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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떡파’도 반할 만한 말랑한 떡…기억하세요, 제 이름은 ‘신동진’

지극히 味적인 시장 (27)

익산 오일장

경향신문

익산 및 인근에서 많이 심고 질 좋기로 소문난 신동진쌀로 만든 가래떡. 전분 같은 일체의 첨가물 없이 쌀로만 뽑아낸 가래떡은 ‘쫀득쫀득’ 제대로 된 떡맛을 낸다.

모란·북평장과 함께 ‘3대 오일장’

북부시장 떡집 ‘신동진 쌀’만 고집

떡볶이 맛의 비결은 양념보다 떡


세계 몇 대 경관이니, 꼭 봐야 할 혹은 꼭 먹어야 할 것 등 수만 가지 중에서 단 몇 개만 꼽는 것은 항상 흥미를 유발한다. 누가 무슨 기준으로 꼽았는지도 잘 모르거니와 관심도 없다. 누구나 아는 전국 5대 짬뽕도 그렇다. 전국 5대 짬뽕이 있는데, 오일장은 없겠는가? 오일장도 있다. 성남 모란장, 동해 북평장 그리고 오늘 소개할 익산 오일장 세 곳이 호사가들이 꼽은 전국 3대 오일장이다.

전국 3대 오일장

지난 1년 전국의 오일장을 보부상처럼 떠돌았다. 멀리 제주부터 강원도 고성장까지 말이다. 3대 장터는 크기 기준으로 정한 모양이다. 세 군데 모두 1년 동안 다닌 장터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크기다. 경남 고성장도 빠지면 섭섭할 규모다. 3대 오일장을 뽑았던 사람이 제주는 안 간 모양이다. 크기로 치자면 서귀포 오일장도 셋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 제주 오일장은 넷과 차원이 다른, 비교 불가 규모다. 다녀보니 장터가 크다고 마냥 좋은 것만도, 작다고 마냥 나쁘지도 않았다. 지역의 계절 맛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일장이기에 계절과 지역에 따라 매력이 있었다.


익산에 있는 상설 시장 다섯 곳 중에서 북부시장 주변을 에워싼 모양새로 4일과 9일에 오일장이 선다. 바닷길이 금강 하구언으로 막히고, 우시장이 사라져도 호남 제일의 오일장 명성은 여전했다. 장터 크기는 물건 구경하면서 한 바퀴를 돌면 발목이 시큰거릴 정도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 사는 이들과 파는 이들로 가득했다. 명절을 코앞에 둔 오일장은 제수 거리 사는 이들이 많았다. 떡집은 불난 호떡집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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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오일장은 성남 모란장, 동해 북평장과 함께 호사가들이 꼽은 전국 3대 오일장이다.

맛있는 떡볶이의 비결은

한 살이야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더 먹게 되기에 별 감흥이 없다. 설날에 떡국 한 그릇을 받을 때 비로소 실물의 한 살을 먹는 느낌이 든다. 쌀을 불리고, 빻고, 쪄서 김 모락모락 나는 백설기로 만든 다음 떡 뽑는 기계에 밀어 넣는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맞춰 가래떡이 나온다. 방앗간 주인이 칼을 들고 일정 길이로 자르면 떡은 똬리 틀 듯 찬물 속으로 떨어진다. 찬물 목욕을 한 떡은 겉만 차갑다. 속은 여전히 뜨끈해 손에 쥐고 먹으면 떡 온기가 고스란히 손으로 전달된다. 40년이 넘었어도 가래떡을 보면 어릴 적 먹은 맛과 촉감이 또렷이 되살아난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겠지만 갓 나온 떡이 가장 맛있다. 꿀이나 설탕, 시럽도 좋겠지만 구수한 맛이 나는 조청이 가장 어울린다. 예전에 어머니들은 이 시기가 되면 식혜를 넉넉히 만들고 식혜를 졸여 조청도 만들었다. 북부시장의 떡집을 돌아다니다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지역에서 가장 많이 심고, 질이 좋기로 소문난 ‘신동진 쌀’로 가래떡을 만들고 있었다. 가래떡을 베어 무니 제대로 떡 맛이 났다. 사실 도시에 살면 제대로 된 가래떡 맛보기가 힘들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혹은 떡이 단단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분을 넣어 만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분 함량이 많은 떡은 쫀득한 것이 아니라 찐득거린다. 말랑한 가래떡이기에 몇 줄을 샀다. 떡볶이를 할 때 보통 떡보다는 양념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떡볶이를 맛있게 하는 비법은 며느리도 모른다던 비밀 양념보다는 떡의 맛이다. 익산의 떡집처럼 좋은 쌀로 만든, 굳지 않고 말랑말랑한 가래떡으로 하면 요리 ‘똥손’도 ‘금손’이 된다. 마른 떡이 물과 열에 의해 다시 말랑해진 것과는 다른 질감이다. 이는 밀떡도 마찬가지다. 밀떡이 더 좋다거나, 쌀떡이 더 좋다는 것은 개인 취향이지만 말랑한 떡은 개인 취향과 상관없이 맛있다. 설날에는 재래시장 떡집에 가면 언제든지 말랑한 떡을 구할 수 있으니 한번 떡볶이를 만들어보면 주인공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게 된다.


1월 시장에서 딸기는 필수

로컬푸드 매장 한겨울 딸기 ‘명물’

익산 시장통 대표 메뉴는 수제비

예약하면 때맞춰 밥 짓는 식당과

사골국에 토렴 ‘황등비빔밥’ 별미


바다가 없는, 1월의 중부지방 익산 장터에서 팔리는 농수산물 대부분이 외지 것이다. 1월에 채소가 나는 지역은 제주도와 해남, 남해, 고흥 등 따듯한 남쪽이다. 푸릇푸릇한 것 중에서 간혹 익산에서 재배한 노지 시금치나 냉이 정도가 가끔 눈에 띄었다. 여러 곳의 물물이 많이 오가는 장터에서 현지의 것을 알고 싶을 때 로컬푸드 매장을 찾으면 된다. 익산 시내에도 잘 꾸며진 로컬푸드 매장이 있다. 로컬푸드 매장을 애써 찾은 이유는 딸기를 사기 위해서다. 딸기는 잘 물러지는 특성이 있으므로 완전히 익기 전에 딴다. 유통 과정에서 조금씩 익지만 꼭지 부분이 파랗다. 로컬매장의 딸기도 다른 곳처럼 위가 파랗지만 그래도 더 익었을 때 따기에 훨씬 맛있다. 익산 로컬푸드 매장에 딸기가 가득했다. 예상대로 딸기는 향과 단맛을 가득 품고 있었다. 과일이나 채소 품종 중에는 일본에서 넘어온 것이 많다.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기관에서 국내 육성 품종을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일본 품종이 득세다. 하지만 딸기만큼은 몇 년 전부터 ‘노 저팬’ 운동이 일어나 지금은 대부분의 딸기 품종이 국내 품종이다. 딸기 판매대에는 설향 품종이 대부분이다. 국내 품종으로 대세 아이돌급 인기다. 이번엔 대세 딸기 대신 부드러운 향이 좋은 죽향 딸기를 선택했다. 다른 지역에서 나는 딸기 중에는 매향, 산타, 베리스타도 있다. 1월과 2월에 로컬푸드 매장에 간다면 딸기 구매는 필수다. 도시의 큰 마트에서 사먹던 것과 다른 맛이다. 딸기가 안 나는 여름에 만일 익산에 온다면 멜론도 좋다. 익산 멜론은 후숙하면 더 맛있고 그냥 먹어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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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부터) 부드러운 향이 좋은 죽향딸기. 밥 한 공기 ‘추가’를 부르는 참게탕.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한 오일장 대표 메뉴 수제비. 사골국에 토렴한 밥을 비벼 내는 황등비빔밥.

갓 지은 밥, 두 그릇은 기본

익산에 갈 일이 많았다. 익산 왕궁면에 있는 우리밀 돈가스 공장에 가거나 다른 일로 이래저래 다녔다. 십몇년 전이었다. 오가는 길에 봤던 동일가든이라는 곳에 밥을 먹으러 갔다. 보통 혼자 다니는지라 ‘가든’이 붙어 있는 식당은 못 들어갔다. 1인분은 잘 안 팔기 때문이다. 마침 일행이 있어 들어가 식사를 주문하니 30분 정도 뒤에 밥이 나왔다. 지금은 밥을 바로바로 해주는 곳이 많아졌지만 그때는 천연기념물만큼 보기 힘들었다. 주인장이 호기롭게 인당 밥 두 공기를 앞에다 두며 모자라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입이 짧은 필자는 그 말에 웃고 말았지만, 나중에 두 공기에 누룽지까지 먹고 나왔다. 같이 나온 장아찌며 6년 묵은 김치로 밥 한 공기, 주문한 참게탕으로 한 공기를 먹었다. 누룽지까지 먹고 나니 “잘 먹었다”라는 소리를 필자뿐만 아니라 일행도 합창했다.


사실 이번 출장을 익산으로 정한 이유도 이 집의 밥맛 때문이었다. 이 집은 도착 시각을 미리 알려주면 시간에 맞추어 밥을 하므로 기다릴 필요가 없다. 장터 구경을 하고 밥 먹으러 나서기 전 미리 주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오지 말라고 한다. 재단장 공사 중이라서 2월 중순이 지나 영업한다고 한다. 20년 전국을 다니며 밥을 먹었다. 전국에서 밥맛으로 꼽는 집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에서 톱이다. 밥이, 반찬이 참 맛있는 곳이다. 동일가든 (063)836-7599

시장 구경도 식후경

시장에 오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있다. 국수, 짜장면, 호떡, 어묵 등이 대표선수들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팥죽, 칼국수가 한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익산 오일장에서는 수제비가 대표다. 북부시장 건너 골목에 수제비만 전문으로 하는 집이 있다. 칼국수나 다른 메뉴도 있음 직한데 우직하게 수제비만 한다. 멸치로 육수를 낸 국물에 감자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뗀 수제비를 넣고 끓여 나온다. 수제비는 평범해 보이지만 얼큰함이 숨어 있다. 청양고추를 넣고 끓였기에 입에 넣고서야 매운 맛을 감지한다. 들어오는 손님 중에서 “덜 맵게”만 외치고는 앉기도 한다. 단골이다. 수제비만 먹기에 아쉬운 이들을 위해 찐만두가 있다. 둘이 온 테이블을 보니 만두찜기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옛날 손수제비 (063)857-1813


익산 오일장에서 서울 가는 길,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황등장터로 가다 보면 석상을 만드는 곳이 많다. 황등 중심가 근처에 좋은 화강암이 나는 석산이 있기 때문이다. 석산이 유명해지면서 같이 유명해진 음식이 황등비빔밥이라고 한다. 황등비빔밥의 특징은 다른 곳과 달리 사골국에 토렴한 밥을 비벼서 내온다. 갖은 채소와 육회는 취향껏 비벼 먹거나 그냥 먹으면 된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익산에서 군산으로 가거나, 집에 가기 위해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면 들러서 맛있게 비빔밥 한 그릇 했다. 전주·진주비빔밥 그리고 황등비빔밥을 먹을 때 반찬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한다. 비빔밥이라 게 사실 ‘반찬 + 밥’이기에 반찬이 필요 없다. 요번에는 화장실 간 사이에 찬이 깔려서 빼지 못했지만 김치와 국을 빼놓고는 되돌려 보내거나 혹은 주문할 때 이야기한다. 남겨서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진미식당 (063)856-4422


필자 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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