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듬뿍 들어 어죽 닮은 졸복탕의 기준선 바꾼 맛
(75) 봄이 오는 진도 오일장
오일장이 열리는 진도 읍내에서 30분을 더 들어가 먹을 만한 이유가 충분한 졸복국. 큼지막한 졸복살을 넣은 어죽 스타일로 진도산 대파 양념장을 넣어야 비로소 맛이 산다. |
작년 이맘때 진도 오일장 취재를 갔었다. 장날 전날에 도착해 진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세월호의 아픔이 고스란히, 여전히 남아 있는 팽목항에도 갔었다. 다음날, 장터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날짜를 확인하니 “아뿔싸” 장날을 잘못 알고 간 것이었다. 부랴부랴 다른 곳의 장터를 알아보고는 칼럼을 썼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보고 갔음에도 장날 아침 시장 가는 길이 조마조마했다. ‘혹시라도 장이 서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자꾸 났다. 트라우마 비슷한 것이 내 마음을 죄었다. 길을 돌아 멀리 시장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사실 이번 회차는 진도 오일장을 썼지만, 원래 목적지는 강진장이었다. 강진(4·9일장)의 장날을 2·7일장으로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출발하기 전날에 알았다. 어찌했든 진도 장날(2·7일장)에 잘 맞춰 다녀왔고, 봄이 온 진도 오일장 구경 또한 잘하고 왔다. 그러면 된 거다.
진도로 가면서 일행에게 했던 말이 “시장에 씨감자가 나와 있으면 봄 시작이여. 여름은 고구마 순이 알리고, 봄은 씨감자여”였다. 시장 초입부터 씨감자가 반겼다. 봄 시작이다. 옆에 검은 흙을 뒤집어쓴 겨울 감자(제주산)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씨감자는 싹이 난 씨눈 부분을 위쪽으로 해서 심는다. 하나를 통으로 심지 않고 잘라서 심는다. 지금 심으면 여름 초입 6월에 수확한다. 시장을 구경하다 노란 단무지 앞에서 멈췄다. 예전 군산 대야장에서 봤던 단무지가 여기에도 있었다. 노랗게 물든, 술지게미를 뒤집어쓴 채였다. 이런 단무지는 아삭하면서 쫄깃하다. 시판 단무지는 무를 탈색한 다음 다시 색소를 입히고는 첨가물로 아삭한 식감을 흉내 낸다. 할매가 가지고 나온 단무지는 술지게미 속에서 수분이 빠지면서 쫄깃한 식감으로 변신한 것이다. 첨가물이 흉내 낼 수 없는 맛과 향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얼마예요?” 물었다. “두 개 5000원.” 단무지만 넣고 김밥 쌀 생각으로 샀다. 고춧가루 양념해서 그냥 먹어도 좋지만, 아무것도 넣지 않고 단무지만 넣고 김밥을 말아도 맛있다. 얼마 걷지도 못하고 희한한 나물 앞에서 멈췄다. “할머니 이 나물은 뭔가요?” “톳나물.” “뭐라고요?” “톳… 톳나물.” 보리순 사이에 있는 나물은 아무리 봐도 톳이 아니라 ‘별꽃나물’ 같아 보였다. 나중에 확인하니 별꽃이 맞았다. 된장 무침하면 맛이 좋은 나물이다. 봄이 오면 이런 나물은 오일장에서 만날 수 있다. 시장 구석구석 별꽃나물과 보리 순이 보였다. 이 동네 별꽃나물 맛집인 듯. 이런 나물은 백화점에는 없다.
진도 오일장의 씨감자가 봄을 알린다. 오일장이라 만날 수 있는 별꽃나물은 된장무침 하면 좋다. 대파가 아낌없이 들어간 진도 대파빵은 특산물 먹거리의 좋은 예. 겨울 숭어는 흙내 없이 쫄깃함만 가득하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항순) |
‘봄의 시작’ 알리는 씨감자가 초입부터 가득하고
보리순 사이 자란 ‘별꽃’…백화점서 못 구하는 ‘장터 한정판’
진도 겨울 대파로 만든 청년 창업몰의 대파빵·대파스콘
흙내 없는 겨울 숭어, 전통 된장과 먹는 구수함이란…
나물 사이를 지나니 어물전이다. 여기 또한 반가운 생선이 곳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썩어도 준치’의 준치가 먼저 반긴다. 봄철 잠시 비추고는 사라지는 생선이다. 예전에는 많이 잡혔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 회무침을 하면 밥이고, 술이고 사라지게 하는 마법을 지니고 있다. 부드러운 살결에 고소함을 가득 품고 있다. 서대와 박대, 농어, 숭어에 낙지까지 맛난 거가 지천이지만 눈길은 쏨뱅이로 향한다. 선어는 선어 나름의 맛이 있고, 반건조하면 또 다른 맛을 내는 생선이 쏨뱅이다. 낚시꾼들은 잡어 취급하는 생선, TV 낚시 예능에서도 그리한다. 쏨뱅이 맛을 아는 사람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 대접에 찾는 사람이 적다. 소금 살살 뿌려 구우면 천하일미다. 회는 쫄깃하고 단맛이 돈다. 고급 어종으로 대접받는 붉바리가 “형님” 할 정도다. 손님 기다리는 간재미도 물이 좋다. 사실, 간재미라는 어종은 세상에 없다. 홍어 새끼를 통상 간재미라 부르면서 다른 종이라 이야기한다. 간재미라 파는 것을 자세히 보면 참홍어와 홍어 새끼가 섞여 있다. 홍어는 등뼈 사이에 반점이 있고, 참홍어는 없다. 흑산도 홍어는 참홍어를 말한다. 통영에서 가자미를 도다리라 부르는 것도 비슷하다. 동네마다 어종을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울산에서 개우럭을 꺽저구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수도권 낚시꾼에게 개우럭은 40㎝가 넘는 ‘개큰우럭’의 줄임말이다. 개우럭이라는 종이 있는지도 모른다.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나오는데 간 붉은고추에 버무린 민물새우가 커다란 용기에 담겨 있다. 이 시기에 잠깐 나오는 녀석이라고 한다. 그대로 반찬으로 해도 좋고 보쌈에 쌈장 대신 먹으면 맛이 배가된다고 한다. 크지 않은 장터지만 나름의 구경하는 재미가 한가득한 곳이 진도장이다.
진도도 꽤 큰 섬이다. 독보적으로 큰 제주를 제외하고는 거제 다음으로 큰 섬이 진도다. 그다음이 강화도다. 농지도 꽤 넓어서 예전에 삼별초가 장기 항쟁을 할 수 있었다. 진도의 겨울은 대파다. 월동배추도 좋지만, 겨울에 소비하는 대파의 40% 정도가 진도에서 생산된다. 커다란 진도를 여행하면서 보니 한쪽은 월동배추, 다른 쪽은 대파 수확이 한창이었다. 대파 생산지지만 대파를 활용한 음식은 적다. 우리나라 대표 특산물을 생산하는 산지 대부분이 그렇다. 애꿎은 특산물의 모양만 본떠서 만든 팥빵은 어디나 있다. 진도도 대파빵이 있다. 다른 지자체와 달리 대파를 제대로 활용해서 빵을 만들었다. 진도군청 앞 거리에 청년 창업몰이 있다. 잘게 썬 대파를 듬뿍 올려 빵을 굽는다. 맛을 보면 달곰한 겨울 대파의 향과 맛이 제대로 살아 있다. 대파빵 외에 대파스콘도 있다. 스콘을 맛보면 ‘어디에서 먹어봤는데?’ ‘나 이 맛 아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딱 이 맛하고 비슷하다. ‘야채크래커’와 거의 비슷하다. 대파스콘은 ‘하이진도’ 카페에서도 판매하는데 스콘 내줄 때 같이 나오는 양파 생크림의 매력이 넘친다. 진도 대파빵에는 맛있는 대파가 듬뿍 들어있다. 특산물 활용은 이렇게 해야 함을 보여준다. 하이진도 010-3836-9611, 샹티 (061)542-8834
진도읍에서 한참을 들어갔다. 복국 먹으러 진도 읍내에서 30분 거리를 운전해서 갔다. 복잡한 도심에서 30분이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한적한 시골에서는 도심의 몇 배를 운전해야 하는 거리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밥을 먹을까?’ 가는 내내 의구심. 먹고 나올 때는 절로 고객을 끄덕였다. “그럴 만해.” 졸복국 이야기다. 졸복국? 맑은탕으로 먹는 거 아니었나? 물을 수 있다. 맑은탕으로 내지 않고 큼지막한 졸복살이 듬뿍 든 어죽 스타일로 끓여 낸다. 먹는 방법도 독특하다. 대파 듬뿍 들어간 양념장을 넣어야 비로소 맛이 산다. 푹 끓여 낸 졸복이 시원함을 담당한다면 고사리는 구수한 맛, 대파는 달곰한 맛 담당이다. 세 가지 맛이 조화를 잘 이룬다. 나오는 반찬 또한 다른 백반집보다 숫자는 적지만 맛있다. 탕과 함께 먹다 보면 적지 않고 오히려 많게 느껴진다. 졸복국 맛이 워낙 뛰어나 김치 외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졸복탕은 어디에나 있지만, 이 졸복탕은 진도에만 있다. 졸복탕의 기준을 바꾸는 맛이다. 굴포식당 (061)543-3380
요번 출장에는 특별한 손님이 동행했다. 만화가 허영만 선생님이 동행의 주인공. 한 달 전, “오일장 취재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 전화에 몇 개를 알려 드렸다. 강진 일정(실제로는 진도지만)이 맞으니 동행하면 어떨까 하셨다. 오랜만에 선생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일 년에 서너 차례 선생님 모시고 일본 출장도 다니고 국내 출장도 다녔다. 선생님과 동행이니 저녁에는 꼭 소주 한잔할 것이라 안주를 생각했다. 진도는 전복 생산도 많이 한다. 투석식 굴 양식을 하는 곳도 있다. 몇 가지 중에서 투석식 굴찜으로 할까 했는데 “요새 숭어 좋지 않니?” 출장 가는 중간 선생님이 숭어를 추천하셨다. 겨울은 숭어 먹기 딱 좋은 시기다. 숭어는 싸구려 횟감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가격도 그렇다. 하지만 1월에서 2월 사이 숭어 회 맛은 최고다. 날이 더울 때는 흙내가 나서 먹기 거북하지만, 겨울엔 냄새는 사라지고 쫄깃함이 가득하다. 작년 이맘때 진도에서 숭어회를 먹었기에 저녁에 바로 진도 수산시장으로 갔다. 숭어회 먹을 때는 초장도, 간장도 아니다. 공장식 된장이 아니라, 전통 된장을 양념해서 먹을 때 제맛을 즐길 수 있다. 된장의 구수한 맛이어야 숭어의 쫄깃한 맛을 제대로 받쳐 하모니를 이룬다. 식재료의 맛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겨울은 숭어가 맛으로 가장 빛나는 시기다. 봄이 오면 또 다른 숭어의 맛이 빛나기 시작한다. 겨울에는 노란 눈의 가숭어(참숭어·밀치)가, 봄철에는 숭어(보리숭어·개숭어)가 맛있다. 바다사랑 010-5333-0079
김진영 식품 MD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역마살 만렙의 27년차 식품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