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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페이퍼’에서 ‘검은 반도체’로…김은 어떻게 금(金)이 되었나

경향신문

정지윤 선임기자

“자주 사 먹던 김밥 김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올랐어요. 원초값이 올랐다더니 예전 100장 가격이 지금 50장 가격이 됐더라고요. 김밥 자주 먹는 집인데 걱정이에요.”

40대 주부 최모씨는 얼마 전 마트에 갔다가 껑충 오른 김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마저도 몇개 남아 있지 않아 얼른 집어 왔다며 “요즘 김 때문에 난리라더니 진짜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밥을 파는 분식집이나 반찬으로 김을 내놓는 식당들도 요즘 시름이 깊다. 계속 오르는 김 가격에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김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서울 서대문구 대학가에서 10년 가까이 장사를 해온 한 분식집 사장은 “다른 재료도 아니고 김 때문에 속을 썩일 줄은 몰랐다”며 “(김값이) 여기서 더 오르면 김밥 판매를 관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가격 상승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김밥에 쓰이는 마른김의 월평균 도매가격은 한 속(100장, 260g)당 1만89원으로 처음으로 1만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5603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80% 넘게 오른 수치다. 밥반찬으로 즐겨 먹는 조미김 가격도 줄줄이 인상됐다. 대천김, 광천김, 성경식품 등 중견 조미김 제조업체 3곳이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업계 2위 대기업인 CJ제일제당도 이달 초 김 제품 가격을 평균 11.1% 올렸다.

주변국 김 흉작에 한국 김 몸값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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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진열된 김. 연합뉴스

물가가 급등할 때에도 가성비 반찬으로 식탁을 지키던 김이 이처럼 ‘비싼 몸’이 된 이유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김 작황 부진이 있다. 근데 국내 작황 때문이 아니다. 2024년산 국내 물김(원초 상태의 김으로 마른김의 원료) 생산량은 약 1억5000만 속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6% 증가했다. 문제는 일본과 중국의 원초 흉작이다.


특히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김 생산량이 많은 일본이 최근 이상고온으로 바다 온도가 상승하고 적조 현상이 발생하며 원초 생산이 급격히 줄었다. 한·중·일은 전 세계 김 생산을 담당하는 주요 3국으로 한국이 전체 생산량의 65~70%, 일본이 25~3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일본 생산량이 절반 정도 쪼그라들며 한국산 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일찌감치 한국산 김 대량 구매에 나선 일본 식품업체들을 비롯해 수출로 물량이 빠져나가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김이 부족한 상황이 됐다.


‘K푸드’ 열풍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한국 김의 인기가 치솟은 것도 배경이 됐다. 최근 몇년 사이 미국을 중심으로 냉동김밥과 김스낵 등 김을 재료로 하는 음식이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 대형 식료품점 체인인 ‘트레이더조’에서는 지난해 출시된 냉동김밥이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매장마다 냉동김밥을 사기 위한 오픈런이 벌어졌을 정도다. 김은 지난해 해외 수출액 1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 ‘검은 반도체’라는 별명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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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 놓여 있는 시식용 김. 시장 점유율 상위권 김 전문업체인 광천김과 대천김, 성경식품은 주요 제품의 대형마트 판매 가격을 10∼30%가량 인상했다. 연합뉴스

업계 김 전문가로 통하는 김가영 동원F&B 마케팅부문 차장은 한국 김이 꾸준히 품질을 높이며 경쟁력을 키워온 결과라고 말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김이 ‘고급 김’의 대명사처럼 여겨졌지만 이제 품질과 기술, 생산량 등 모든 면에서 한국 김을 따라올 제품이 없다는 것이다.


“겨울 찬 바다에서 자라는 김은 고온과 병충해에 약해요. 미역보다 얇아 이물질도 잘 끼고요. 한국은 고품질의 이물질 없는 김을 만들기 위해 지난 10년간 기술과 장치산업에 집중 투자해왔어요. 온난화와 수온 상승에 대비해 고온과 병충해에 강한 김 종자를 개발했고 이물질 선별 기술도 탁월해요.”


다만 부족해진 국내 공급량을 늘리기에는 당장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김 차장은 “한국 김 선호와 글로벌 소비가 확대된 가운데 주변국들의 작황 부진까지 겹쳐 작년부터 일본을 비롯한 각국 업체들의 한국 김 확보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하반기에도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민 반찬서 ‘슈퍼푸드’로 국위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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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선임기자

우리나라 전남 바다와 서해안에서 자라는 김은 본래 귀한 음식이었다. 13세기 말 <삼국유사>에 처음 등장하는 김은 ‘신라시대 왕의 폐백 품목’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재미난 일화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인조 임금이 수라상에 오른 검은 바다풀을 맛있게 먹고 무슨 음식인지 물었는데, 한 신하가 음식 이름은 모르고 전남 광양에 사는 김여익이란 자가 만든 음식이라 답하자 그의 성을 따 ‘김(金)’이라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다. 우스개 같지만 광양에는 김여익을 기리는 유지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정설에 가깝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 가정에서 시장에서 사온 생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한 장 한 장 구운 김을 식탁에 올렸다. 부엌 한쪽, 기름 마를 날이 없었던 김 붓에서는 1년 365일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솔솔 풍겼다. 집마다 소금과 기름이 다르고 굽는 시간에도 차이가 있다 보니 김 맛도 각기 달랐다. 조미김이 대중화된 후로는 대부분 김을 사 먹는다. 포장기술의 발달로 유통 과정 중 습기로부터 김을 보호하고 기름에 젖는 것을 방지해 집에서 김을 굽지 않고도 갓 구운 듯 바삭한 김을 맛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고소하면서도 영양가 높은 한국 김은 ‘슈퍼푸드’로 주목받으며 해외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냉동김밥의 인기와 함께 건강에 좋은 ‘비건’(채식) 음식, ‘글루텐 프리’(Gluten-free·글루텐이 없는) 식재료로도 입소문이 났다.


해조류를 잘 먹지 않는 서양에서는 한때 김을 ‘블랙 페이퍼’(Black Paper·검은 종이)라고 부르며 혐오식품 취급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 스낵으로 즐긴다. 실제로 우리나라 김은 해외에서 일반 김, 김부각, 김튀김 등 다양한 간식으로 가공돼 판매 중이다. 한입 크기로 잘라 바삭하게 튀긴 김은 가볍게 집어 먹기 편한 데다 고칼로리인 감자칩 등에 비해 건강에 좋아 이만한 웰빙 간식이 없다. 우리나라 김이 수출되는 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캐나다, 태국, 호주, 대만 등 120개국에 달한다.

김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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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 앞바다에서 주민들이 김을 채취하고 있다. 충남도는 국내외 김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을 위해 기존 면적 대비 15%가량(580㏊)의 양식장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충남도 제공.

2019년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에는 한국의 해조류 섭취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소개된 적이 있다. ‘지구를 위해 해조류를 요리하는 한국’이라는 기사다. 한국인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김을 먹는다고? 어찌 됐든 맛있어서 즐겨 먹는 해조류가 탄소 배출을 줄이는 건 사실이다.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는 토지 오염을 줄이고 온실가스 감량에 큰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지구를 지키는 해조류는 정작 기후변화로 위기에 처해 있다. 지구 온난화로 바다 수온이 급상승하며 바다 식생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수온 상승은 특히 3~10도 정도의 겨울철 찬 바다에서 자라는 김 양식에 치명적이다.


김 양식은 바닷물이 차가워질 때부터 시작해 수온이 오르기 전 수확한다. 통상적인 김 생산 시기는 해상 양식을 기준으로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인데,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김 생산 가능 시기가 짧아지고 양식지가 점차 북상해 재배 면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 세계 해양 온난화가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역시 해수면 온도가 급격히 오르며 지난해 한반도 연안의 연평균 해수면 온도는 국내에서 관측을 시작한 199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19.8도)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80년 후 남해안에서 김 생산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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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리엑터(생물 반응조)로 불리는 큰 수조 안에서 육상 양식 김이 재배되고 있는 모습. 풀무원 제공

이미 도래한 위기에 김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기술이 속속 개발 중이다. 충남수산자원연구소는 겨울철 수온 상승으로 김 채취 가능 시기가 짧아짐에 따라 고수온에 적응하는 ‘광온성 김’을 개발하고 있다. 김을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재배하는 기술도 나왔다. 풀무원은 2021년부터 육상에서 김을 양식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착수해 최근 국내 최초로 육상 양식 김을 선보였다. 바이오리액터(생물 반응조)로 불리는 큰 수조에 바다와 동일한 김 생육환경을 조성하고 김을 양식하는 방식이다. 육상 양식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품질이 일정한 물김을 사계절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풀무원 관계자는 “육상 양식은 연중 생산이 가능해 국내 김 산업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3년 이내에 보급형 김 육상 양식 모델을 개발해 어민들에게 기술을 이전하고, 실제 어민들이 생산한 김을 가공해 판매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집 김만 먹어요” 요즘 소문 난 김 먹어보니...

옥화식품 ‘옥돌구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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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함께 입에 넣자마자 진한 풍미가 올라온다. 깊고 구수한 맛이 일품. 들기름 향도 진해서 씹을수록 고소하게 맛이 살아난다. 커피로 치면 다크로스트의 느낌. 밥반찬으로 제격이다.


용인시장 ‘밥엔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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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었을 땐 평범하다 싶었는데 밥과 같이 먹는 순간 뜨거운 기운과 함께 은은한 풍미가 살아난다. 자극적이지 않은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묘한 매력에 다른 반찬에 손이 갈 겨를이 없다.


소문난오부자 재래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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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짭짤하면서도 기름 향이 강하지 않고 깔끔하다. 바삭한 식감이 스낵 같은 느낌으로 부담 없이 계속 먹게 된다. 밥반찬으로 먹어도 좋고 맥주 안주로도 좋다.


하동녹차 명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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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아이유의 최애간식으로 소개돼 ‘아이유김’으로 유명해졌다. 조미김에 녹차분말과 명란을 첨부한 것이 의외의 조화를 이룬다. 살짝 매콤한 맛이 매력.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명란의 식감이 중독성 있다.

Q. 좋은김 어떻게 고를까?


좋은 김은 광택이 나고 색과 향이 진하다. 마른김의 경우 물에 넣었을 때 맑게 풀어지고 불에 구우면 선명하게 녹색으로 변하는 게 좋은 김이다. 오래되었거나 습기를 많이 먹은 김일수록 붉은빛을 띠는데, 나뭇잎이 노화되면 엽록소가 분해돼 녹색이 점점 사라지고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과 같다. 오래된 김은 색뿐만 아니라 맛에 관여하는 성분도 변해 품질이 나빠진다.


Q. 올바른 보관법은?


밀봉된 김의 유통기한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6개월~1년으로 긴 편이다. 개봉 후에는 일주일 이내에 먹는 것이 좋은데 특히 기름과 소금으로 조리한 조미김은 공기와 접촉하면 산패가 진행되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먹기를 권한다. 개봉한 후에는 냉장고에 두는 것보다 밀폐용기에 키친타월이나 방습제를 넣어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게 좋고, 잘 밀봉해 냉동 보관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맛과 향을 보존할 수 있다. 냉동된 김은 밀봉된 상태로 상온에 꺼내 두었다가 사용한다.


Q. 눅눅해진 김 어쩌죠?


눅눅해진 김은 접시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10초 정도 돌리거나 프라이팬에 살짝 구우면 바삭해진다. 짭조름하게 간을 맞춘 조미김도 맛있지만 질 좋은 재래김을 구워 먹거나 생김을 간장에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얇은 김 한 장에는 다양한 비타민과 마그네슘, 요오드, 아연, 철분 등이 함유되어 있고 단백질도 풍부하다. 정월 보름에 밥을 김에 싸서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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