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화가 강요배 "역사를 알고 나니 호박꽃도 들꽃도 다 달라 보이더라"

삶과 예술 응축 첫 산문집 『풍경의 깊이』

사람, 역사, 자연에 대한 사유 담아

땅에 새겨진 시간, 마음의 풍경 천착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가 화가다, 예술을 한다, 그런 건 다 둘째 문제에요. 중요한 건 인생 공부입니다. 그동안 저는 그림으로 승부를 보겠다 하는 마음으로 작업해온 것도 아니었어요. 그림이란 것, 결국 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죠."


"1992년에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갔어요. 그곳이 가장 자유롭고 편한 곳이어서 간 거예요. 그때가 한참 한국 사회가 '세계화' 얘기로 떠들썩하고 다들 해외로 나갈 때였는데 거꾸로 난 시골로 간 거죠(웃음). 제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앞서나가야 한다, 첨단이어야 한다. 미술계에도 이런 전위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아요. 다들 뭔가 엄청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죠.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나만의 것을 보여주는 것은 더욱 어렵고요. 휩쓸리지 않으려면 나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게 훨씬 중요해요. 지금 최고라고 떠드는 것들도 나중에 시간 흐르면 평가가 달라지죠. 나를 존중하고, 길게 보고, 천천히 가야 해요···."


화가 강요배(68)의 말이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잠깐 숨을 고르다가 조심스럽게 생각을 드러냈지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선 그의 옹골찬 심지가 드러났다. 그러나 그는 완고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 같았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고민했기 때문일까. 나이 일흔을 앞둔 화가는 권위하고도 거리가 멀었고, 인터뷰 말미에 편안하게 방탄소년단(BTS) 얘기를 먼저 꺼낼 만큼 유쾌하기도 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정직하게' '장기적으로' '자기 존중(self-respect)'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게 그가 살아온 방법이자 예술을 대하는 태도임을 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강요배 작가가 최근 첫 산문집 『풍경의 깊이:강요배 예술산문』(돌베개)을 펴냈다. 자기 자신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와 자연, 그리고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집요하게 물으며 파고든 생각이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겼다. 비 오는 날 파주출판도시 돌베개 출판사 사옥에서 만난 그는 "20대부터 60대까지 내 인생 45년간의 생각들, 절대 짧지 않은 기간에 쓰인 글이 여기 다 담겼다"며 "내 생각의 여로가 투명 구슬 속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는 글들"이라고 소개했다. 그와 나눈 얘기를 전한다.


Q : 책에 실린 첫 산문 '마음의 풍경' 첫 줄이 인상적이었다. "섬에서 자란 나는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고 썼다.


A : "마흔한 살 되던 해인 1992년 제주로 돌아갔다. 돌아보니 나는 도시 체질이 아니더라. 도시에서 방황하면서 해가 갈수록 제주의 자연을 잊을 수 없었다. 도회지에서 시달린 내 마음이 제주에선 다 뚫리는 것 같았다. 마음이 홀가분해지니까 '호박꽃', '마파람' 같은 그림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1952년 제주 삼양 출신인 강요배는 한국 미술계에서 제주의 역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룬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힌다. 서울대 미대(학·석사)를 졸업하고, 1980년대 말부터 '제주 민중 항쟁 사건' 연작 그림을 그렸다. 1992년 '제주 민중 항쟁 사건'을 주제로 전시를 열었고,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간 뒤에는 제주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오고 있다.


Q : 1980년대엔 민중운동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했다.


A : "그때 보낸 시간은 돌아보면 내게 중요하고 필요했던 시간, 즉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반까지 3~4년간 사회와 역사의 맥락을 공부했다. 고향의 역사를 탐구하는 일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Q : 아직도 많은 사람은 강요배 하면 '4·3의 화가'를 떠올린다.


A : "내가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은 약 2000여 점 정도이고 그 중 4·3 항쟁을 주제로 한 작품은 70~80점 정도다. 말하자면 4·3 항쟁 연작은 강요배가 역사를 배우고 민심의 흐름을 짚기 위해 공부한 결과였다. 그 사건은 아직도 다른 각도에서 다뤄질 여지가 매우 많다. 비극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일을 통해 힘을 얻기도 했다."


Q : 역사를 알고 나면 자연이 달라 보인다고 했다.


A : "풍경은 사연 있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나는 제주를 다른 사람들처럼 관광객의 시선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역사를 이해하고 보면 어느 동네에나 있는 앞바다도 달라 보인다. 그 공간에 스쳐 간 시간과 그리고 사연과 내력이 지층처럼 겹쳐서 보인다. 그때부턴 호박이나 옥수수나 진달래, 보리밭 등 사소한 것들이 내겐 굉장히 재미있어지는 거다."


Q : 지금 20, 30대의 강요배를 다시 만난다면 하고 싶은 조언은.


A : "인생도, 예술도 다 길게 가는 것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젊은 때를 돌아보면 그때는 사는 게 급선무였다. 그런데 사는 게 우선이다.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예술, 예술 찾는 건 엄청난 사치다. 삶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장기적으로 가야 하는 거다."


그는 또 "화가도 자칫하면 자기 작품 앞에서 변명을 내세우거나 자신에게조차 거짓말하기 십상"이라며 "내 자리를 잘 찾으려면 정직하게 나를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우리는 삶을 부정하거나 치장해서도 안 된다"고 쓴 그의 글과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자기를 과대평가하거나 오버하지도 않아야 하지만 쓸데없이 자기는 낮춰서도 안 된다"면서 "중요한 건 자기 존중이다. BTS 음악이 세계 팬들과 소통하는 것도 그 바탕에 자기 존중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림을 그려 보면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묘하게 자기를 속이는 것을 냉정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쉽지 않지만, 핑계를 대면 발전할 수 없다." (226쪽)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가 되새김질하듯 그림을 그려왔다"고 말하는 그는 "재료들이 내 안에 들어와서 5년도 되고 10년도 되고 그렇게 한참 지나서 적당할 때 대상의 핵심적인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특히 베토벤의 교향곡 등을 들으며 나는 아직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수룩하고 소박한 것이 좋아지고 있다. 형태를 더 자유롭게 풀고 흐트러뜨려야 하는데, 아직도 형태가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 좀 더 비어 있는 상태로, 좀 더 자유분방하게, 좀 더 부드럽게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실시간
BEST
joongang
채널명
중앙일보
소개글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