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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폰 쓴뒤 악몽 찾아왔다…한국 오는 '황금 다리' 모델 사연

‘황금 다리 모델’ 로렌 바서

‘황금 다리 모델’. 미국의 패션모델 로렌 바서(35)를 수식하는 말이다. 그는 실제로 무릎 아래 두 다리에 황금 의족을 하고 있다. 스물네 살이던 2012년 생리 중 탐폰을 사용한 후 독성쇼크증후군(TSS)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고, 7년 후 왼쪽 다리마저 잃었기 때문이다.


TSS로 의식을 잃은 로렌은 심장마비와 장기부전으로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했고, 열흘 뒤 가까스로 의식은 찾았지만 그동안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했던 오른쪽 다리에선 괴사가 진행돼 무릎 아래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왼쪽 다리는 발뒤꿈치와 발가락을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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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리스타일’ 업사이클링 의상을 입고 촬영한 전시 포스터. [사진 현대자동차 ]

“8개월간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서 자살 충동을 수도 없이 느꼈죠. 한순간에 나의 모든 삶이 무너졌으니까요.”


건강 정보 사이트 헬스라인에 따르면 TSS는 황색포도상구균 감염에 의한 급성질환이다. 황색포도상구균은 여성의 질 속에 서식할 때는 위험하지 않지만 흡수력이 강하고 생리혈을 가득 머금은 탐폰 안으로 들어가면 빠르게 증식하고, 탐폰을 삽입하거나 제거할 때 질에 작은 상처가 나면 혈류에 침투해 독소를 내뿜으며 생명을 위협한다. 탐폰을 장시간 착용하면 이 박테리아가 증식할 시간이 늘어 감염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고 한다.


“더 이상 어린 소녀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나의 이야기를 공개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냈죠.”


로렌은 ‘로빈 대니얼슨 여성 위생용품 안전법’ 의회 통과를 위한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여성 위생용품 회사들이 소비자에게 제품의 성분을 정확히 밝히고 제품이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장기적 영향을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이다.


동시에 로렌은 패션모델로서의 꿈도 펼치기 시작했다. 로렌의 어머니 파멜라 쿡은 1980~90년대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 쉬퍼 등과 함께 활동한 슈퍼모델이다. 로렌은 생후 3개월부터 어머니와 함께 유명 패션잡지 화보에 출연했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였지만 정해진 길을 가기보다 좀 더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길 원했죠. 하지만 다리를 잃고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은 용기와 도전정신을 잃지 않는 태도’임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톱 모델이 될 것을 결심했어요. 무대에 선 내 모습과 내 스토리를 통해 사람들이 모든 경계를 허물고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낼 힘을 얻길 바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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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패션 잡지에서 활약하는 로렌의 모습. [사진 인스타그램]

로렌은 오른쪽 다리에 황금 의족을, 왼쪽 발에 황금 발을 한 패션모델이 됐고 ‘보그’ ‘바자’ 같은 유명 패션잡지를 비롯해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의 쇼에 섰다. 7년 후 왼쪽 발가락의 뼈들이 계속 자라면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해 결국 왼쪽 다리마저 무릎 아래를 잘라내야 했지만 그는 더 이상 좌절하지 않았다. 그의 인스타 아이디 ‘불가능한 여신(theimpossiblemuse)’은 이런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좋아하던 농구도 더 열심히 하고, LA 마라톤에 참가할 준비도 하고 있어요.(웃음)”


로렌이 이번에 한국을 찾은 이유는 현대자동차가 3월 22일부터 4월 9일까지 서울 성수동 AP 어게인에서 개최하는 ‘리스타일’ 전시 홍보대사로 참여하기 위해서다. ‘지속가능한 이동성, 지속가능한 아름다움, 지속가능한 인류’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현대자동차가 지난 4년간 자동차 폐자재를 이용해 ‘업사이클링(버려진 제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재활용 작업)’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물을 모두 모아 소개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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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쇼에서 활약하는 로렌의 모습. [사진 인스타그램]

콘텐트 크리에이터 서영희씨의 지휘 아래 설치미술가 오화진씨 등이 참여해 자동차 폐자재를 활용한 아트 공간을 꾸몄고, 아이오닉6에 적용된 바이오 플라스틱 등을 활용한 다양한 의상과 액세서리가 전시됐다. 이탈리아 명품 ‘모스키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제레미 스콧과 협업한 ‘2023 리스타일 컬렉션’ 의상도 첫 선을 보인다.


로렌은 이 행사의 홍보대사로서 각종 포스터와 영상 작업에 참가했다. 로렌을 홍보대사로 추천한 서영희씨는 “신체장애로 인한 좌절을 극복하고 삶의 혁신을 가져온 로렌과 탄소중립을 위해 브랜드 철학의 혁신을 일으킨 현대자동차는 모두 ‘혁신의 아이콘’”이라며 “로렌과 함께한다면 더 큰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지속가능한 패션’에 관심이 많고 캠페인도 활발한 지역이죠. 나 역시 지구를 지키는 것에 관심이 많은데,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뤄내겠다는 현대자동차의 혁신적인 철학과 이벤트에 동참할 수 있어서 기뻐요.”


올해만 세 번째 한국을 방문한다는 로렌은 “한국 사람들은 스타일도 좋고 친절하고 모든 면에서 ‘쿨’하다”며 “실제로 BTS와 그들의 룩을 아주 좋아한다”고 방한 소감을 밝혔다.


“치킨이 너무 맛있고(웃음), 두부 요리도 너무 좋아요. 지난번 방문 때 떡 케이크에 내 얼굴을 프린팅한 선물을 받았는데 아주 흥미로웠죠. 내일 매니저와 함께 얼굴 피부 관리를 받으려고 이미 예약도 해 놨어요.(웃음)”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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