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정석]"내가 지면 몰수게임" 나는 태극전사 버스기사 장승찬입니다
"당신은 왜 일 하십니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그야 물론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구두닦이·사육사·버스기사….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입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일하는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14명의 우리 이웃이 전하는 '내가 일하는 이유'를 들어보시죠. '직업의 정석: 당신은 왜 일하는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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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까. 그저 28석짜리 평범한 버스일 뿐인데, 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모든 행위는 ‘의식’이 된다. 오른발을 먼저 올릴 것인가, 왼발을 먼저 올릴 것인가. 이 버스 승객들은 징크스 때문에 버스에 올라설 때 내딛는 발의 순서에까지 의미를 부여한다. 바로 가슴팍에 태극기를 단,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다. 이 특별한 승객과 15년째 함께 하는 있는 기사 장승찬(60·대한축구협회 부장)씨를 지난달 19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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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으로 불리는 사나이
이청용·손흥민·박주영·기성용…. 이들에게 그는 ‘아버님’으로 불린다. 선수들과 알고 지낸 시간이 길어지며 자연스레 ‘아버님’이 됐다.
아버님이라는 단어가 만트라(진언·眞言)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월드컵 5번, 올림픽을 4번 치르면서 장 씨는 정말 부모 입장이 됐다. 혹여 다치지나 않을까, 애면글면 자식의 앞날을 염려하는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마음 말이다.
“경기 앞두면 저도 긴장해요. 가슴팍에 태극기 달고 뛰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아니까요. 축구는 전 국민이 승리를 염원하는 스포츠잖아요. 대한축구협회 직원들이 다 같은 마음일 거에요. 생사고락 같이 하는 동료이자 자식 같은 선수들이니까요. 혹여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되고요. 경기 끝나고 이동하는데 경기가 안 풀려서 차 안이 절간 같으면 정말 괴롭지요. 그때는 브레이크 밟는 것도 조심해요. 급정거하면 선수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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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한때 축구선수를 꿈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키가 173㎝였는데, 당시로서는 장신에 속했다. 키 순서대로 앉다보니 늘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았다. 공부보다는 운동에 적성에 맞았다. 육상선수로 지내다 축구로 전향해 운동장을 누볐다. 하지만 어느 날 '축구가 재밌긴 하지만 밥 먹고 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기량이 부족했어요. 축구선수로 성공 못하겠다 싶었어요.” 밥벌이를 위해 19살이 되던 해에 일을 시작했다. 용산에서 전자제품 부품 배달을 했다. 대형버스 면허는 1981년에 땄다. 그 때는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88올림픽’을 유치해 관광버스 수요가 폭증하면서, 관광버스를 몰기 시작했다. 6개월 간 남의 차를 몰다 전재산을 털어 버스 한 대를 샀다. 축구와의 인연이 다시 이어진 것은 96년부터다. 지인이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때문에 축구선수들이 훈련을 하는데, 며칠만 버스를 몰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 국가대표팀과 인연을 이어오다 2002년 6월 1일 대한축구협회로 아예 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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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기사로 산다는 것
“사람들이 물어봐요. 어느 선수는 어떻냐. 누구랑 친하냐고요. 선수에 대한 일이나 보고 듣는 이야기는 하나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제 원칙이에요. 이게 제 일이고, 직장이니까요. 저는 제 직업이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에 버스기사는 정말 많잖아요? 그런데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자신감인데, 35년 무사고 운전경력이 자랑스러워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는 자랑스럽게 답합니다. 운전기사라고요.”
국가대표팀 버스기사로 일하며 습관이 늘었다. 합숙기간엔 선수들과 삼시세끼를 같이 하는데, 선수들보다 먼저 식당에 가서 앉아있는 걸 철칙으로 한다. “선수들이 앉아서 밥먹고 있는데 제가 늦게 들어간다고 해보세요. 눈이라도 마주치면 선수들이 인사할 거 아니에요? 일어나 인사라도 하게 하면 선수들 불편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자식같고 조카같은 선수들인데 제가 조심해야죠.”
새벽에 눈뜨면 제일 먼저 차를 둘러본다. 밤새 혹시 기름이 새진 않았나, 타이어는 괜찮은가 체크하는 것이다. 점심 먹고 차 한 바퀴 돌고, 저녁 먹고 차 한 바퀴를 돌아야 안심이 된다. 경기장으로 향하는데 타이어가 펑크나거나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이로제라고 하는데 저는 직업의식이라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차를 탈 때가 되면 미리 차에 가서 시동을 걸어놓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온도를 맞춰놔요. 온도는 27도로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선수들이 한바탕 뛰고 나면 기력이 떨어지잖아요. 그때 혹시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니까 늘 차 온도도 신경을 쓰죠.”
지방 경기 땐 호텔에서 먹고 잘 때도 있다. 선수들과 같은 층을 쓰는데, 방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다. 만에 하나 맥주라도 한 잔 하고 들어오다 엘리베이터에서 선수를 마주치면 팀에 부담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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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래야 졸 수가 없다
올 3월 대표팀 버스가 신형으로 교체됐다. 대표팀의 세 번째 차량이다. 차가 바뀔 때마다 그는 치성을 드린다. ‘길에서 서는 일 없기를, 선수들 건강하기를, 사고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한다.
버스를 몰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날엔 긴장이 극에 달한다. 앞에는 에스코트 차가 있지만, 뒤를 지켜주는 차는 없다. 만에 하나 어떤 차가 뒤에서 들이받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악몽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르면 선수들이 경기장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3대 0으로 ‘몰수 게임’ 패를 당한다.
“저 때문에 선수들이 경기 못가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지요. 대표팀 버스를 몬 뒤로는 졸려웠던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졸래야 졸 수가 없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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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우즈베키스탄과의 월드컵 예선전 때 일이다. 파주에서 출발하는데 왠지 감이 좋질 않았다. 최대한 거리를 두고 가자 싶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앞에서 에스코트해주던 오토바이가 갑자기 버스 앞에서 넘어지는 게 아닌가. 차 안에서 이걸 보고 있던 이동국 선수가 소리를 질렀다. 급정거를 하면 선수들이 다칠 수 있으니 최대한 조심히 브레이크를 밟아서 차를 세웠다.
“거리를 두고 움직인 게 천만다행이었어요. 무사히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최강희 감독이 ‘큰 액땜했다’고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선수들 몸값도 그렇지만 경기에 국민들이 거는 기대감이 얼마인데 가슴이 철렁했지요.”
또 한 번은 뒤에서 차 한 대가 맹렬히 쫒아오는 게 후사경으로 보이기에 비켜줬더니 대표팀 차량을 앞질러 달리다가 추돌사고를 내기도 했다.
“사람이니까 운전 실수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고가 나는 환경에서 벗어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요. 늘 주위를 살피고 사고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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