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속 범의 허리 좌표는 향로봉…‘악지’ 아닌 절경
영화 '파묘'의 공간들
설악산 부근 상공에서 본 백두대간의 설경. ‘파묘’는 백두대간의 심장부에 이른바 ‘험한 것’이 묻혀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했다. [중앙포토] |
오컬트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파묘’는 기본적으로 우리 땅과 민족정신에 관한 영화다. 민족혼을 흔드는 악귀, 일제의 잔재를 뿌리째 없애는 과정을 무덤을 파내는 의식에 빗대 그렸다. 악지(惡地)와 명당을 환히 꿰고 있는 풍수사(지관)가 주인공인지라, 공간을 살펴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대살굿’은 부산 기장도예촌 세트 촬영
묘를 찾아가는 장면은 경남 대운산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나누어 촬영했다. [사진 쇼박스] |
강원도 어느 산머리, 백두대간 심장부에 이른바 ‘험한 것’이 묻혀있다는 ‘파묘’의 설정은 퍽 의미심장하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예부터 우리네 민족정신과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가 복선으로 깔린다.
‘험한 것’이 묻힌 묫자리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짐작은 해볼 수 있다. 영화 속 묘비에 적힌 의문의 13자리 숫자는 강원도 고성의 향로봉(1286m)을 가리키는 좌표다. 향로봉은 실제로 백두대간의 허리로 자주 언급된다. 북으로는 금강산, 남으로는 설악산과 능선이 이어진다. 민통선 안쪽이지만, 2018년부터 걷기대회 행사에 한정해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물론 ‘악지 중에 악지’라는 설정은 장재현 감독이 밝힌 대로 “영화적 상상력”이다.
담양 경상마을 당산나무. [사진 경상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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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는 모두 가짜다. ‘대살굿’을 벌이고 묘를 파헤치는 장면 대부분은 부산 기장도예촌 세트에서 촬영했다. 진짜도 있다. 하늘에서 백두대간을 굽어보는 장면이나, 묫자리로 가는 산길 등은 경남 양산 대운산 자연휴양림, 강원도 화천 배후령고개 등 전국 각지에서 촬영한 것을 하나로 연결해 완성했다.
호텔 ‘더 플라자’에서 본 경복궁 일대. [사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던 고목도 실은 정교한 모형이다. 전국의 이름난 거목과 신목(神木)을 두루 참고해 제작했는데, 그 중에는 천연기념물인 충남 금산 보석사의 은행나무(수령 약 1100년)도 있다. 보석사는 영화 속 ‘보국사’의 대웅전으로도 등장한다.
무당 화림(김고은)의 회상 장면에 나오는 신령스러운 나무는 전남 담양 경상마을의 ‘당산나무’다. 수령 500년의 이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신으로 여겨져 지금도 매년 정월 당산제를 올린단다. 경상마을 김재련(68) 이장은 “한국전쟁을 앞두고 나무가 통곡하듯이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고 귀띔했다. 무등산 자락을 한 바퀴 도는 ‘무돌길(51.8㎞)’ 6코스와 7코스의 경계에 경상마을이 있다.
최민식이 명당 꼽은 호텔, PPL 오해도
부산 기장 아홉산숲의 금강송 군락. ‘파묘’ 촬영지 중 하나다. [사진 아홉산숲] |
“하, 이 호텔 자리가 좋네.”
“풍수는 종교이자 과학”이라고 믿는 40년 경력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이 명당으로 추켜세운 호텔은 서울시청 앞의 ‘더 플라자’다. 광화문 일대는 물론이고, 경복궁과 청와대 그 너머의 북악산까지 한눈에 내다보는 명당이다. 영화에는 경복궁을 가로막고 서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1995년 철거)의 환영을 객실에서 내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섬뜩한 공간으로 그려지지만, 풍수사의 극찬 덕분인지 개봉 뒤 “PPL이냐”는 우스갯소리도 따라다녔다. 더 플라자 관계자는 “돈이 모이는 장소로 소문난 곳”이라면서 “기업 간 계약, 상견례 장소로 인기가 높아 풍수지리 테마의 패키지를 판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연 배우 최민식과도 인연이 남다른데, 1999년 이곳(당시 서울프라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극 초반 상덕이 송림에서 값비싼 송이를 발견하는 장면은 부산 아홉산숲의 풍경이다. 금강송과 대나무로 빽빽한 숲을 이룬 이곳은 여러 영화·드라마에도 등장한 사설 수목원이다(입장료 어른 8000원). 숲 관계자는 “최민식 배우가 범을 쫓던 영화 ‘대호’도 이곳이 무대였다”고 말했다.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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