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리어 퇴직 4년째 알바 "아프지 않기만 원해"
5060 옥죄는 준비 안된 정년퇴직
"중산층 재진입은 생각도 안해"
60세 퇴직해도 2년 지나야 연금
대부분 모은 돈 쓰며 근근이 버텨
"의료비 줄여주고 연금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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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일 서울 번화가의 한 편의점에서 만난 김홍석(63·가명)씨는 흰 피부에 말쑥한 얼굴이었다. 고생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밝은 인상이었다. 김씨는 이 편의점에서 월~금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아르바이트로 일한다. 집이 멀어 매일 새벽 5시20분 일어난다.
그는 4년 전만 해도 서울 유명 호텔의 호텔리어였다. 연봉이 8000만원을 넘는 때도 있었다. 큰돈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어엿한 중산층의 삶을 누렸다. 경기도에 30평대 전셋집을 마련했고, 중형차를 몰았다. 아들 대학 교육을 마쳤고 장가도 보냈다. 가족끼리 일본·중국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 달에 1~2번은 함께 고깃집이나 호텔 뷔페에서 외식했다.
하지만 지금은 편의점 알바로 버는 100만원 남짓 월급과 월 80만원의 국민연금이 소득의 전부다. 이 돈으로 아내와 둘이 생활한다. 자가용 대신 지하철·버스만 이용한다. 외식도 거의 하지 않는다. 생계가 곤란한 수준은 아니지만, 직장 다닐 때와 비교하면 생활 수준이 낮아졌다. 해가 갈수록 더 쪼그라드는 게 느껴진다. 편의점에서 퇴근한 뒤 동네 친구들과 탁구를 하는 게 요즘 그의 유일한 여가생활이다. 김씨는 “밖에 나가면 돈이 드니까 되도록 집에서 안 나가려 한다”며 “이제는 중산층이 아니라 하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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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1년 만에 그만두게 됐다. 이후에도 그는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으려 애썼다. 김씨는 “치킨집을 열어볼까 고민도 해봤다”고 털어놨다. 호텔리어 경력을 살려 케이터링(출장 뷔페) 세팅, 사우나 관리, 결혼식장 상담 등을 했지만 모두 단기 알바에 그쳤다. 그는 아직 재취업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계속 일자리는 찾아보고 있죠. 근처에 신축 호텔이 생기면 이력서를 들고 찾아 나서요. 끊임없이 일을 찾아 나서야지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김씨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중산층으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김씨가 바라는 건 ‘돈 많이 드는 큰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그는 “최근에 친구가 암에 걸렸는데 ‘그나마 다른 중병에 비해 병원비가 많이 들지 않아 다행’이라 하더라. 아프지만 않기를 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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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퇴직한 이 모(63·서울 성북구) 씨는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고용센터를 전전하고 있다. 은퇴 직전 월 5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지만, 현재는 소득이 0원이다. 2년 동안 무직 상태로 지냈다. 이씨는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안 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도 따로 없다.
전문가들은 은퇴 세대의 지출은 줄여 주고, 안정적인 소득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노후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전체 빈곤율은 약 15%인데 노인 빈곤율은 48%를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전체 빈곤율과 노인 빈곤율 격차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비 보장을 넓혀 지출을 줄여 주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강화해 소득을 보장해 줘야 한다. 여기에 노인 일자리까지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퇴직 직전 소득의 50~60% 정도 소득은 있어야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30~40년간의 근로 기간 동안 국민연금·퇴직연금 등으로 착실히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는 퇴직연금 가입이 의무이기는 하지만 퇴직금 중간정산 등으로 퇴직 전에 빼 쓰는 비율이 너무 높다. 퇴직연금이 진짜 연금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이에스더·이승호·김태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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