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도로 본 충격 장면, 한라산 크리스마스 나무의 죽음 [VR영상]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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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라산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구상나무 숲이 있다. 크리스마스트리로도 유명한 구상나무.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이 나무가 한라산에서 죽어가고 있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재앙이다.
중앙일보는 창간 55주년을 맞아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의 현장을 취재한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를 제작했다. 지면뿐 아니라 VR(가상현실) 영상 등을 통해 제주도, 시베리아 숲, 그린란드 빙하, 호수 산호초 지대 등의 생생한 현장과 현지인들의 증언을 담았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한라산 구상나무의 모습을 VR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영상이 보이지 않으면 주소창에(https://youtu.be/t7rik8DE9pk)를 입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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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은 기후변화가 한라산 구상나무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고자 지난달 14일 성판악 등산로를 올랐다. 성판악 정상부는 구상나무가 가장 널리 분포한 곳이다.
이날 제주에는 한낮 기온이 36.3도까지 치솟을 정도로 기록적인 폭염이 덮쳤다. 해발 1500m에 있는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는데도 타는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대피소를 지나자 피라미드 모양의 구상나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열매와 부드러운 잎. 왜 구상나무가 세계적으로 고급 크리스마스트리로 인정받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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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700m 고지를 넘어 본격적인 구상나무 군락에 도착하자 충격적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등산로 주변의 구상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로 쓰러져 있었다. 잎은 전부 떨어지고 앙상한 채로 죽음을 눈앞에 둔 나무들도 많았다.
“해발 1700m에서 1800m까지는 구상나무의 80% 이상이 고사한 거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한두 그루 이렇게 죽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넓은 면적이 고사하거나 집단으로 쇠퇴하는 적은 없었죠.”
동행한 김진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원이 고사한 구상나무를 보면서 말했다. 그는 20년 넘게 한라산을 오르면서 구상나무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그를 따라 참혹한 구상나무 떼죽음 현장으로 들어갔다. 김 연구원이 뿌리를 드러낸 채로 쓰러진 한 나무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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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는 뿌리를 깊게 박지 않고 옆으로 뻗어 나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바위인 바닥 위에 뿌리를 뻗다 보니까 집중호우나 강풍에 의해서 넘어가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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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렀던 숲 10년 만에 하얗게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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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학명 Abies koreana E.H. Wilson)는 1920년에 우리나라의 특산 식물로 보고된 종이다. 올해로 이름을 얻은 지 100년째다. 구상나무는 지리산에서부터 한라산까지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주로 자란다.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가 점차 줄면서 2013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구상나무를 '멸종 위기에 처한 종'(Endangered species)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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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만 해도 한라산의 구상나무 숲은 자연적으로 고사한 나무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건강한 모습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겨울철 적설량이 점차 감소하면서 생기를 잃고 죽어가는 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눈이 일찍 녹아버린 탓에 봄철 구상나무가 광합성을 하는 데에 필요한 수분이 부족했다. 이 결과 생장에 악영향을 받았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제주도의 평균 기온은 15.4도(1961~1970년)에서 16.6도(2009년~2018년)로 50년 새 1.2도가 올랐다. 눈이 내린 날(적설일)은 같은 기간 12일에서 5.9일로 절반이나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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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물폭탄에 슈퍼태풍 강타…또 쓰러진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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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점점 강력해지는 태풍과 여름철 집중호우가 약해질 대로 약해진 구상나무를 떼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에 따르면 한라산 주요지역의 구상나무 고사율은 1996년 17.8%에서 2014년 47.6%로 급증했다. 지난 10년 동안(2006~2015년) 축구장 154개 면적(112.3ha)의 구상나무숲이 사라졌다.
올해도 제주 산간에 10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초강력급 태풍이 연이어 제주를 강타했다. 극한 기상현상이 잦아지면서 피해가 한층 커지고 있다. 김 연구원은 “최근 태풍이 지나간 이후에 한라산에 올라가 보니 쇠약했던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로 쓰러져 있었다”고 전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10~20년 사이에 멸종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한라산이 거대한 고사목의 전시장으로 변하고 있다”며 “한반도에서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첫 생물종으로 구상나무가 기록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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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0년 구상나무 살 곳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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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균 고려대 교수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기후변화에 따른 멸종위기 침엽수종 분포 변화 예측’ 논문에 따르면, 2050년대에는 구상나무가 국내에서 잠재적으로 서식할 수 있는 면적 비율이 1%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80년대에는 거의 사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상 '멸종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구상나무의 멸종은 한라산 생태계엔 재앙과도 같다. 김 연구원은 “한라산 고산지역에 사는 애기사철란 등은 구상나무 숲 밑의 이끼에서 공생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며 “구상나무가 없다면 애기사철란 같은 종들이 소멸해버리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의 고정군 박사는 “구상나무는 기온이 1도 오르면 수직으로 150m 이동하는데, 고지대에 살기 때문에 2~3도만 기온이 더 올라도 더는 올라갈 곳이 없다”며 “구상나무의 체계적인 보전을 위한 추진 전략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천권필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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