 부산 지역 등에서 총 9곳에 이릅니다. 숙박업만이 아니라 식음료 사업에서도 호텔 수익성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
삼성가 장녀 이부진(53) 사장은 신라호텔을 운영합니다. 지난 2001년 신라호텔 부장으로 일을 시작해 2010년 신라호텔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 사장은 외모부터 성격, 경영 스타일 등에서 부친을 매우 닮아 신라호텔 안팎에서 ‘리틀 이건희’란 평가를 받는데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근성과 최고에 대한 열정이 커 ‘승부사 기질을 가진 경영자’란 수식어도 따라 붙습니다.
오너가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호텔신라 주주총회에 참석, 직접 의사봉을 잡고 의장직을 수행하는 등 경영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딸 정유경(51) 신세계 총괄사장 역시 1996년 조선호텔에 입사해 2009년 신세계 부사장을 맡기 전까지 그룹의 호텔 사업을 지휘했습니다.
그러다가 신세계가 남매 분리 경영 체제를 강화하면서 조선호텔은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 부문으로 편입됐고,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백화점 부문을 이끌며 서울 반포에 있는JW메리어트 호텔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백화점 부문 자체 호텔 브랜드 ‘오노마’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호텔 사업에 대한 정유경 사장의 경영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이자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의 딸 장선윤 롯데호텔 전무는 현재 미국 뉴욕에서 호텔사업에 몸담고 있습니다. 롯데그룹이 미국에서 사업 확장에 주력하는 만큼 장 전무가 롯데호텔의 글로벌화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입니다.
호텔 사업, 도대체 왜 하는건데?
신라호텔 서울의 실외 수영장 어반 아일랜드 모습 [사진 출처 = 신라호텔] |
호텔 사업은 유독 재벌가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분야입니다. 호텔이라는 장소 자체가 럭셔리의 상징이라는 점, 여성이 지닌 섬세함 및 부드러운 이미지가 호텔업종과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들이 가진 엄청난 인맥도 호텔 경영에 있어 유리한 부분이죠. 이같은 요소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만, 꼭 그러한 이유만 있을까요.
재벌가 딸들이 호텔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로는 ‘돈’ 버는 일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주요 대기업의 호텔 사업을 살펴보면 면세점, 백화점 등 각종 유통 및 식음료 사업과의 시너지를 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텔 사업에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또 다른 기업을 운영하거나 해외 진출을 쉽게 꾀하는 것이죠.
이는 단순히 재벌가 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개개인이 호텔 사업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췄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죠.
제주 해비치 호텔 실외수영장 [사진출처: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
사실 호텔업은 부동산 등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입니다. 인건비 비중이 워낙 높아 그룹의 주요 계열사 중에서도 영업이익률이 낮은 편에 속합니다. 그럴수록 장기적인 안목을 갖춘 오너의 결단력과 추진력은 필수입니다.
호텔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 호텔들을 이끄는 여성 경영인들을 보면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회사 경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며 “단순히 재벌가 딸이어서,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보다 스스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대기업 계열 호텔 경영자들 중에는 대학 때부터 호텔 관련 전공을 하며 전문성을 쌓아온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서울 반포에 위치한 JW메리어트 서울 호텔 전경 |
신세계 정유경 총괄사장은 이화여자대학교 비주얼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 그래픽디자인과를 나왔습니다. 신세계조선호텔에 입사한 뒤 호텔 객실의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고급화하는데 자신의 전공을 십분 발휘했습니다.
롯데호텔 장선윤 전무는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는데, 기업 및 브랜드 이미지 관리 측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재벌가 딸들의 호텔 경영 참여는 그룹 내 지분이나 상속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단순히 임원으로 경영에만 나서기보다 각 그룹의 재산 분할 구도나 연관성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호텔업계는 ‘코로나19’란 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와 올해 거리두기 해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도 돌아오고 있고요. 분명한 호재입니다.
재벌가 딸들이 호텔 경영자로서 어떤 면모를 보여줄지, 어떻게 경쟁력 강화에 나설지,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을지 기대를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