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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없어도 메밀꽃 물결친다…이 가을, 봉평을 즐기는 법

중앙일보

평창 효석문화제가 메밀 작황 부진으로 취소됐다. 그래도 축제가 열리는 평창 봉평면은 초가을이 가장 여행하기 좋을 때다. 축제장 메밀밭은 부실해도 곳곳에서 사진 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

예정대로였다면 이달 3~12일는 평창 효석문화제 기간이다. 3년만에 축제 개최를 준비했던 강원도 평창군과 봉평면 주민은 8월 22일 돌연 축제를 취소했다. 코로나 확산 우려도 있었지만, 장마 영향이 컸다. 올여름 집중호우 탓에 메밀 농사가 직격탄을 입었다. 그래도 가을은 가을이다. 메밀꽃이 아쉬워도 봉평의 가을은 매혹적이다. 이효석 작가의 삶을 돌아보며 문향(文香)을 누리고, 시골 장터에서 푸근한 정을 느끼고, 새로 단장한 미술관도 볼 수 있다. 물론 하얀 메밀꽃 물결치는 풍광도 곳곳에 숨어 있다.

작가가 살던 초가집과 평양집

메밀꽃축제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지만 축제 이름은 효석문화제다. 봉평은 소설가 이효석(1907~42)의 고향이자 그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다. 축제가 취소됐어도 작가의 흔적을 톺아보는 문학기행을 즐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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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은 소설가 이효석의 고향이다. 2018년 조성한 '이효석달빛언덕'에는 작가가 어릴 적 살던 초가집과 평양서 살던 주택을 재현한 집이 있다.

봉평면 창동리에 ‘이효석문화예술촌’이 있다. 예술촌은 이효석문학관과 2018년 8월 개장한 이효석달빛언덕으로 이뤄져 있다. 문학관은 작가의 생애와 문학세계에 집중하고, 달빛언덕은 체험과 재미에 초점을 맞춘다. 달빛언덕에는 집 두 채가 있다. ‘이효석 생가’는 작가가 나고 자란 옛 영서지방 전통 초가집을, ‘푸른집’은 작가가 만년에 살던 평양 주택을 재현했다. 오르간, 전축 등 푸른집에 전시된 물품이 흥미롭다. 평창군 황병무 문화관광해설사는 “작가는 항상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썼고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었다”며 “일찍이 서양 문학을 섭렵한 작가는 앞서간 모더니스트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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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달빛언덕에는 작가와 아내 이경원의 묘소가 있다. 파주에 있던 묘를 지난해 11월 이장했다.

푸른집 옆 언덕에는 작가와 아내의 묘지도 있다. 원래 묘지는 평창 용평면에 있었으나 1989년 영동고속도로 건설로 경기도 파주 동화경모공원으로 이장했다가 지난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달빛언덕에는 소설 속 나귀를 형상화한 전망대, 이효석이 활동한 시기의 문학사를 살필 수 있는 ‘근대문학체험관’도 있다. ‘꿈꾸는 달 카페’에서는 작가가 즐겨 마셨다는 모카커피를 판다.

메밀전·묵사발…농부의 손맛

축제 개최 여부를 떠나 이즈음이면 사람들은 만개한 메밀꽃을 보러 봉평을 찾는다. 지난 1~2일 봉평에서 마주친 관광객 대부분이 “아, 메밀꽃 보러 왔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축제장 주변 메밀밭은 곳곳이 흙빛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8월 초 파종하자마자 퍼부은 비 때문에 메밀밭 대부분이 쑥대밭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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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밝은 밤, 메밀꽃밭 풍경은 86년 전 소설에 묘사된 풍경 그대로다.

다행히 꽃이 잘 자란 밭도 듬성듬성 있었다. 맑은 가을 하늘과 초록산, 하얀 융단 같은 꽃밭이 강렬한 색 조화를 이뤘다. 같은 꽃밭도 달 비친 밤이 더 낭만적이었다. 14살에 고향을 떠난 작가가 유년을 추억하며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묘사한 이유를 알 만했다.


축제는 열지 않지만 마을 주민은 이효석문화마을에 조명을 밝히고 흥정천에 섶다리도 설치했다. 이효석문학선양회 전병설 위원장은 “공연을 비롯한 행사만 없을 뿐 축제를 위해 준비한 인프라는 그대로 뒀다”며 “많은 사람이 문학 고장의 정취를 느끼러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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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전통시장은 규모는 크지 않아도 질 좋은 고랭지 채소와 메밀전, 막국수 등 영서지방 전통 음식을 맛보기 좋은 곳이다.

이효석문화마을에서 남안교를 건너면 봉평전통시장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주요 배경이다. 57개 상점이 시장에 있는데 85개 팀이 좌판을 까는 장날에는 100년 전 장터 같은 분위기가 난다. 추석을 1주일 앞둔 지난 2일 오일장은 고랭지 채소와 산나물, 온갖 먹거리를 파는 상인과 주민, 관광객으로 북적북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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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에는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상인을 만날 수 있다. 메밀부침과 전병, 수수부꾸미, 묵사발 등이 인기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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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선 먹는 재미를 놓칠 수 없다. 15년째 오일장에 나오고 있다는 ‘아랑이네’에서 메밀부침·감자전·묵사발·수수부꾸미를 먹었다. 구수한 음식에서 다정다감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랑이네 원복순(64) 사장은 “직접 재배한 채소로만 음식을 만든다”며 “믿고 드시라”고 말했다. 김형래 봉평상인회장은 “봉평장은 크진 않지만 ‘정’과 ‘덤’이 있는 푸근한 시골 장”이라고 말했다.

나들이하기 좋은 미술관

봉평에 왔다면 막국수를 먹어야 한다. 어디가 맛있을까. 주민에게 물어도 답은 제각각이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이왕이면 순메밀, 그러니까 100% 메밀로 만든 국수를 먹는 게 좋겠다. 이효석문학관 인근에 자리한 ‘원미식당’과 ‘봉평메밀초가집옛골’을 추천하는 주민이 많았다. 봉평메밀초가집옛골에서 먹은 ‘흑드레순메밀’이 독특했다. 순메밀국수에 흑임자를 갈아 넣고, 곤드레나물을 얹은 뒤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먹는 퓨전 음식이다. 고소한 맛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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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메밀초가집옛골에서 맛본 흑드레순메밀. 메밀국수에 흑임자 가루, 곤드레나물, 육수를 넣고 비벼 먹는다.

이효석문화마을이 있는 창동리에만 메밀밭이 있는 건 아니다. 무이리 ‘무이예술관’ 주변에도 메밀이 많이 자란다. 폐교에서 미술관으로 변신한 무이예술관은 나들이하기 좋은 장소다. 2018년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쳤고 카페도 열었다. 상설전시 외에도 특별전과 기획전을 진행하며 전시 수준을 높인 점이 눈에 띄었다. 9월에는 지역 아마추어 화가들의 작품을 내세운 ‘그림벗전’과 홍익대 출신 작가들의 ‘소조각회’ 전시를 진행한다. 코로나 시대 필수품인 ‘마스크’를 주제로 한 조각 전시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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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재개관 후 무이예술관에서는 다양한 기획전,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9월 한 달간 홍익대 출신 조작가들의 소조각회가 진행된다. 주제는 '마스크'.

예술관 정원에는 코스모스가 만개했다. 오상욱 무이예술관장의 조각을 감상하며 산책해도 좋고, 카페 창가에 앉아 정원을 바라만 봐도 좋다. ‘봉평감자피자’가 카페 인기 메뉴다. 2019년 감잣값이 폭락했을 때 지역 농가를 위해 개발한 메뉴다. 무이예술관 김권종 대표는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고 정원에서 음악회를 여는 등 꾸준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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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예술관 카페는 정원 풍경을 감상하기 좋도록 정면을 개방하고 야외좌석을 만들었다.

효석문화마을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휘닉스평창에도 메밀밭이 있다. 해발 1050m, 스키장 정상인 ‘몽블랑’에 파종한 메밀이 이달 말께 만개할 예정이다. 관광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5000㎡ 면적의 '천상의 화원'을 감상하면 된다. 휘닉스평창은 오일장 열리는 날, 봉평전통시장과 무이예술관을 들르는 투숙객 대상 무료 버스투어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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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평창=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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