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뺏기면 울던 완벽주의자···홍콩 200만시위에 사퇴위기
운동권 학생서 친중파 공무원 변신한 ‘홍콩판 대처’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시진핑 주석 꼽아…휴지 사는 법 몰라 조롱도
200만명의 반대 시위에 홍콩 정부가 결국 백기를 들며 논란의 ‘범죄인 인도법’이 철폐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단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시위대의 가장 큰 표적이 된 캐리 람 행정장관의 운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선 그가 예정된 임기(2022년 6월30일)를 채 못 채우고 물러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시위대가 법안 철폐만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람 행정장관의 사퇴라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2년 전 첫 여성 행정장관으로 선출된 람 장관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서 태어나 정부 수반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1957년 홍콩 서민 거주지인 완차이(灣仔)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숙제를 침대 위에서 해야 할 정도로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항상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케네스 챈 홍콩침례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영국 가디언에 “꽤 오만한 지도자”라며 “사람들에게 항상 1등을 했다는 걸 상기시키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1등 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4등을 했을 땐 울기도 했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현재도 그는 밤에 3~5시간만 자는 워커홀릭이다. FT는 그를 ‘완벽주의자’라고 표현했다.
홍콩대 재학시절 저소득층 지원과 좌파 학생 퇴학 철회를 요구하는 학생회 시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1980년 사회과학 학사학위를 딴 뒤 23세의 나이에 홍콩 정부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며 성향이 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NYT에 따르면 지난 39년간 람 장관은 총 21개의 직책을 거쳐왔는데 2007년 도널드 창 행정부에서 개발국장 자리에 오른 후엔 시민의 반대에도 단호한 입장으로 영국 통치의 상징물인 퀸스피어 철거를 강행해 ‘터프한 싸움꾼’이란 명성을 얻었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그를 축구팀의 최종수비수인 ‘스위퍼’에 비유하며 “부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그녀는 철거에 항의해 단식투쟁을 벌인 시위자들과 마주했고, 마치 강인한 수비수처럼 화가 난 군중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가 유능하고 합리적 관료로서 입지를 굳힌 건 2014년 우산 혁명 때였다. 당시 정무사장이던 람 장관은 학생 대표들과 공개 토론을 하면서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중국 지도부가 그를 행정장관으로 낙점한 계기도 이때였다고 한다. 강경한 태도가 홍콩인에겐 반감을 불렀지만, 중국 정부로부턴 높은 점수를 샀던 것이다. 가디언은 “효과적인 운영자로서의 명성은 중국의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됐고, 결국 최고의 자리를 얻게 됐다”고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람 장관은 지난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지명했다고 한다. FT에 “시(주석)가 점점 더 카리스마 있고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다. 그럼에도 자신은 정치적으로 독립적이라고 주장한다고도 매체는 전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홍콩 시민들은 람 장관이 사퇴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홍콩 언론들은 전한다. 2001년 은퇴한 홍콩 정치인 안손 찬은 “그녀에 대한 신뢰는 심각하게 무너졌다”며 “만약 이 법안을 고집한다면 (남은 임기인) 향후 3년간 홍콩을 통치하는 게 어려워질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챈 교수는 람 장관의 “비타협적인 태도가 결국 심각한 통치 위기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