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사이언스&] 침 뱉어 찾은 뿌리…경주 최씨 기자, 한·중·일 혼혈이었다
최준호의 사이언스&
DNA 분석 조상찾기 직접 해보니
한국 48, 일본 25, 중국 26% 섞여
한국인 상당수는 몽골 유전자도
내년엔 57개 항목까지 DNA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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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민족은 없었다. 배달의 민족도, 단군 할아버지 자손도…. ‘토종 한국인’이란 사람들의 혈통은 한국·중국·일본, 3국의 혼혈이었다. 여기에 전부는 아니지만, 몽골 혈통도 살짝 섞였다. 중국·일본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혈통 구성비의 중심은 역시 한·중·일이다. 독도·위안부·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이슈 등으로 각각 한·일, 한·중간 현실 갈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장궤’ ‘쪽바리’ ‘조센징’의 정체는 그랬다.
기자가 직접 DNA 분석을 통한 ‘조상찾기’를 해봤다.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DTC 시범사업에 선정된 민간기업 이원다이애그노믹스를 통해서다. 간단했다. 샘플 수집 키트 속에 들어있는 플라스틱 튜브에 침을 뱉어 넣으면 그만이었다. 필요한 양은 1㎖. 검사 결과는 1주일 뒤에 나왔다. ‘한국 47.89%, 일본 25.14%, 중국 26.97%.’ 기분이 묘했다. 대대로 경북 경주 남산 자락에서만 살아온 토종 경주 최가, 통일신라시대 대학자 최치원의 32세손 DNA에 한국과 중국·일본이 다 들어있다니….
중국인도 DNA엔 한·중·일 뿌리 공유
혹여, 엉뚱한 상상으로 놀리지 마시라. 한국인의 DNA를 분석하면 거의 예외없이 한·중·일 3개국의 유전자가 들어있다.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의 배진식 연구소장은 한국 46.26%, 일본 26.54%, 중국 26.01%, 몽골 1.19%다. 몽골 DNA는 다시 몽골리아 0.82%, 키르기즈스탄 0.27%, 카자흐스탄 0.11%로 세분됐다. 조상찾기 서비스 책임자인 권혁중 수석연구원도 배 소장과 유사했다. 한국 48.61%, 일본 30.39%, 중국 19.95%, 몽골 1.04%(몽골리아 0.73%, 키르기즈스탄 0.24%, 카자흐스탄 0.07%). 배 소장은 충북 보은이, 권 수석연구원은 전북 정읍이 대대로 살아온 고향이다.
중국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베이징 출신의 중국인 직원 장위안은 ‘중국 62.66%, 한국 17.82%, 일본 6.94%’으로 나타났다. 한국인과 차이점이라면 한·중·일 이외에도 동남아 DNA(베트남 9.88%, 미얀마 1.75%, 필리핀 0.93%)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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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소장은 “한국인의 DNA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한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 혈통이 섞여 있고, 구성비가 작긴 하지만 몽골 등 북방민족 혈통도 들어있다”며 “한국·중국·일본인들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큰 줄기에서 만나게 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고려시절 몽고 침입과 조선 임진왜란 때 영향도 일부 없진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게 이원다이애그노믹스의 판단이다.
권 수석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중으로 미토콘드리아와 Y염색체 속 DNA 분석을 통해 검사를 받는 사람의 모계(母系)와 부계(父系)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려주는 서비스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되고, Y염색체는 그 특성상 부계로만 유전되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분석하면 모계와 부계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중국인 DNA도 현재는 한족 중심이지만, 내년 안으로 50여 개 소수민족에 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확보해 보다 자세한 분석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선 자유로운데, 한국은 아직 시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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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받은 검사는 ‘DTC(Direct to Consumer·소비자 직접 의뢰) DNA 분석 서비스’다.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고 기업이 직접 소비자의 DNA 분석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DTC라고 부른다. DNA 조상찾기는 한국에서는 아직 일반인들이 할 수 없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고시에 따라 현재로서는 12가지 항목만 검사할 수 있다. 허용된 12가지 항목은 체질량지수·중성지방·콜레스테롤·카페인 대사·혈압·혈당·피부노화·피부탄력·색소침착·비타민C 농도·탈모·모발굵기 등이다. 정부는 당시 12가지 항목의 선정 기준으로 ① 질병진단 등 의학적 결정과 연결되지 않도록 의료영역 최대한 배제, ② 생활습관 개선, 질병예방이 가능한 검사, ③ 소비자 위해성이 적고 과학적 근거가 확보된 검사와 같은 세 가지를 꼽았다.
아직 국내에서는 DNA 검사를 자유롭게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첨단 바이오산업에서는 국경이 사라진지 오래다. 한국인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외국기업이 하는 DNA 분석 신청을 하면 된다. 우편으로 보내온 기트에 타액(침)을 넣어 보내기만 하면 된다. 가격도 100달러가 안된다. ‘멜팅팟’(Melting-pot)이란 표현처럼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는 수년전부터 조상찾기 열풍이 불고 있다. 벤처기업 23앤미(23andme) 덕분이다. 이 업체는 2007년부터 DNA 분석을 통한 조상찾기 서비스를 해오고 있다. 컬러지노믹스라는 스타트업은 유사한 DNA 검사를 통해 유방암 등 질병 가능성까지 가르쳐준다.
이쯤 되면 역차별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기업은 한국인을 상대로 서비스할 수 있고, 한국 기업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국경없는 경쟁 시대에 생명윤리 및 의료 전문성과 관련한 규제를 강조하면서 자국 기업의 발만 묶어놓고 있는 셈이다.
유전자 영향은 30%, 환경·습관이 더 중요 신현호 한국바이오협회 정책협력 부문 차장은 “국내 유전자검사 관련 규제는 생명윤리와 관련한 것도 있지만, 기존 규제를 고수하려는 의료계의 입장이 강하게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며 “의료기관이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분석을 진행할 때도 사실은 민간 유전자 전문 분석회사에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부터 이원다이애그노믹스 등 12개 기업을 대상으로 DNA 검사 항목을 기존 12개에서 57개 대폭 늘린 DTC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시범사업 과정을 통해 기준을 충족한 업체에게는 57개 부분까지 DNA 검사를 할 수 있도록 고시를 개정할 계획이다. 57개 항목은 12개 항목에 근력 운동·유산소 운동·지구력 운동 등 분야별 운동 적합성과 근육 발달 능력, 단거리 질주 능력, 운동후 회복 능력, 햇빛 노출 후 태닝 반응, 새치, 알콜 분해 능력, 수면 습관, 불면증, 비만·체지방율, 퇴행성 관절염증 감수성 등 45개 부문이 더해졌다.
배진식 연구소장은 “분석 결과는 57개 항목에 대한 민감도가 타고난 DNA에 새겨져 있다는 뜻”이라면서도 “이런 타고난 유전자가 실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30% 정도이며 나머지는 자라온 환경이나 식습관 등에 의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 타고난 유전자를 절대적으로 믿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배 소장은 그러나 “미국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처럼 유방암을 일으키는 브라카 유전자의 경우 발현 가능성이 80% 이상인 것도 있다”며 “정부가 DTC DNA 분석으로 허용한 것은 대부분 질병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들이라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바이오업계는 당초 120개 항목에 걸쳐 DTC DNA 분석을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지난 2월 우선 57개 부문만 시범사업을 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급성장하는 글로벌 유전자 검사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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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범사업에 참여한 12개 기업 중 현재 7개 기업이 남은 상태”라며 “새해부터는 시범사업 검증을 최종 통과한 기업들이 57개 부문에 대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DNA 분석 서비스를 하게 된다”며 “향후 사업 추이를 봐가면서 위원회를 통해 DTC DNA 분석 항목을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유전자 검사 시장은 2015년 5조6402억원에서 연평균 10.6%씩 성장해 2024년에는 13조7658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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