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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여자는” 편견 깨는 이다희…차도녀서 여전사 되다

[민경원의 심스틸러]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뼈 때리는 걸크러시 차현 역할로 인기

슈퍼모델로 데뷔, 약점 된 큰 키 극복

솔직한 매력에 예능서도 잇단 러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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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수목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를 처음 봤을 땐 눈을 의심했다. 포털 업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에서 업계 1위인 ‘유니콘’은 물론 경쟁업체 ‘바로’의 주요 보직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 유니콘은 전·현직 대표(유시진ㆍ전혜진)가, 바로는 대표의 왼팔과 오른팔 격인 본부장(임수정ㆍ이다희)이 모두 여자다.


이는 현실은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자연히 이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회사의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이들 없이는 도무지 조직이 굴러갈 수 없는 구조다. 여기에 숨은 권력자 KU그룹 회장(예수정)까지 다섯 배우의 기 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극 중 예수정과 전혜진은 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이다. 이들이 더 큰 권력을 쥐고자 싸우는 것과 반대로 가진 것 없이 태어난 흙수저 유시진은 조금이라도 쥐어보기 위해 권력 앞에 무릎 꿇는다. 반면 임수정과 이다희는 그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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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30대 중후반에 임원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새로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고민하고 정답을 찾아 헤매는 인간적인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 상대적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많은 이유다.


그중에서도 이다희(34)가 맡은 소셜 본부장 차현은 더욱 신기한 캐릭터다. 기존에 전문직 여성 캐릭터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하나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유도 선수였던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다. 욱하기가 무섭게 메치고 만다.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평정을 유지하려 하기보다는 감정에 매우 충실한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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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이다희는 ‘백마탄 왕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에서 ‘백마 탄 여전사’로 활약한다. 학교 선배이자 경쟁업체에 종사하는 전혜진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준 것도, 동료이자 라이벌인 임수정을 번번이 구해주고 함께 복수해준 것도 그였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이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이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여성 팬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걸크러시’라 하지만, 넘치는 정의감은 성별ㆍ연령은 물론 지위고하도 가리지 않는다. 무명배우의 설움을 겪고 있던 이재욱을 구출해 번듯한 주연배우로 키워내고, 대표 권해효에게도 직언을 넘어 구구절절 옳은 ‘뼈 때리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사뭇 대책 없어 보이는 모습에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녀의 신념을 따르게 되는 걸 보면 묘한 쾌감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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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희로서도 반가운 캐릭터였을 것이다. 2002년 슈퍼모델선발대회를 통해 데뷔한 그에게 176㎝라는 큰 키는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기 때문. 이듬해 드라마 ‘천년지애’를 통해 오랫동안 꿈꿔온 배우의 길에 입문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줬지만, “남자배우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번번이 캐스팅이 무산되는 등 뜻밖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결국 그가 맡을 수 있는 역은 ‘슬픈연가’(2005)의 강신희 같은 차도녀가 대부분이었다. 2013년을 기점으로 ‘너의 목소리를 들려’의 서도연 검사나 ‘비밀’에서 신세연처럼 입체적인 역할을 맡기 시작했지만 그 역시 누군가의 엄친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는, 그래서 결핍이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 것은 지난해 방영된 ‘뷰티 인사이드’부터다. 그는 사랑 따윈 돈으로 살 수 있다 믿고, 그룹 내 더 큰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의붓오빠와 경쟁하는 야심가인 항공사 원에어 대표 강사라로 분했다. 전형적인 재벌 캐릭터지만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바꿈으로써 기존 남녀관계가 뒤집히는 전복의 재미를 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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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검블유’의 차현이 ‘뷰티 인사이드’의 강사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다 가진 여성이 그동안 남성에게만 허락됐던 권력까지 갖춰 중성적 매력을 뽐내는 캐릭터란 얘기다. 하지만 “결국 타이밍이 이슈를 만드는 것”이라는 ‘검블유’ 대사처럼 지금이 이다희에게 딱 맞는 ‘타이밍’이 아닐까. 그가 시대가 원하는 여성상을 ‘미리’ 선택하고, 시대가 버리게 될 전형성을 ‘미리’ 버림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단 얘기다.


이다희가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태왕사신기’(2007)의 여장부 각단이나 ‘버디버디’의 골퍼 민해령 역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그는 몸을 잘 쓰는 배우다. SBS ‘정글의 법칙’이나 ‘런닝맨’에서 서로 탐내는 게스트이기도 하다. ‘족장’ 김병만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강인한 체력과 악바리 근성을 갖췄고, 이광수를 향해 “너 얌생이구나”라고 일침을 날릴 만큼의 예능감을 갖춘 여배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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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으로 ‘검블유’를 들고 나온 권도은 작가와 역시 ‘뷰티 인사이드’로 데뷔한 임메아리 작가가 이다희를 선택한 건 우연이었을까. 아니다. ‘파리의 연인’(2004)부터 ‘상속자들’(2016)까지 로맨틱 코미디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김은숙 작가가 ‘도깨비’(2017) ‘미스터 션샤인’(2018) 등을 통해 변화를 꾀한 것처럼 김은숙 사단에서 배운 두 사람이야말로 가장 다른 형태의 로맨스물을 갈구했을 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대중은 신데렐라가 아닌 캡틴 마블에 더욱 열광하므로.


이다희는 이 기세를 몰아 다음 달 선보일 Mnet 음악 예능 ‘퀸텀’의 MC 자리까지 꿰찼다. K팝 대세 걸그룹 6팀이 한날한시에 신곡을 발표해 원톱이 되기 위한 정면 대결을 벌이는 콘셉트다. 내 배우를 향한 팬심을 담아 ‘검블유’ OST에 수록된 ‘Tv에서 보는 그대 모습은’까지 직접 부른 그라면,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며 제대로 걸크러시 행보를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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