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속 ‘등골브레이커’ 버리지 마세요…그때 그 패딩 뜬다
2011년, 부모 등골을 빼 먹는 비싼 옷이라는 의미로 ‘등골브레이커’라는 별명을 얻었던 패딩이 있다. 가격별 모델에 따라 ‘패딩 계급도’까지 등장해 사회적 이슈가 됐던 브랜드 ‘노스페이스’ 얘기다. 이후 캐나다구스·몽클레르 등 더 비싼 패딩이 등장하고, 한편에선 너도나도 합리적 가격대의 롱패딩을 선보이면서 국민 패딩의 위용도 점차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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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멋져보이는 그때 그 패딩
그런데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지금, 패셔니스타들 사이에서 노스페이스 패딩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모델 켄달 제너가 갈색 노스페이스 숏패딩을 즐겨 입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켄달 제너는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에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스케이트 타는 영상을 올렸고, 해당 게시물은 650만개의 ‘좋아요’를 기록했다. ‘노스페이스가 다시 멋져 보인다’는 댓글이 달렸다. 벨라 하디드,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등 해외 스타들 사이에선 노스페이스 숏패딩에 레깅스, 혹은 저지 팬츠(신축성이 있는 바지)를 입는 것이 팬데믹 시대의 ‘집콕’ 패션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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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지난 12월 22일 공개된 구찌와 노스페이스의 협업이 기름을 부었다. 옅은 초록색과 갈색, 겨자색 등의 따뜻한 색을 주로 사용한 복고 콘셉트의 광고 사진은 암울한 팬데믹 시대의 겨울을 위로했다. 밀라노의 한 5층 건물 전체에 그린 패딩 벽화도 화제가 됐다. 다소 낡은 브랜드로 취급받았던 노스페이스가 최신 스트리트 패션으로 부활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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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신제품이 아니라 빈티지(중고) 제품이 더 인기라는 점이다. 켄달 제너, 벨라 하디드 등 해외 스타들이 즐겨 입는 모델 역시 1992년에 출시된 노스페이스 ‘눕시’라는 모델이다. 주로 ‘눕시 700’으로 통용되는 볼륨 있는 숏패딩 스타일이 가장 인기로, 특히 켄달 제너가 자주 입는 갈색을 구하려는 이들이 많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중고 앱 ‘디팝(Depop)’에서 지난 4개월간 노스페이스 검색량이 500% 증가했다. 중고 사이트인 ‘이베이’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3초마다 노스페이스가 검색됐다. 국내서도 일명 ‘켄달 제너 패딩’으로 입소문이 난 갈색 눕시를 찾는 글이 온라인 카페 등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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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패션계 새 성장동력 되나
특정 브랜드의 중고 모델이 지금 화제가 되는 이유는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노스페이스 외에도 리바이스 501등 과거 영광을 누렸던 전설적 패션 아이템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복고 패션 트렌드의 영향이지만 과거 상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중고 패션 사이트가 늘어났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과거 제품과 비슷하게 출시된 새 제품이 아니라, 아예 과거 제품을 구해 입으려는 시도가 자연스러워졌다. 중고 패션은 젊은 세대들이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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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재 패션 업계에서 중고 시장은 가장 뜨거운 분야다. 미국 온라인 중고 의류 업체 ‘스레드업(thredUP)’은 미국 중고 의류 시장이 2019년에서 2021년 사이 69%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중고 시장도 호황기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2020년 6월 기준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4명 중 1명이 스마트폰으로 중고 거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 거래 중에서도 패션 카테고리의 성장이 눈에 띈다. 2020년 4분기 중고거래 플랫폼인 ‘번개장터’에서 거래된 의류와 패션 잡화 거래 건수는 161만건으로 3분기 대비 27% 증가했다. 지난 한해 동안 번개장터에서 거래된 의류와 잡화를 합치면 45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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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베이·쓰레드업·포쉬마켓 같은 플랫폼이 아니라, 브랜드가 직접 중고 판매를 하는 방식으로 판이 바뀌고 있다.
구찌는 명품 중고 플랫폼 ‘더리얼리얼’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H&M 그룹은 자사 웹사이트에 중고 카테고리를 열고 중고 의류 판매를 하고 있다. 리바이스도 지난해 10월 자체 중고 거래 사이트 ‘리바이스 세컨핸드’를 열었다. 패션이 돌고 돈다는 얘기가 요즘처럼 실감나는 시절이 없다. 옷장 구석에 박힌 옛날 옷이 누군가 애타게 찾고 있는 바로 그 모델일 수도 있다.
유지연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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