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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폭풍, 너 때문이야”

한때 푸른 바다 출렁이던 화성…

푸른 별이 적색 행성으로 변한 까닭?

NASA가 네이처에 밝힌 ‘원인’


영화 ‘마션’에서 봤던 모래바람

수분을 상층 80㎞까지 끌어올려

수소 원자 방사선에 맞아 날아가

바가지에 물 새듯 점점 불모지로


물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지만

깊은 땅속 흐르는 물 ‘작은 희망’

경향신문

40억년 전엔 바다가 20%…지금은 ‘황량한 별’ 현재 모습(오른쪽)과 비교한 40억 년 전 화성 바다(왼쪽)의 상상도. 당시 화성의 바다는 지각의 20%를 뒤덮었으며 최대 수심은 1500m에 이르렀다. 자료 | 미국항공우주국(NASA)

넘실대는 파도와 푸르게 빛나는 물결, 저 멀리 시선을 던지니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눈에 들어온다. 해안가에선 물살이 바위와 부딪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귀에 꽂히고, 부서진 파도는 바다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40억년 전, 외계인들이 태양계의 네 번째 행성 화성에 착륙했다면 봤을 풍경이다. 당시 화성 표면의 20%는 바다로 덮여 있었다. 표면의 70%가 바다인 현재의 지구에 비해선 작지만 우주에서 바라봤다면 푸른색이 선명히 드러났을 것이다. 옛 화성 바다는 깊이도 만만치 않았다. 과학계는 최대 수심을 1500m로 추정하는데 현재 지구에 있는 지중해의 평균 수심과 비슷하다. 화성의 바다는 꽤 넓고 깊었다.


하지만 화성의 현재 모습은 그야말로 불모지다. 인류는 1970년대부터 탐사선을 보내 왔지만, 지금까지 화성 표면에서 40억년 전과 같은 모습은 전혀 찾지 못했다. 십중팔구 그런 모습은 앞으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흙과 바위가 나뒹구는 메마른 적색 행성, 그것이 지금의 화성이다.


그렇다면 방대하던 화성의 바다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결과에서 사라진 바다의 중요한 원인이 화성 표면에서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에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탐사를 주도한 제로니모 빌라누에바 NASA 연구원은 “대기 중 수분이 모래 폭풍에 뒤섞여 상층 대기까지 끌려 올라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층 대기는 우주와 맞닿는 면이다.


화성 표면에서 나타나는 모래 폭풍의 가공할 힘은 할리우드 영화 <마션>에서 묘사된 바 있다. 인간이 화성 표면에서 강력한 모래 폭풍을 만난다면 시야가 완전히 차단돼 이동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땅에 설치한 구조물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햇볕까지 차단돼 태양 전지판에서 나오는 전기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전자장비도 무용지물이 된다. 실제로 화성 탐사선 오퍼튜니티가 지난해 강력한 모래 폭풍에 노출된 뒤 작동 불능에 빠졌고, NASA는 결국 사망 선고를 내렸다.


화성의 모래 폭풍은 1971년 미국의 탐사선 마리너 9호가 처음 확인했고, 1977년부터 대략 5~10년 단위로 지난해까지 모두 6번 휘몰아쳤다. 모래 폭풍은 화성의 봄과 여름에 주로 생기는데, 심할 경우 미국의 국토 면적만 한 땅을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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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연구진은 화성 궤도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 기체 분석 탐사선을 이용해 지난해 화성을 감쌌던 모래 폭풍 속을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모래 폭풍이 화성 표면 근처에서 수증기 상태로 떠도는 물을 상공 80㎞까지 밀어올리는 점이 확인됐다. 평소 화성의 수증기는 20㎞ 상공 이상 상승하지 않는데 4배나 높이 튀어 올라간 셈이다. 그런 높은 곳은 화성에선 우주 공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태양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물이 직접 노출된다.


태양 방사선은 둔탁한 망치처럼 물의 화학적인 구조를 부순다. 물은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묶여 만들어지는데, 수소 원자 일부가 태양 방사선에 맞아 우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물이 사라져 버린다는 얘기다.


NASA 연구진은 이런 일이 지난해뿐만 아니라 40억년 전 화성에서도 일어났다고 봤다. 지구에 비해 부족한 대기가 수분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하지 못했고, 결국 깨진 바가지에서 물이 새듯 우주로 수분이 점차 빠져나가면서 화성은 불모지 행성이 됐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대로라면 그나마 남아 있는 화성의 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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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폭풍으로 인한 화성 표면의 변화 2016년과 지난해에 촬영된 화성. 지난해에는 대규모 모래 폭풍이 불어닥치면서 화성 표면이 황토색으로 대부분 가려졌다. 자료 | 미국항공우주국(NASA)

하지만 화성의 운명이 어둡지만은 않다. 모래 폭풍과 태양 방사선에서 안전한 깊은 땅 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구과학’에 운석으로 인해 움푹 팬 화성의 한 충돌구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화성의 적도에 있는 이 충돌구 경사면에서 물이 흐른 것 같은 직선 무늬가 보이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것인데, 분석 결과 지하 750m에 물이 고여 있었다. 이 물이 압력을 받아 지상으로 새어 나오며 무늬를 만든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이탈리아 연구진이 화성 남극의 얼음층 1.5㎞ 아래에 지름이 20㎞에 이르는 대형 호수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평균 기온이 영하 62도에 이르는 화성에서 액체 상태의 물이 지하 곳곳에 존재하는 건 마그마로 인한 열 때문으로 과학계는 추정한다. 햇볕이 닿지 않는 어두운 지하수 속에서 떠다니거나 헤엄치는 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화성에서 장기간 머물게 된다면 지하에 있는 다량의 물을 끌어올려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식수로 쓰고 농사에도 활용해 화성에서 자급자족할 기반을 만들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화성에 쏠린 인간의 호기심이 결실을 거둘 날이 올지 주목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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