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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커피 농사를 짓는다면 믿으시겠어요?

3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가 한국에 커피 체험 농장을 일군 이야기.

왜 하필 커피 체험 농장일까?

인생 이모작으로 귀농을 택한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커피 농사’를 택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언론사에서 30년 동안 기자로 활동한 임영주(63) 씨는 은퇴하기 전부터 커피 체험 농장을 계획했다. 기자 시절 아프리카 커피 농장을 방문하고 나서 커피의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는 커피나무에 달린 열매서부터 자그마한 커피 생두를 채취하는 모습까지 전체적인 과정을 보게 됐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커피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도 본인과 같은 경험을 갖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단순한 커피 농장이 아닌 커피 '체험’ 농장을 계획했다.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기자의 사명감으로 사람들에게 커피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커피나무에 달린 커피 열매에서부터 따뜻한 커피 한잔이 만들어지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커피의 진짜 이야기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한잔의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몰라요. 담양커피농장에 오면 커피나무를 직접 보고, 커피꽃 향도 맡을 수 있어요. 그리고 잘 익은 커피 열매를 직접 따서 볶고(로스팅), 로스팅한 원두를 커피 분쇄기에 갈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지요. 그 다음 서로가 만든 커피를 조금씩 나눠 마셔요. 신기한 건 같은 원두여도 각자가 만든 커피의 맛이 다 다르다는 거예요. 생두를 볶을 때, 원두 가루로 커피 내릴 때 미묘한 차이 하나로 맛이 달라지죠. 더 신기한 건 다들 자기가 직접 만든 커피가 제일 맛있대요.”

담양커피농장의 세 가지 매력 포인트

커피 한잔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담양커피농장은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진짜 매력은 커피에 대해 몰랐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커피꽃에서 커피향이 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향긋한 쟈스민향이 난다. 향이 좋아서 매년 커피꽃을 보러 오는 단골손님도 있을 정도.


커피 열매는 커피 외에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열매 씨앗은 커피 원두로 사용되고, 껍질(파치먼트)은 말려서 차(tea)로 마신다. 심지어 씨앗과 껍질을 제외한 과육 부분은 당도가 높아 커피잼으로 만들어진다.


담양커피농장에는 세상에 하나뿐인 원두가 있다. 원두 이름은 ‘골든캐슬’. 이곳 지역 이름인 금성면에서 따왔다. 이곳에서 직접 생산하는 골든캐슬 원두는 이미 커피 마니아들에게 소문이 자자하다. 한국 어디에도 없는 맛과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


골든캐슬 원두도 담양커피농장이 커피 체험 농장이었기에 유명해질 수 있었다. 직접 맛 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입소문이 난 덕분이었으리라. 체험 농장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도 있지만, 원두나 묘목 판매와 같은 부수적 수익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농장에 체험을 접목시켰더니 확실히 시너지 효과가 있어요. 보통 이런 형태를 6차 산업이라 하더라고요. 커피나무를 재배하고(1차 산업), 골든캐슬 원두나 커피잼을 만들어내고(2차 산업), 자신이 딴 열매로 커피를 만들어 먹는 체험(3차 산업)이 합해진 개념이죠. 사람들이 농장에서 직접 체험을 하니까 원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기가 많아졌어요. 수익 비율로 따지면 체험농장이 가장 높을 것 같지만, 묘목(1차)이나 원두, 커피잼(2차)에서 얻어지는 수익이랑 비슷해요. 1석 3조인 셈이죠.”

커피 황무지였던 한국에서 시작한 커피 농사

최근 이곳은 신문에 ‘아열대 작물 견학 1번지’로 소개되었다. 아열대 작물 하면 당연히 제주도 아닌가?


“제주도는 기후만 따뜻할 뿐이지 그 외에 자연 요건들은 아열대 작물을 키우기에 힘든 부분이 많아요. 습하기도 하고, 태풍이 오면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히려 제주도에 있는 아열대작물연구소에서 이곳으로 종종 견학을 오세요.”


지금이야 이렇게 다양한 기관과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커피 체험 농장이 되었지만 지금의 커피 농장이 있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커피 씨앗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커피 씨앗은 1년이라도 묵으면 발아율이 반감되기 때문에 그 해 수확한 씨앗을 구하는 게 관건. 처음에 구매한 씨앗은 전부 1년 이상 묵은 씨앗이어서 낭패를 봤다. 그리고서 어렵게 구한 씨앗으로 발아에 성공했지만, 겨울이라는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나무는 열대상록활엽수여서 기온 조건이 안 맞으면 자라지 못했던 것.


임 씨는 시험 재배를 위한 마련한 50평 남짓의 비닐하우스에서 밤을 지새운 것도 수차례. 뚝심으로 실패를 극복한 그는 2009년에 만든 하우스를 시작으로 2017년에는 400평 규모의 현대식 하우스를 완공했다.


이때 든 비용은 평당 30만원 정도(기초 비닐 하우스는 평당 12만원 정도). 일반 비닐 하우스에 비하면 초기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튼튼한 구조물 덕분에 현재는 5000그루의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열대식물에게 1℃의 개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예요. 그만큼 민감하다는 뜻이죠. 작은 수치일 수 있지만 그 온도를 올리기 위한 열원 시설을 갖추는 건 어려워요. 처음에는 1℃ 올리려고 전기 난로도 설치하고, 알코올 버너도 사용하고, 연탄도 때봤어요. 온도를 해결하고 나니 나중에는 가스가 가득 찼는데 환기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가스 피해까지 입었죠. 초보자가 기후에 맞지 않은 식물을 재배하려 했으니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래도 여러 시행착오 덕분에 열대작물이 한국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 조건을 알게 됐고, 지금의 시설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선생만 찾지 말고 직접 발품을 팔아라

퇴직 전부터 계획했던 커피 체험 농장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까지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에게 커피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려면 자신부터 커피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했다. 그래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향미 전문가(커피의 맛과 질을 토대로 품질을 평가하는 사람)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시행착오 끝에 커피 체험 농장을 만들고 나서는 블로그 활동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농장에서 일어나는 매 순간을 블로그에 담는다. 방문한 사람부터, 커피나무가 무르익는 과정까지 전부 담겨 있다. 블로그를 보고 방문한 손님들이 많으니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그의 목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커피 체험 농장을 성장시켜 궁극적으로는 마을 사람들과 상생할 수 있는 커피 체험 마을을 만들고 싶은 것. 원대한 목표를 가진 그는 지금도 여러 박람회에 참석하는 등 담양커피농장의 진가를 알리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있을 때 인터넷 선생만 의지하면 안 돼요. 인터넷 자료는 참고만 하고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해요. 1차로 인터넷 자료를 통해 해야 할 일을 파악했다면, 직접 실행에 옮기면서 아닌 부분을 지워나가면 돼요. 실패할까 두려워 너무 재면 나중에는 용기도 없어지고 자존감도 낮아져요. 직접 발로 뛰겠다 다짐하고 한 발짝 내밀었을 때 보이는 세상은 달라요. 고작 한 발 차이일지 모르지만 시야가 훨씬 넓어져 있을 거예요.”


기획 우성민 사진 이대원(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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