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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년 전통 장어덮밥 맛 그대로" 부산에서 맛보는 작은 도쿄 [쿠킹]

한 끼 식사를 위해서 몇 달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800통이 넘는 전화를 걸고, 10개월이 넘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누구보다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푸드 콘텐트 에디터 김성현의 〈Find 다이닝〉을 시작합니다. 혀끝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다이닝을 찾는(Find), 그가 추천하는 괜찮은(Fine) 식당을 소개할게요. 읽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생생하고 맛있게 쓰여진 맛집을 만나보세요.


김성현의 Find 다이닝 ⑮ 동경밥상


“살이 꽉 들어찬 장어와 알알이 살아있는 쌀밥, 몸과 마음을 채우는 든든한 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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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진짜’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일본에 갔죠. 연고지는커녕 지인도 없었어요. 일하고 싶었던 식당에 찾아가 식사를 마친 후 사장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받아달라고 청했어요. 3일의 시간을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배움에 대한 절박함과 진심을 담은 용기 덕분이었을까. 김태우(38) 셰프는 하루 만에 ‘일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그렇게 그는 8대째 가문을 이어 일본 최고의 장어 전문점으로 불리는 쥬바코의 일원이 된다.


도쿄 아카사카에 위치한 쥬바코는 1790년 문을 연 이후 233년간 일본 내에서도 정상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장어 맛집’으로 통한다. 특히 음식이 식는 것을 막고 온도를 유지하고자 상자 안에 장어를 담아 서빙한 역사가 시작된 곳. 일본에서는 이 상자의 이름 자체가 가게 이름과 같은 ‘쥬바코’로 불릴 정도로 이곳은 전통과 근본으로 통한다.


김태우 셰프가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와 ‘동경밥상’의 문을 연 것은 지난 2018년 10월. 쥬바코에서 배운 동경식 민물 장어덮밥 ‘우나쥬’를 전면에 내세운 그는 이제 장어덮밥이라는 메뉴 하나로 지역 주민부터 외지인까지,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며 손님상에 하루 최대 200마리의 장어를 내어놓는다. 장어덮밥 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리는 쥬바코에서의 소중한 경험, 그가 본토에서 배운 비법과 비밀은 무엇일까?


“대단한 비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요. 쥬바코에서 장어를 구울 때 바르는 양념 소스는 물 없이 간장과 미림만 들어갑니다. 단순하고 특별한 것이 전혀 없죠. 장어는 생물이기 때문에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다릅니다. 살이 부드러우면 6~8분을, 단단하면 15분까지 찌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벌 한 뒤 찌고 다시 한번 굽는 것이 전부입니다.”


양념에도, 장어에도, 굽기에도 특출 난 비법은 없다지만 영업시간 내내 주방의 뜨거운 숯 앞자리는 언제나 그의 몫이다. 쉴 새 없이 부채를 휘두르며 불과 싸워 손수 굽기를 조절하는 김 셰프는 요리사이자 관리자로서 늘 주방을 지키는 것이 그저 기본이자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마법의 소스나 특별한 재료 대신 정성과 내공으로 무장해 음식에 혼을 담는 것이 손님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동경밥상’의 가장 큰 비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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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밥상의 장어덮밥은 김태우 셰프가 수련한 쥬바코의 정통 조리 방식을 그대로 구현한다. 요리는 최상의 장어를 선별하여 초벌로 한 번 굽는 것에서 시작된다. 초벌한 장어는 한 번 찐 뒤 다시 숯에서 재벌 한다. 굽고 찌고 다시 한번 굽는 과정을 겪으며 장어 깊은 곳에 담긴 기름기까지 녹아 살코기에 스며들고 풍미는 자연스레 한층 더 두터워진다.


한 번 쪄낸 덕분인지 장어 특유의 쫄깃함이 살아있고, 입에 넣는 순간 탱글탱글하게 속이 꽉 찬 장어가 기분 좋은 포만감을 안겨준다. 여기에 씹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러움으로 바뀌며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매력적인 식감 또한 훌륭하다. 익숙하게 즐겨온 장어구이의 바삭바삭한 느낌보다도 새롭기 때문에 장어덮밥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먹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


특히 장어 특유의 누린내나 비릿한 향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역시 동경밥상의 가장 큰 강점이다. 숯 위에서 섬세하게 구워진 덕분에 은은한 숯 향과 고소하고 기름진 장어의 향기가 군침을 자극한다. 여기에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풍미의 양념은 감칠맛과 짭짤함을 더해 흰 쌀밥과 최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장어덮밥에서 장어만큼 중요한 ‘밥’ 역시 동경밥상의 자랑이다. ‘밥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밥’이라고 생각한다는 김태우 셰프의 말처럼 그는 늘 손님에게 갓 지은 밥을 제공하며 온도감이 높은 한 상 차림을 제공한다. 장어 아래 깔린 밥은 눅눅함 없이 윤기를 띄며,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있어 장어를 한층 더 빛나게 만드는 역할을 해낸다.


함께 제공되는 산초가루나 와사비(고추냉이)와 파 등을 곁들여 먹으며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도 즐겁다. 기호에 맞게 산초가루를 활용하면 기름기를 머금어 자칫 느끼하게 다가올 수 있는 장어를 한층 더 깔끔하게 즐길 수도 있다.


김성현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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