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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중앙일보

작년엔 쪽박 올해는 대박, '한재미나리'도 영화따라 흥행 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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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가 뭔지 모르지? 미국 바보들은.”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막 자라니 누구든 뽑아 먹을 수 있어.”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윤여정)가 하는 말에 뜨끔했다. 먹을 줄만 알았지. 미나리가 어디서 어떻게 자라는지는 미처 몰랐다. 미나리에도 이른바 급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됐다. ‘보성녹차’ ‘의성마늘’ ‘나주배’처럼, 미나리 중 유일하게 특허청으로부터 ‘지리적 표시 등록’을 취득한 것이 바로 경북 청도의 ‘한재미나리’다. 이곳 미나리가 남다른 맛을 낸다는 이야기다. 미나리를 뜯고 맛보려 청도로 갔다. 마침 한재미나리 수확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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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마을의 희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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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란다. 물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음지에서도 싹을 틔운다. 영화 ‘미나리’가 낯선 미국 땅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한국인 가족을 왜 미나리에 비유했는지 알 법하다. 하나 질 좋은 미나리가 자라는 환경은 따로 있다.


‘한재’는 청도에서도 후미진 산골이다. 읍내에서 청도천을 따라 10㎞가량 내려오다 한재천이 흐르는 고갯길로 접어들면, 금세 육중한 산에 포위당하고 만다. 화악산(932m)·남산(851m)·철마산(633m)이 에워싼 분지에 농가가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룬다. 대략 130곳의 미나리 농가. 이 일대 초현리‧음지리‧평양리‧상리 땅에서 자란 것만 ‘한재미나리’란 브랜드를 붙일 수 있단다.


마을 언덕진 자리에서 굽어보면 미나리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산비탈을 따라 물안개처럼 퍼져 있다. “지형적 특성상 배수가 잘되고, 지하수도 풍부하다. 게다가 일교차까지 커 미나리가 속이 꽉 차게 여문다”고 청도농업센터 권병석 지도사는 설명했다. 물가에서 자란 미나리는 낮은 자세로 포복하길 좋아하지만, 한재미나리는 꼿꼿한 자세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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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미나리는 지난해 봄 역대 최악의 불황을 맞았다. 지난해 2월 청도대남병원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터지고,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매출에 큰 타격을 받았다. 농가 대부분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도매상에 미나리를 넘겼다. 올해는 성적이 나쁘지 않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작년 동기 대비 150%가량 매출이 증가했다. “작년엔 개미 한 마리 없는 유령 마을이었다. 코로나 확산 세가 줄고, 영화까지 흥행하면서 먹는 미나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 같다”고 한재미나리 영농조합법인 김무용 팀장은 말했다. 마을 한복판에 ‘전 세계를 감동시킨 미나리 원조는 청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수상 축하합니다’ 등의 문구를 새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삼겹살보다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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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밭에 뿌려둔 미나리는 겨울을 지나 2월~4월 수확한다. 4월이 지나면 미나리가 질겨지고, 향이 너무 강해져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미나리를 거두는 일은 100% 수작업이다. 어른 무릎 높이까지 자란 미나리를 낫으로 잘라낸 다음, 떡잎 따위 이물질을 일일이 떼어내고, 물로 씻어내는 게 순서다. 욕심은 금물이다. 미나리가 상처 입지 않도록 양손에 한 줌씩만 쥐고 흐르는 지하수에 슬슬 씻겨낸다. 모든 농가가 1㎏당 1만원을 받고 한재미나리를 판매한다.


“김치에도 넣어 먹고, 찌개에도 넣어 먹고, 아플 때 약도 되지.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영화 ‘미나리’ 속 할머니의 대사처럼 미나리는 쓰임이 많은 식재료지만, 제맛을 즐기는 방법은 따로 있다. 한재미나리는 유독 삼겹살과 궁합이 잘 맞는다. 사실 한재에서 받은 첫인상은 마을 전체를 감도는 기름진 냄새였다.


미나리 수확 철이 되면 농가에서는 한편에 시식코너를 마련한다. 하우스에 모여 앉아 갓 뜯은 한재미나리에 구운 삼겹살을 올려 먹는다. 식당이 아니므로, 고기나 쌈장, 술은 손님이 각자 준비해야 한다. 불편함도 있지만, 어느 한 끼 식사보다 생동감이 크다.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하우스는 30곳 가까이 되는데,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대신 10년 전 7개에 불과하던 고깃집이 20곳으로 늘었다. ‘한재농사꾼박진동’처럼 농부가 직접 운영하는 고깃집으로 사람이 몰린다. 미나리 한 접시(700g, 1만원)가 삼겹살 1인분(130g, 8000원)보다 비싼 건 이곳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고기 넉넉하게 달라는 사람은 없어도, 미나리 잘 챙겨 달라”고 조르는 손님은 부지기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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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크기로 접은 미나리 위에 삼겹살 올려 입에 욱여넣었다. 향긋한 향을 머금은 삼겹살은 평소보다 개운한 맛을 냈다. 아삭한 식감 덕에 씹는 재미도 컸다. 봄 내음이 입안 가득 퍼졌다.


한재미나리에 삼겹살을 올려 먹는 일은 청도 사람에게 봄을 맞는 의식과도 같다. 한재미나리는 한 철 장사다. 여름이 오면 고깃집은 일제히 문을 닫는다. 삼겹살이 있어도, 한재미나리가 없으니 장사가 되지 않는다. 일 년에 딱 한철 봄에만 즐길 수 있는 성찬이었다.


청도=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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