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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by 중앙일보

450만원 샤넬백 산뒤 "공짜죠"…가성비 계산법이 달라졌다

“명품이 살 때는 비싸도 다시 파는 것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합리적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선호하는 시계나 가방은 거의 제 가격에 다시 팔수 있으니 거의 공짜로 차고 메는 셈이죠.”


직장인 이민지(37·동대문구)씨는 2018년 샤넬의 코코핸들 가방을 450만원에 사 지난해 중고 거래 앱을 통해 450만원에 판매했다. 3년 사이 가방 가격이 오르기도 했지만, 워낙 인기 품목인 덕에 쉽게 팔렸다고 한다. 이씨는 가방을 판 가격에 돈을 조금 더해 가지고 싶던 디올의 다른 가방을 구매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가격이 비싼 상표의 제품을 일컫는 ‘명품’과 ‘가성비’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그렇지도 않다. 싼 가격의 물건을 많이 소비하기보다 가치 있는 명품을 사서 오래 쓰고, 중고로 사고팔면서 제품 수명을 늘리니 환경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게 명품을 좋아하고 중고에 거부감이 없는 MZ(밀레니얼·Z세대)의 새로운 계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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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호황 시대에 중고 명품 시장 역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 더리얼리얼 공식 인스타그램]

“명품시계 3분의 1이 중고로 거래될 것”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중고 명품 시장은 39조원(약 326억 달러) 규모이며 2025년에는 56조원(약 471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중고 명품 시장이 향후 10년 동안 연 10~15% 성장할 것으로 본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는 2022 재판매 보고서에서 “여전히 명품 소비자의 75~80%가 새 제품을 선호하지만, 점차 많은 소비자가 중고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며 “특히 시계의 경우 2025년까지 중고 시장이 전체 시장의 약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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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내 중고 명품 시장도 활발하다. 중고 거래 앱 번개장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 시장 트렌드를 견인했던 품목은 스니커즈와 명품이었다. 스니커즈의 거래 건수는 약 50만건으로 거래액은 800억여 원에 달했다. 명품 패션 부문도 약진했다. 거래 건수 기준 인기 브랜드 순위는 구찌·루이비통·샤넬·프라다·생로랑 순이었으며, 키워드 검색량 기준 구찌가 91만 건으로 1위를 기록했다.

중고 명품 선호 가장 큰 이유는 ‘품절’

중고 명품 플랫폼 ‘더리얼리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더리얼리얼 이용자의 40%가 패스트 패션 제품을 사는 대신 중고 명품을 구매했으며, 소비자들의 43%가 지속 가능하다는 이유로 중고 명품을 구매했다. 가치 소비 흐름이 이어지면서 보다 환경적 소비를 위해 중고 명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1차 시장, 즉 새 제품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중고 시장에 진입한 경우도 많았다. 특히 품절이 된 인기 제품은 일반 중고 명품보다 50%나 더 많은 고객을 불러 모았다.


맥킨지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중고 명품을 구매하는 이유로 지금은 살 수 없는 희소한 제품을 살 수 있어서(41%)라는 답변이 1위를 차지했다. 환경에 도움이 된다(40%), 더 저렴해서 산다(36%)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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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중고생도 ‘리셀테크’, 배경엔 쉬운 앱

중고 명품 시장의 기반에는 ‘리셀’ 문화가 있다. 리셀·리세일(resell·resale)은 직역하면 재판매·중고 거래지만 사고팔면서 가치가 더해진다는 의미가 강하다. 한정판 스니커즈, 롤렉스 등 명품 시계, 사넬·에르메스 등의 고가 가방처럼 구하기 어렵고 수요는 풍부해 그 자체로 재화의 가치를 지닌 물건들을 거래할 때 특히 그렇다. 리셀 문화가 정착되면서 중고 시장에서 명품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고 오히려 높아졌고, 이는 명품 선호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이왕 산다면 명품을 사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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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앱 기반 중고 거래 플랫폼은 중고 명품 시장을 성장시켰다. [사진 각 앱 캡처]

리셀 대중화의 배경으로는 개인 간 중고 거래 앱의 활성화가 꼽힌다. 과거에도 중고 명품 시장이 존재했지만, 청담동 등 특정 오프라인 상권에서만 아주 제한된 방식으로 운영돼 대중화화 거리가 멀었다. 당근마켓·번개장터 등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중고 거래 앱이 등장하면서 기술 친화적인 젊은 세대가 중고 명품 시장으로 대거 이동, 중고생도 명품으로 ‘리셀테크(리세일+재테크)’한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거래가 활발해졌다. 이들은 가방이나 스니커즈를 구매하고 되파는 과정에서 수익을 올리거나, 한정된 예산으로 다양한 물건을 소유·경험하는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한다.

“중고도 괜찮아, 명품이라면”

중고 명품 시장의 활황에는 중고품에 대한 달라진 인식이 한몫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1』에 처음 등장한 신조어 ‘N차 신상’은 달라진 인식을 설명한다. 물건이 여러 차례(N차) 거래가 되어도 나에게 새로운 것이면 신상품과 다름없이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신상도 구매하는 순간 중고가 되기 때문에, 새것에 가치를 두기보다 중고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구매하려는 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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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라온 명품 가방들. [사진 번개장터 화면 캡처]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물건 자체의 가치보다 일단 소유해보고 싶은 욕망이 구매 동력이 되는 명품일수록 신상품과 중고품의 가치를 크게 다르지 않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젊은 층은 한정된 예산으로 더 많은 제품을 경험하길 원하기 때문에 중고 시스템을 활용해 명품을 가져보고 싶은 욕망을 영리하게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복고 트렌드…X세대가 팔고 MZ가 산다

중고 명품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는 최근 몇 년간 강세였던 복고 트렌드의 영향도 있다. 옛날 명품 가방이 다시 유행의 최전선으로 돌아오면서 중고 명품의 가치가 더 올라갔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더리얼리얼 보고서에 따르면 X세대의 옷장에 있었던 펜디 바게트 백이나 루이비통 멀티 컬러 백 등이 중고 시장이 나왔고, 이를 MZ가 구매하는 경향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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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돌아온 인기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 리부트-저스트 라이크 댓'의 한 장면. 주인공이 1990년대의 아이코닉한 가방인 펜디 바게트백을 다시 메고 나왔다. 펜디는 해당 모델을 최근 다시 론칭했다. [사진 저스트 라이크 댓 패션 공식 인스타그램]

김홍기 패션 평론가는 “원형에 가까운 클래식(고전적) 디자인을 선호하는 경향과 복고 트렌드가 맞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흔히 명품이라 불리는 패션 하우스 브랜드의 경우 상징적 디자인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기 때문에 신상품보다 중고의 가치가 높아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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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랜드 자산으로 인식되는 중고 명품

중고 명품 시장이 커지면서 중고를 브랜드 자산으로 여기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구찌는 1960년대부터 1999년에 이르는 20세기 구찌 제품들을 매입해 판매하는 ‘구찌 볼트’라는 빈티지 사이트를 오픈했다. 버버리도 패션 렌탈 플랫폼 ‘마이 워드롭 HQ’에서 자사 중고품을 대여·구매할 수 있도록 했으며, 발렌티노는 중고 제품을 매입해 직접 판매하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 장폴고티에는 중고에 디자인을 더해 업사이클링 중고 판매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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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는 20세기 구찌 제품만을 모아 판매하는 중고 플랫폼 '구찌 볼트'를 열었다. [사진 구찌 공식 인스타그램]

소비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겨야 생존 가능한 패션 브랜드가 중고를 판매하는 것은 자충수가 아닐까. 전문가들은 오히려 중고가 신제품 판매를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맥킨지에 따르면 중고 시장에 진출한 명품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의 4분의 3이 좋은 발전으로 인식하며, 소비자 충성도 및 선호도도 높게 유지된다. 중고를 통해 자사 브랜드의 ‘변치 않는 가치’를 피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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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전미영 연구위원은 “중고 거래 활성화는 소비자들에게 명품을 소유했다가 언제든지 팔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때문에 신제품 구매에 부담을 더 적게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브랜드가 하지 않아도 이미 중고 거래가 활발한 상태로, 차라리 브랜드가 플랫폼이 되어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중고 자산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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