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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논문이 왜 거기서 나와? 주식방 화제의 논문 김수현씨

"작게 여러 번 따서, 한 방에 날린다!"


'존버'의 길에 들어서다


'문송' 아버지의 유일한 선택지



개미 투자자들의 애환이 담긴 자전적 수필 같지만, 지난해 서울대학교에서 통과된 인류학 석사 논문『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 내용이다. 개인 투자자라면 공감할만한 재치있는 표현들 덕에 이 논문은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됐다. 주로 논문 표지와 목차 부분을 캡쳐한 것이 사진 형태로 공유되는데, 190여 페이지짜리 논문을 모두 읽고 블로그 등에 꼼꼼히 리뷰하는 이들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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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들이 다 그렇듯 석사 논문은 지도교수·심사위원 빼고는 안 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처음 쓴 논문이기도 하고,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인데 큰 관심을 받게 돼 너무 부끄럽고, 또 너무 감사하죠.” 화제의 논문을 쓴 김수현(26)씨를 2일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제출·인준된 자신의 논문이 최근 일반인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5월 쯤 지인으로부터 ‘내가 있는 재테크 관련 카카오톡 대화방에 네 논문 표지가 공유되더라’면서 연락이 왔어요. 지난달부터는 제 논문을 볼 수 있는 링크가 트위터에 공유되고 있더라고요. 얼떨떨하고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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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방 석달 출퇴근하며 관찰·면담


논문은 김씨가 2018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석 달 동안 ‘매매방’에 출퇴근하며 그곳의 전업 개인투자자들을 관찰하고 면담한 내용들을 토대로 한다. 매매방은 독립적인 투자자들이 매달 돈을 내고 쓰는 일종의 공유사무실이다. 김씨도 자릿세(20만원)를 내고 그곳에 들어갔다. 연구 대상자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김씨도 증권 관련 강의·리딩 방송 등을 듣고 국내주식·해외선물 등에 직접 투자를 해보기도 했다. 김씨는 “인류학은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인간 커뮤니티 안으로 들어가 심도있는 대화와 꾸준한 관찰 등을 통해 그 사람들의 문화나 관습 등을 생생하게 묘사해내는 질적 연구”라고 말했다.


김씨는 ‘주식은 자본주의의 꽃’이라 여기는 집안에서 자랐다. 김씨의 오빠는 펀드매니저다. 전업은 아니지만 오래 개인투자를 했던 김씨의 아버지는 늘 경제적 독립을 위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런 김씨는 대학원 수업 중 ‘개인투자자가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해 교수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내가 가진 개인투자자로서의 자신감은 구조적으로도 가능한가, 손실경험에도 불구하고 벌 수 있다는 믿음과 경제적 성공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대해 참여관찰을 통해 직접 연구하고 판단해보고 싶다는 포부가 생겼다”고 말했다. “증권가를 다룬 이론은 많지만, 개인투자자들에 대한 이론은 거의 없었다”는 점도 주제를 선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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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남성을 위한 ‘경제판 포르노’”


아침 9시 장이 열리기 전에 출근해 온종일 모니터를 들여다 보다 오후 3시 30분 장이 마감되면 퇴근하는 곳.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은퇴한 중장년 남성들의 ‘평등한’ 꿈이 펼쳐지는 곳. 김씨가 관찰한 매매방은 그런 곳이었다. 김씨는 논문에 “개인 전업투자는 사업과 직장생활의 단점이 모두 소거된 그야말로 한국 중장년 남성들의 위한 ‘경제판 포르노’인 셈이다”고 적었다. 김씨는 “연구를 진행해보니 사전조사 때 생각했던 것보다 개인투자자의 민낯이 어두웠다”고 말했다.


특히 연구기간 중 ‘검은 목요일(2019년 1월 2일 2년여만에 코스피 2000선 붕괴)’이 온 것은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김씨는 “그 날을 기점으로 매매방 분위기가 정말 안좋아졌고, 면담하기로 약속했던 분들도 지치고 시무룩한 얼굴로 거절했다”면서 “입실자들이 평소 자기 마음 다스리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손실 경험은 어쩔 수 없이 굉장히 큰 심리적 상처를 줄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고 했다.


아버지뻘인 40~50대 입실자들과 라포를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무조건 붙임성 있게 하자’는 생각으로 문 앞에 자리를 얹어 보일 때마다 웃으며 눈도장을 찍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투자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은 20대인 김씨와 어떻게 다를까. 김씨는 한 입실자에게 자신이 연구자임을 밝히자 “다행이다”고 하던 반응을 떠올렸다. 김씨는 “본인이 전업으로 하고 있는 일임에도, 젊은 사람이 하는 건 반대라는 거다. 그들은 ‘땀 흘려 일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투자는 돈 놓고 돈 먹는 부정적인 거란 시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반면 2030에게 투자란 월급을 버는 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고, 투자로 낸 수익도 공부와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개인적 관심사는 장기투자·주택청약


김씨는 인류학 석사 졸업 후 지금은 간호학과 학부로 편입해 계절학기를 들으며 여름을 보내고 있다. 김씨는 “간호라는 일은 세계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고, 더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될 것 같아 선택하게 됐다”면서 “간호학이란 전문성을 인류학적 배경과 결합해 의료인류학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투자 상황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논문을 쓴 이후로 아기가 태어났고, 남편과 지갑이 합쳐지다 보니 주로 장기 투자, 주택 청약 쪽을 보고 있다. 저희 가족은 아직 재테크보다는 월급 흐름을 키우는 게 우선일 것 같다.”


■ 화제의 논문, 어떤 내용인가


김수현씨의 석사 논문 『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의 부제는 ‘서울 매매방 개인 전업투자자의 꿈과 금융시장 간파’다. 주로 전업투자자들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하지만, ‘개인투자가 실패하는 3단계’ 등은 전업이 아닌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적용해 볼 만 하다. 이에 대해 논문 일부를 인용·변형해 소개한다.



1단계: 초심자의 행운으로 입실


고스톱, 경마, 로또 그리고 주식·파생상품의 공통점은? 처음엔 누구나 자본금을 조금만 투입해 ‘밑밥’을 던져본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결과는 대개 성공인 경우가 많다.


2단계: 판돈 올리기


‘돈을 벌기 쉽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을 얻은 개인투자자는 이제 ‘판돈’을 올린다. 여기서부터는“다 잘 될거야”하는 ‘과신의 편향’, 여러 정보 중 믿고싶은 것만 취사선택해 믿는 ‘확증의 편향’의 늪에 빠진다.


3단계: 존버(‘매우 버틴다’는 뜻)의 길


이제는 손실이 벌어져도 멈출 수 없다. ‘몰입상승의 편향’ 때문이다. 처음 샀을 때보다 더 낮은 금액으로 추가 매수하는 ‘물타기’에 나선다. 손절매 한도가 있는 기관 투자자와 달리 개인은 그런 게 없다. 손실 처분은 마음이 아프다(‘처분효과’). “손절은 본인이 못하니까 자식에게 시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왜 개인 투자자는 필패하나


일정한 가격 범위에서 매매 주문을 하는 기관·외국인과 달리 개인은 한 호가라도 싼 가격에 매수를, 한 호가라도 비싸게 매도 주문을 넣는다. 이는 기관·외국인이 가격을 견인하는 구조를 만든다. 전업 개인투자자의 경우 단기매매로 수익을 극대화하려 하는데, 이는 손실 위험을 더 키운다. 손실이 커지면 적은 돈으로 큰 돈을 벌어야 하니 고위험 상품에 손을 댄다. 그렇게 실패의 길에 더 가까워진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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