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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를 먹어서 보충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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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한두 번은 이런 소리 들었을 테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일정량의 효소를 갖고 있지만 잘못된 식습관이나 노화에 따라 점점 고갈된다. 특히 40세 이후부터는 우리 몸속 효소가 점점 부족해지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공급해 줘야 한다. 이럴 때 산야초 효소나 발효효소가 그 대안이며 보약이다”라는 선전 문구.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체내효소량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먹어서 보충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전 유행했던 산야초 효소와 발효효소에 대한 붐이 다소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이젠 그 유사품이 출현해 소비자를 또 속이고 있다. 다름 아닌 시중에서 비싼 값에 팔고 있는 이름도 요상한 ‘무슨무슨 효소’, 무슨 력(力)이라 하는 제품이다. 몇 가지 곡물에 미생물을 키우고는 소비자에게 신비감을 줄 듯한 발효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1kg도 안 되는 제품에 십여만 원의 값을 매긴 것 말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곡물 효소의 제조 방법은 대개 이렇다. 콩을 비롯한 몇 종류의 곡물(율무, 조, 기장, 보리, 현미, 미강, 메밀 등)에 미생물(누룩곰팡이인 아스퍼질러스 오리재 아니면 고초균, 유산균 등) 등을 배양한다. 몇 종류의 가수 분해 효소를 생산케 한 소위 메주나 누룩과 다르지 않은 제품이다.


즉, 곡물에 수분을 가하고 증자(蒸煮)해 미생물을 키우면 몇 종류의 효소를 생산한다. 그리고 구성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분해해 일부 아미노산과 포도당 등으로 만든다. 미생물이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다. 당연히 이 발효제품에는 몇 종의 효소(protease, amylase, lipase)가 들어있고 이들 효소에 의해 유리되어 나온, 미생물이 채 먹지 못한 아미노산과 포도당이 소량 들어있다. 이른바 메주, 누룩, 청국장의 제조와 같은 원리이다.


이런 제품을 우리가 먹으면 소화가 다소 잘되는 건 맞다. 미리 미생물 효소가 단백질 등을 부분적으로 분해해 놓았고 소화를 도울 것 같은 효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냥 콩 등 곡물을 먹는 것보단 다소 이로울 것이라는 기대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롭다고 해봐야 소화력이 약해 콩 등의 곡물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환자?)이나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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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제품이 우리의 전통식품인 청국장이나 메주, 누룩 가루와 뭐가 다른가. 청국장은 고초균으로, 메주와 누룩은 누룩곰팡이(혹은 고초균)로 발효해 만든다. 곡물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 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청국장과 메주에도 이들 못지않게 많은 효소와 필수아미노산이 유리되어 있다. 문제는 큰 차이도 없는 데 거금을 투자할 정도의 가성비가 있는지다.


선전에는 발효 전후의 필수아미노산 함량을 표시하고 그 양이 증가한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도 별반 신기한 것이 못 된다. 재료 속 미생물이 만든 효소에 의해 콩 등으로부터 아미노산이 조금 유리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유리아미노산은 메주나 청국장에도 많다.


그냥 콩을 먹어도 이런 아미노산이 우리의 소화효소에 의해 자연히 나온다.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원래 콩 등 곡물에는 유리아미노산이 거의 없거나 미량으로 있다. 곡물에 미생물을 키우면(발효) 단백질로부터 아미노산이 유리돼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메주나 청국장처럼 말이다.


그들의 선전에는 분해돼 나오는 필수아미노산의 한 종류인 류신(leucine)이 근육합성에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마른 사람에게 좋다면서 말이다. 류신만이 근육합성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8종류의 필수아미노산 모두 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정 아미노산이 많다고 근육의 합성이 촉진된다는 학설은 없다. 어차피 이들 필수아미노산은 우리의 소화효소에 의해 콩 등에서 나오는 아미노산들이기도 하다.


한편 시중에서 체내에 부족한 효소를 먹어서 보충하라고 하는 주장은 100% 사기 상술이다. 우리의 세포 내에서 생화학(대사)반응을 촉매한다는 효소, 이들 효소를 우리가 입으로 먹어 공급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는 조물주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혈액이나 세포 내에 있는 효소는 외부로 나오지도 않으며 외부로부터 넣어 줄 수 있는 방법은 결단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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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이 들어 부족한 효소를 입으로 먹어 공급하라고? 개가 웃을 일이다. 뜨악해하겠지만 소화관에 분비되는 소화효소는 체내가 아니라 체외로 분비되는 효소로 분류한다. 입에서 항문까지 통하는 소화기관은 체내(몸속)가 아니라 체외(몸 밖)로 치기 때문이다.


이들 제품에 있을법한 효소가 소화에는 다소 도움을 줄 것 같기는 하지만, 실제는 크게 이로울 것이 없다. 전분 분해 효소(아밀라아제)와 단백질 분해 효소(프로테아제)가 있어 소화력이 약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선전하고 소비자 또한 그렇게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들 효소는 실제 위에 들어가면 위산과 단백질 분해 효소에 의해 여느 단백질처럼 박살이 나 효소의 기능은 거의 상실한다. 여느 단백질처럼 소화되어 버린다는 거다.


우리가 소화제로 먹는 소화효소(아밀라아제, 프로테아제, 리파아제의 혼합)하고는 성질이 다르다. 시중에 파는 소화제 속 효소는 이런 위(장) 속의 가혹한 환경에서도 비교적 잘 견디는 특수종류만을 엄선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소비자는 효소와 더불어 발효라는 단어에 무턱대고 열광(?)한다. 발효란, 전문가도 설명하기에 모호한 부분이 있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어떤 재료에 미생물이 자라 혹은 미생물이 생산한 효소에 의해 인간에게 유용하게 변화되거나, 또는 그 재료의 풍미나 소화성이 좋아지는 현상”을 발효라 한다. 단 이때 단서가 있다. 그 재료가 미생물에 의해 인간이 의도(목적)한 대로 변화해야 한다는 거다.


단순히 미생물이 자랐다 해서 발효가 아니라는 뜻이다. 가령 술을 만들 목적으로 발효했는데 식초가 만들어졌다면 이건 부패로 간주한다. 애초에 식초발효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식초를 만드는 의도였다면 이는 훌륭한 발효가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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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발효와 부패는 어떤 점이 다른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즉, 목적에 따라 발효도 부패도 될 수 있으며, 민족의 식습관이나 개인의 기호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서양 사람이 된장을 싫어하고 한국 사람이 곰팡이가 슨 치즈를 싫어하는 것, 냄새 지독한(?) 삭힌 홍어를 지방과 개인에 따라 기호를 달리하는 것도 발효와 부패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 누구에게는 훌륭한 발효식품인데 누구에게는 악취 나는 부패 식품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자. 미생물이 자랐다고 해서 발효가 아니다. 더구나 어떤 미생물이 어떤 물질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모르는 상태를 발효라 하지 않는다. 먹다 남은 음식이나 떡 쪼가리에 누룩곰팡이가 폈다 해서 발효라 하나? 이럴 경우 자칫 유해 미생물이 자랄 수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즉, 오랜 경험으로 안전성이 확보된 전통식품이나 학문적으로 검증된 유용 미생물에 의하지 않은 것이라면 발효식품이라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시중의 발효제품 중 발효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문제는 이런 효소제품의 선전이 인터넷, SNS, 뉴스 미디어 등을 도배하다시피 해 소비자를 유혹한다는 것이다. 모두 칭송 일변도다. 인터넷 매체에는 보기 싫어도 보아야 하는 이런 선전 배너가 기사를 가릴 정도로 난무한다. 심각한 것은 어느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소비자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종편과 홈쇼핑이 짜고 치는 교묘한 상술에 우리 모두 이제 더는 주머니를 털리지 말자”가 결론이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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