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바다라면은 역시 꽃게라면!
[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
(17)해변 아지트의 ‘별식’
바닷가 근처에 살면 알게 되는 것 하나. 내 고향인 해운대를 기준으로 해수욕장이 개장하면 현수막이 걸린다. 해변에서 이 거리까지는 수영복을 입고 다녀도 괜찮다는 알림이다. 가끔 일반 거주지에도 수영복을 입은 채 물건을 챙기는 사람들이 등장하곤 하지만, 보통 바다에서 가까운 숙박시설이 있는 몇백m 정도 거리까지만 수영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허용된다.
그리고 바닷가 근처에 살면 아주 잘 알게 되는 것 둘. 바다는 들어간 다음의 뒤처리가 귀찮다. 그거야 ‘바다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가 몰라?’라고 생각하겠지만, 말하자면 이런 뜻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해변을 걷다가 휴대폰을 빠뜨려 영영 복구하지 못한 친구가 한 학기에도 한두 명씩 나오고, 모든 계절의 바다에 발을 담가보고 물기가 바짝 마를 때까지 신발을 들고 걸어본 적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라도, 바다 입수의 뒤처리는 귀찮다. 굉장한 노하우가 생기거나 아무렇지 않아지지도 않는다.
아무리 바다에서 집이 가까워도 기십분은 걸어야 하는 거리를 머리까지 푹 젖은 채로 수영복에 비치타월을 두르고 터벅터벅 걷기는 어렵다. 한여름이고, 수영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가능한 거리는 한정적이니까. 차를 타고 이동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힘들다. 뒷자리에 비닐이며 수건을 깔고, 마른 후에 모래를 털어내는 것도 일이다. 특별히 휴가를 떠나지 않아도 툭하면 바다에 들어갈 수 있으면, 나중에는 ‘귀찮은데 뭘 들어가’를 중얼거리며 모래사장 입구에 앉아 부채질이나 하게 된다.
그러니 부산의 해운대, 강릉의 경포대라는 대표적 휴가지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나 물놀이를 한 적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누구보다도 귀찮은 척, 그립지 않은 척, 바다에 ‘쿨한 척’을 하며 근처에 가도 발 한 번 담가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들은 물속에 잠겨 살던 열 달을 기억이라도 하듯 물놀이를 좋아하는 존재이니까. 그래도 바다 입수의 귀찮음을 아는 캠퍼 가족은 해답을 찾아냈다. 바로 바닷가 캠핑장이다.
한 걸음만 나아가면 그곳이 수평선
소설 <어린 왕자>에서 주인공이 살던 별은 작고 작아, 의자를 몇 발짝만 뒤로 옮기면 노을을 볼 수 있다. 아무리 바다 가까이에 살아도 집에서 보이는 수평선은 빌딩 사이 한 뼘인 해운대 출신에게도 바닷가 캠핑장은 매력적이다. 릴랙스체어에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이면 파도 소리가 들리고, 부지런을 떨어 해변 바로 바다 옆 사이트를 사수하면 그야말로 한 발짝만 나가면 수평선이 보인다. 무엇보다 입수 후 집까지 돌아오는 거리가 짧다. 체력이 뚝 떨어지기 직전까지 놀다가 몇m 걸어오면 캠핑카 옆 수전(텐트라면 캠핑장 내 샤워 시설)에서 모래를 훌훌 털고 말끔하게 씻은 뒤 바닷바람에 물기를 말릴 수 있다! 마치 바다 바로 옆에 우리를 위한 아지트를 차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알고 보니 물놀이의 신나는 여운이 미처 사라지기 전 뒤처리를 끝내버리는 것이 요령이었다. 우리의 ‘귀차니즘’을 극복하는 방법은 해변 아지트였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게 낯선 바다였던 것도 도파민을 극대화하는 데 한몫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 그리고 각 해역은 정말로 특징이 다르다.
남해만 보던 해운대 출신에게 동해의 경포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수면의 색감이 두드러지게 짙어지는 바다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급격하게 깊어지는 수심이 한눈에 들어오며 가벼운 긴장감을 동반하게 한다. 하지만 동해와 남해에 모두 익숙해진 가족에게 서해는 그야말로 온종일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바다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방파제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둘러싼 어은돌 해수욕장에 바로 인접한 어은돌 송림캠핑장. 텐트도 카라반도 있지만 무엇보다 해변 바로 옆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어 캠핑카를 선택했다. 퇴근 후 고속도로를 달려 밤중에 도착해 아침 일찍 구경한 캠핑장 앞바다는 분명 물이 찰랑찰랑 차 있어 위험해 보였는데, 낮이 되자 저 멀리 방파제 너머까지 물이 빠지고 걸어가는 내내 게와 조개가 만든 구멍이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그러다 햇볕에 노곤해지고 맥주 한 잔 마시며 파도를 감상하고 싶은 저녁나절이 되자 다시 물이 차오르며 해변을 가득 메운다. 조개잡이를 떠난 옆 사이트 가족, 노을이 물든 수평선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부탁하는 대학생 무리.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다를 즐기며 추억을 만든다. 바다를 옆에 두고 살 때는 나가기 귀찮더니, 해변 옆에 캠핑 아지트를 차리니 하루에 세 번도 나가고 싶군. 바닷가 출신마저도 푹 빠지게 하는 바닷가 캠핑의 매력이라니.
▶캠퍼라면 이렇게√해산물 넣어‘특식’처럼
√널찍한 그리들에 끓일 땐 꽃게로 국물 낸 후 잠깐 빼기
√수프는 70%만, 된장 풀고 무·대파까지 넣어주면… 고향집 가족들 생각나는 맛!
캠퍼의 구세주, 질리지 않는 그 맛
바다를 바라보며 가장 간단하게 바다를 맛보고 싶은, 바닷가 캠핑에서 제일 선택하기 좋은 메뉴는 꽃게라면이다. 비록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도 이번 캠핑에서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온갖 요리를 만들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푸드 에디터지만, 캠핑에서 가장 자주 맛있게 먹는 음식은 라면이다.
애매한 시간에 캠핑장에 도착해 당장 무엇이든 먹을 것을 가족의 입에 넣어줘야 할 때, 식사에 국물이 필요한데 찌개를 끓이기는 귀찮을 때, 그냥 아무거나 먹고 일단 푹 쉬고 싶을 때. 언제든 그 간편함과 보장된 맛은 휴식이 간절한 캠퍼를 도와주는 구세주다. 그리고 캠핑은 한 번에 한 끼만 먹는 여정이 아니다. 아침, 점심, 간식, 저녁, 야식까지 언제든 한 번은 라면을 먹게 된다. 그야말로 비상식량이자 필수 식량이다. 무엇보다 온갖 재료를 집어넣고 끓이면 특식처럼 보인다는 장점을 빠뜨릴 수 없다.
집에서는 뒤처리가 귀찮아 잘 먹지 않는 식재료도 기꺼이 요리하게 되는 것이 캠핑. 쓰레기봉투를 뚫어서 온 집 안을 비린내로 진동하게 하는 해산물이 주로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개방감이 탁월한 캠핑에서는 신선하게 가져가기만 하면 아무 걱정이 없다. 새우라면도 문어라면도 꽃게라면도 마음 편하게 끓여보자.
라면을 끓이는 데에는 냄비도, 우묵한 그리들도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그리들의 경우에는 아무리 우묵해도 부재료가 많으면 면이 푹 잠기지 않고 국물이 쉽게 졸아든다. 하지만 널찍한 그리들에 푸짐하게 라면을 끓여 나누어 먹는 것도 캠핑의 로망.
꽃게라면을 그리들에 끓이고 싶다면 먼저 국물을 낸 다음 꽃게를 잠시 꺼냈다가 면을 익힌 후 다시 꽃게를 넣으면 된다. 라면 개수에 따른 물의 양 맞추기가 힘든 사람이라도 걱정하지 말자. 수프를 푼 다음 간을 보면 해결된다. 짜면 물을 넣고, 싱거우면 꽃게라면인 만큼 된장을 푸는 것이다.
우선 우묵한 그리들이나 냄비에 물을 끓이고 라면 수프는 70%만 넣은 다음 된장을 푼다. 나박나박 썬 무와 대파를 넣어 꽃게탕 느낌을 살리면 더 좋다. 끓으면 손질해서 4등분한 꽃게를 넣고 무와 꽃게가 거의 익을 때까지 끓인다. 공간이 부족하면 꽃게를 잠시 덜어낸 다음 라면을 넣고 익히면 완성! 다시 꽃게를 얹어 바닷가 물놀이의 여운에 아직 젖어 있는 모두와 함께 나누어 먹는다. 고향집 가족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바닷가 캠핑의 한순간이다.
*어은돌 송림캠핑장: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모항파도로 398-4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정연주 푸드 에디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