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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펠트 “아이돌로 사는 것 죄책감 커…하고픈 것 하며 살길”

원더걸스 예은으로 데뷔 13년 만에

첫 솔로 정규 ‘1719’ 책과 함께 발매

2017년 부친 사기 피소 이후 심경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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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별들 속에서 깜빡이는 아일 본 적 있니”(‘Satellite’)


23일 데뷔 후 13년 만에 첫 솔로 정규 앨범 ‘1719’를 발표하는 핫펠트(박예은ㆍ31)는 자신을 ‘가짜 별’에 비유했다. 수많은 별들 속에 섞여 있는 인공위성처럼 어떻게든 빛을 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존재로 바라본 것이다. 2007년 원더걸스로 데뷔해 2세대 걸그룹으로서 정상을 차지하고, 2014년부터는 싱어송라이터 핫펠트 활동을 겸해온 커리어만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얘기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찬찬히 뜯어보면 왜 그런지도 이해가 간다. 원더걸스의 5번째 멤버를 뽑는 오디션을 통해 별다른 연습 기간도 없이 데뷔한 그로서는 몇 년간 갈고 닦은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다른 별에 속한 사람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솔로로 전향한 그는 걸그룹으로서 쌓아 올린 이미지를 하나씩 내려놓는 것을 택했다. 공개연애를 했고, 타투를 새겼고, 담배를 피웠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아티스트로서 그의 사생활은 노래에도 숨김없이 드러났다. 2017년 JYP와 재계약이 아닌 다이나믹 듀오가 이끄는 힙합 레이블 아메바컬쳐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일 터다.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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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은 제목처럼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지난 3년간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았다. 신곡 10곡을 포함해 총 14곡을 수록한 것도 모자라 1719권 한정판 스토리북까지 만들었다.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핫펠트는 “원래 개와 늑대의 시간을 테마로 2017년에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면서 늦어졌다”며 “하지만 스무살이 되기 전 17~19살 사춘기 때 느낄 법한 다양한 감정이 담기면서 어둡고 무겁지만 희망찬 앨범이 됐다”고 밝혔다.


2017년은 그의 가정사가 세상에 드러난 해이기도 하다. 예은이 12살 때 이혼한 아버지 박 목사가 교인들을 상대로 200억대 사기 및 성추행 혐의로 구속되면서 함께 이름이 오르내린 것. 책에서 “나는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며 강한 분노를 드러낸 그는 “40대는 돼야 책을 쓸 줄 알았는데 그 시기가 생각보다 앞당겨졌다”며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글을 쓰면서 엉켜 있던 감정이 많이 정리됐다. 이제야 각자 분리돼 맞는 서랍에 들어간 느낌”이라고 했다.



“1년간 심리상담하며 우울함 떨쳐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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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감 없이 풀어낸 감정의 파편은 사방으로 튀었다. “인생은 모두에게 구리다”(‘Life Sucks’)고 분노를 표출하거나 “지끈 지끈대는 머리엔 약도 안 듣네/ 아픈 건지 슬픈 건지 도통 알 수 없네”(‘Solitude’)라고 읊조리기도 한다. “나는 가끔 피는 시가”(‘Cigar’)나 “곪을 대로 곪은 피어싱”(‘피어싱’) 등 그의 일상에 새롭게 들어온 모든 것이 소재가 됐고, 음악은 상처를 양분 삼아 여물었다. “원더걸스 때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음악을 했지만, 제가 만든 음악의 주된 감정은 우울함, 슬픔, 분노가 대부분이었거든요. 오랫동안 슬픔에 잠식되다 보니 물속 깊은 곳에 잠겨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일으키기도 어려운 시간이었죠.”


소속사 추천으로 받은 1년간의 심리상담이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상담사의 추천으로 글을 쓰면서 점차 그 시간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단다.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떨 것 같냐”는 말에 “심장이 아파왔다”고. “늘 ‘마음을 움직이는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아직 그 목표에 닿지 못했거든요. 핫펠트(HA:TFELT)란 예명도 ‘진심어린(heartfelt)’이란 단어에서 따온 건데 말이죠.” 아무 때나 자고, 먹고 남은 배달 음식이 여기저기 뒹구는 방안에서 다크서클로 뒤덮인 얼굴을 보며 또 울었다는 그는 “일단 청소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스위트 센세이션(Sweet Sensation)’이란 곡을 만들었는데 진짜 가수는 노래를 따라가는 것 같다. 그 후로 많이 밝아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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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을 겪고 마음을 추스른 그는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인생 막 살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최근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후배들을 향해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이돌 생활을 하다 보면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에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심해져요. 늦잠을 자고, 연습을 게을리하고,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걸 먹는 것 모두 잘못된 행동이라 여겨 자신을 혐오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자기가 뭘 하고 싶고, 뭘 좋아하는지 알기 어렵거든요. 범법이 아닌 이상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그게 오늘을 살 이유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나도 사니까 너도 살아” 위로하고파


책의 부제를 정하며 ‘잠겨있던 시간들에 대하여’와 ‘나도 사니까 너도 살아’를 후보로 두고 끝까지 고민했다. 그는 자신의 내밀한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픔을 나눔으로써 위로받고 치유해 나가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남을 잘 믿지 못해 직접 공부해서 타로점을 즐겨본다”는 그는 ‘여덟 개의 칼’ 때문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자신을 비유하기도 했다. “고독과 단절을 뜻하는 카드인데 사실 자세히 보면 몸을 묶고 있는 줄도 느슨하고 눈을 가린 안대도 그래요. 스스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풀고 나갈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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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펠트 음악은 대중적이지 않다는 속박에서도 벗어나기로 했다. 영어로 된 백예린의 ‘스퀘어’가 국내 음원 차트에서도 1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고정관념을 버리게 됐다고. 이에 힘입어 ‘스카이 그레이(Sky Gray)’ 등 2곡은 영어로 쓰기도 했다. “대단한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생각이 엄청나게 깊은 것도 아니지만 여성 화자로서 저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꾸준히 하려고요. 어릴 때는 연예인이라서 감내해야 할 사회적 시선이나 압박이 많은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성이라서 움츠러들어야 할 때가 더 많더라고요. 그렇게 사회에서 하지 말라는 것들에 대해 거리낌 없이 얘기하다 보니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공감하는 분들도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가 왜 소년들만 야망을 갖지 말고(Boys be ambitious), 소녀들도 더 시끄러워지자고(Girls be loud) 말하는지 그 이유도 알 것 같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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