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사진가 집안....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기록하다
10월 4일까지 서울 라이카 스토어 청담점
임인식 사진전 ‘Life goes on(삶은 계속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임 작가의 아들과 손자
대를 이어 기록 사진가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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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4일까지 서울 라이카 스토어 청담점에서 사진전 ‘Life goes on(삶은 계속된다)’이 열린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임인식(1920~1998)씨가 기록한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다.
명동과 종로, 한강과 삼청동 그리고 작가의 집이 있던 가회동 풍경을 담은 흐릿한 흑백사진들은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새로운 삶의 의지를 따뜻하게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항공사진이다. 기와집들이 레고블록처럼 다닥다닥 붙어 기하학적인 풍경을 이루는 이 항공사진들은 당시 임인식 작가가 직접 경비행기를 타고 촬영한 사진들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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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홍록동에서 태어난 임인식씨는 20대부터 카메라와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44년 서울로 이주한 그는 종로구 가회동에 살면서 용산 삼각지부근에 카메라점 한미사진기를 차리고 본격적인 사진작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45년 해방과 더불어 용산역에서 일본인들이 철수하는 장면, 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행사 등 서울에서 벌어졌던 시대 풍경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다. 육군사관학교 8기 특별반에 입교한 그는 50년 국방부 종군 사진대를 편성해 6.25 한국전쟁 현장을 기록한다. 이후 대한사진통신사를 운영하면서 정부의 주요 행사와 역사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AP통신과 해외 주요매체에 사진을 제공하게 된다. 당시로선 귀한 항공사진 기록은 이때 카메라에 담아 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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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식 작가를 설명할 때는 또 다른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역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였던 형님 임석제(1918~1996), 대한민국 1호 건축사진전문가 아들 임정의(1944~), 예술사진과 기록사진을 함께 작업하는 손자 임준영(1976~)까지 대를 이어 사진가 집안이라는 점이다. 부연설명하면 이 네 사람의 카메라에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모두 담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임인식, 임정의, 임준영 3대가 촬영한 서울 동대문운동장의 변천 사진은 전 세계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다. 2016년에는 손자 임준영씨에 의해 네 사람의 사진을 함께 소개하는 사진전 ‘The Big Flow(대를 잇다)’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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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만난 임정의, 임준영 부자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록한 집안’이라는 수식어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암실 작업을 많이 했죠. 자연스레 사진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사진가가 되는 걸 반대하셨어요. 돈 못 버는 직업이라는 거죠. 하하”(임정의)
하지만 임정의씨는 운명처럼 사진가의 길을 택했다. 1973년 코리아헤럴드 사진부 기자로 입사해 2년 간 일한 그는 퇴사 후 건축가 김수근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건축 전문사진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을 계기로 일기 시작한 건설 붐은 서울의 풍경을 몰라보게 바꾸어 놓았는데 그 세세한 기록이 임정의씨의 카메라에 담겼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살던 금호동 달동네 풍경도 함께 촬영해 서울을 둘러싼 화려한 불빛과 그늘을 함께 기록해 두었다. 50년을 넘게 건축사진가로 지내온 그는 최근에는 건축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지방의 ‘아침 풍경’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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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만류를 무릅쓰고 사진가의 길을 걸었는데, 저 역시 아들이 사진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안 된다’고 말렸죠. 평생을 해보니 정말 고단한 길이라는 걸 알겠는데 어떻게 자식을 시키겠어요.”(임정의)
하지만 이번에도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임준영씨는 사진공부를 하겠다며 아예 미국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유학한 임준영씨는 순수예술사진을 주로 작업하고 있다. 퇴근 무렵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도시 속에서 끊임없이 발산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흐르는 물로 표현한 ‘Like Water(흐르는 물처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물론 보고 배운 게 ‘기록사진의 힘’이라 틈틈이 전국을 누비며 할아버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한민국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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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도 3대에 걸쳐 하다보면 손자 대에 와서는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현대적인 시스템과 입맛을 도입해야 하니까요. 앞서 세 분이 하신 일을 저 역시 따라가고는 있지만 옛날 방식이 아닌 저만의 현대 방식으로 풀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임준영)
두 사람의 걱정은 방대한 양의 사진들을 기록, 보관하는 아카이브 작업이다. 할아버지와 큰 할아버지가 찍은 사진부터 아버지의 사진까지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겨진 필름의 양은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임준영씨가 할아버지 임인식 작가의 호를 딴 ‘청암 아카이브’ 출판사를 차려 조금씩 정리를 하고 있지만 인력이나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까지 옛것을 없애고 새것을 쌓아올리기에만 급급했죠. 옛것을 남겨두고 보관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소중한 자산이에요. 이걸 사진으로나마 후대에 잘 물려주고 싶은데 개인의 힘으로는 쉽지가 않네요. 지금도 간혹 협업하자는 제안은 들어오지만 부분적으로 필요한 사진을 공짜로 가져갈 생각만 하지 제대로 된 아카이브 작업에 진지하게 참여할 단체나 기업은 없어서 걱정입니다.”(임정의)
글=서정민 meantre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임인식, 임석제, 임정의, 임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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