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전기구이 통닭집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얼마 전까지 인천 개항로는 과거의 영광이 조금씩 녹슬어가는 곳이었다. 찾는 이 없어 잊혀 가던 곳이 지금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껏 멋을 부린 MZ세대부터 옛 추억을 더듬는 윗세대, 인천 토박이와 관광객 누구나 자연스레 어울려 이곳만의 레트로한 감성을 즐길 수 있다. 그 중심에는 개항로 통닭이 있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추억의 K팝이 흘러나오고, 벽면에는 빛바랜 소풍 사진이 가득 걸려있다. 노릇노릇 구워진 전기통닭이 고소한 향을 풍기며 테이블에 나오면 더없이 완벽해진다. 근대와 현대 사이 새로운 시공간으로 떠나보자.
인천로 떠나는 시간여행의 종착지, 개항로 통닭. 세대 구분 없이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전기구이 통닭을 주메뉴한 레트로 음식점이다. [사진 이승민] |
Q : 어떤 곳인지 궁금해요.
인천 토박이나 인천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배다리 사거리를 잘 아실 거예요. 그곳에 있는 통닭 주점이에요. 이름에서 어느 정도 눈치챘겠지만 주메뉴는 전기구이 통닭이고, 맥주 한 잔에 곁들일 수 있는 다양한 안줏거리가 있는 ‘호프집’이에요. 쇠퇴해가는 인천 개항 지역의 근대 건물을 리모델링해 재미있는 콘셉트의 매장들이 들어섰는데, 이런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여 ‘개항로 프로젝트’를 만들었어요. 개항로 통닭은 그중 하나고요. 저는 통닭과 함께 인천에서만 먹을 수 있는 개항로 맥주를 마시기 위해 친구와 함께 찾았습니다. 올봄에 처음으로 찾았는데, 3개월 사이에 3번은 더 방문한 것 같아요. 집에서 조금 더 가까웠다면 아마 더 자주 갔을 거예요.
Q : 방문했을 때 첫인상은 어땠나요.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어릴 적 추억에 전기통닭 구이가 자주 등장해요. 주연처럼, 조연처럼요. 특별한 날이건, 평범한 날이건 자주 사 먹었거든요. 마요네즈와 케첩을 섞은 ‘오로라 소스’를 듬뿍 뿌린 양배추 샐러드와 새콤달콤한 치킨 무,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는 바삭하고 부드러운 통닭을 마주했는데 낯설지가 않더라고요. 분명 생긴 지 얼마 안 된 가게지만 노포 같은 느낌도 들고요. 제공되는 메뉴와 공간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웠어요. 치킨 말고도 라볶이와 골뱅이를 같이 주문해 먹었어요. 아는 맛이 무섭다고, 지금 그 맛이 어떨지 상상이 가실 텐데 너무 맛있었어요. 가격도 적절했어요. 여기서는 인천에서만 파는 로컬 맥주인 개항로 맥주를 팔아요. 양조하신 분이 ‘테라 보다 조금 더 맛있게’를 기준으로 만들었는데 정말 술술 넘어가요. 꼭 같이 맛보세요.
Q : 이곳에 관심 갖은 이유가 있나요.
저는 여러 도시에서 도시재생 관련 워크숍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지역에 필요한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요. 그런데 개항로 통닭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자주 회자가 돼요. 공간 활용, 판매하는 상품, 공간 내에서 세대 간에 함께 즐길 수 있는 요소 하나하나가 눈에 띄거든요. 도시재생이나 공간 재생 측면에서도 눈여겨볼 점이 많지만 굳이 그런 어려운 접근이 아니더라도 직접 가보면 가게 자체로 충분히 즐거워요.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통닭도 맛있고요.
겉은 바삭, 속은 촉촉. 요즘 말 그대로 '겉바속촉'한 옛날 스타일 통닥에 치즈, 로제소스 등을 곁들여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사진 개항로 프로젝트 SNS] |
가게 창문부터 레트로한 감성이 풍긴다. 윗세대에는 추억의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지금 세대에게는 색다른 감성을 선사하는 장소다. [사진 이승민] |
도심의 사차선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좁은 골목을 돌아 들어가야 입구가 있다. 도심 속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재미도 있다. [사진 이승민] |
Q : 좀 더 소개해주세요.
개항로 통닭은 주점인 만큼 음식 맛이 가장 중요하겠죠. 주메뉴는 오리지널 통닭이고 골뱅이, 떡볶이, 황도, 마른안주와 같은 메뉴가 있어요. 맥주와 궁합이 잘 맞는 안주류들이죠. 음식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입구 설계, 마당 BGM, 가구와 소품 구성이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 있어요. 건물은 대로변에 위치해 있지만 입구는 건물 정면이 아닌 뒤편에 있어요. 개항로 통닭 간판이 걸린 건물 오른편으로 1m 남짓 되는 좁은 골목길이 있어요. 이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주변 건물들이 감싸고 있는 널찍한 마당으로 들어서게 돼요. 분명 조금 전까지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4차선 도로를 따라왔는데 골목 하나를 걷는 사이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버려요. 근대와 현대가 뒤섞인 다른 곳을 방문한 느낌이에요.
통닭집 입구로 연결되는 골목길. 낡고 좁은 골목과 투박한 글씨로 쓰여진 개항로통닭 간판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꼭 들러 사진을 찍는 포토스폿이다. [사진 이승민] |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개항로 통닭의 야외 공간. [사진 개항로 프로젝트 SNS] |
전기구이 통닭 한 마리에 인천의 지역 맥주인 개항로 맥주를 곁들이면 부러울 게 없다. [사진 개항로 프로젝트 SNS] |
Q : 앞서 말한 개항로 프로젝트란 무엇인가요.
인천역 인근은 대한민국 개항의 역사가 깃든 곳이에요. 주변에는 차이나타운과 신포시장이 있어요. 이곳이 쇠퇴하면서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건물이 많았어요. 마치 유령도시처럼 존재했었는데, 시대에 맞는 콘텐트와 디자인으로 이곳을 새롭게 기획해서 운영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각자의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 중 마음 맞는 플레이어들이 크루처럼 모여 ‘개항로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함께 마케팅하고 있어요. 노포와 상생하는 캠페인 ‘개항로 이웃사람’이나 개항로에 창업하고자 하는 청년을 육성하는 ‘개항백화’ 등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크루들의 연합에서 지역 전체로 관계를 넓혀가려고 모색 중입니다.
Q : 도시 재생 전문가로서 이곳의 공간 기획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공간 기획을 지역 재생 콘텐트 측면에서 보자면 두 가지가 가장 눈에 띕니다. ‘보편성’과 ‘다양한 구성원을 결합하는 힘’이요. 20대 친구와 방문해도, 60대 부부가 찾아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요. 일단 메뉴가 모든 세대에서 사랑받는 전기구이 통닭이에요. 매장 곳곳에 초등학교 졸업사진, 인천 내 주요관광지에서 찍은 소풍 사진이 곳곳에 놓여 있어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세대를 불문하고 추억을 나눌 수 있을 법한 소재죠.
음악 역시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밀 병기라고 생각해요.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귀에 익은 추억의 K팝이 흘러나왔어요.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게 되더라고요.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테이블도 마찬가지였어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거나 춤을 추는 사람을 볼 수 있어요. 분명 최신 유행의, 세련된 감각적인 음악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도 친구와도 방문할 수 있는 곳이에요.
개항로 통닭 내부. 마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같은 느낌이 든다. 중앙에 놓인 수족관, 테이블과 의자 특히 벽에 걸린 옛 사진이 시선을 잡아끈다. [사진 이승민] |
고개를 들면 독특한 천장 조형물이 눈에 띈다. 술상자를 겹겹이 쌓고, 색색 조화를 곁들여 이색 샹들리에를 완성했다. [사진 이승민] |
Q : 다른 도시재생 공간과 차별점이 있을까요.
지방 소도시에 가면 근대 건축물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 건물을 활용한 여러 사례가 있는데 건물 외관이 가진 레트로함을 완전히 지워 현대 건물처럼 포장한 경우도 많고, 반대로 너무 근대에 치우쳐 말끔한 박물관식 목조 건물로 변한 경우도 많아요. 개항로 통닭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나름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냈어요. 개항로 통닭 건물은 원래 2층에 집이 있는 근대식 상가 건물이에요. 겉에서 볼 때는 특별하지 않아요. 골목을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마당과 매장 안에 들어갔을 때 과감하게 2층을 터서 천장을 높게 연출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장님께 설명을 들으니 가게 안에 놓인 어항이나 졸업사진, 유원지 사진도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어요. 동네 어르신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MZ세대에게는 레트로한 재미를 주는 장치였어요. 덕분에 세대 간에 편안하고 즐겁게 소통할 수 있다고요. 이런 부분이 단순한 공간 재생 F&B와 차별화된다고 생각합니다.
Q : 레트로 감성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요.
요즘 사람들이 ‘레트로’와 ‘노포’에 열광하는 이유는 시간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재생한 공간이라고 해서 그 인기가 지속하긴 어려워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유지되는 가게들은 단순히 오래되어서가 아니에요. 일정 수준의 서비스가 제공되고 고객은 공간에 매력을 느껴 꾸준히 재방문했기 때문이죠.
관광지에서 새로 생긴 핫플레이스보다 현지인들이 꼽은 숨은 맛집을 찾은 적 있으시죠? 도시 재생 맥락에서 공간을 재생할 때도 지역 주민들이 꾸준히 찾을 수 있는 보편적인 콘텐트를 추구해요. 그런 점에서 개항로 통닭은 좋은 사례예요. 지역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 곳이거든요. 개항로 통닭이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면 친구와 주말마다 올 거예요. 우리 동네판 개항로 통닭을 찾아 소문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또 가고 싶은 일상의 공간’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이곳이 가진 레트로 감성에 드라마 '좋좋소'와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촬영지로도 쓰였다. [사진 왓챠 좋좋소,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영상 캡처] |
Q : 방문 만족도를 몇 점인가요.
전혀 부담 없는 가격에 군더더기 없는 서비스 그리고 함께 한 사람들이 즐거워서였는지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만점이었어요. 그래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방문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누구와 와도 동행했던 사람들 모두 만족했답니다.
Q :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인천 시민이라면 한 번쯤 꼭 가보면 좋겠습니다. 이런 가게가 지역 안에서 사랑받아야지, 또 이런 곳들이 더 많아져서 매력적인 동네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또 관광객들도 꼭 와보세요. 인천 여행코스로 차이나타운이나 인천 개항장 역사문화를 많이 방문해요. 여기에 더해 개항로 프로젝트 지역을 넣으면 색다른 매력을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인천역에서 동인천에 이르는 원도심 일대에는 인천 개항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있어요. 차이나타운에서 일본인 거류지를 지나 신포 시장을 거쳐 개항로까지 지어져요. 직접 방문해보면 근대 건축 박물관 안에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2021년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실감할 수 있을 거예요. 또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는 원도심의 노포들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 되어 살아나고 있는지 보면 이곳에 방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대 역사 여행지를 돌아본 후 개항로 통닭에 와서 흥겨운 K팝을 들으면 시간 여행의 마무리로 완벽할 거예요.
■ 민지리뷰는...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소비로 표현되는 시대. 소비 주체로 부상한 MZ세대 기획자·마케터·작가 등이 '민지크루'가 되어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공간·서비스 등을 리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