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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중앙일보

이병헌·연상호…1000만 영화 감독들 드라마로 가는 이유는?

'타인은 지옥이다' '멜로가 체질'...

요즘 TV 드라마는 영화감독 전성시대

'부산행' 연상호 감독도 극본가 데뷔

넷플릭스 시리즈도 영화감독 러브콜

시청률 낮아도 개성 강해 골수팬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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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처음 방송한 OCN 주말 시리즈 ‘타인은 지옥이다’. 지난해 저예산 스릴러 영화 ‘사라진 밤’으로 흥행을 거둔 이창희 감독이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연출한 드라마다. 갓 상경한 작가 지망생(임시완)이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득실대는 싸구려 고시원에 살게 되는 이야기다. 드라마 ‘구해줘’의 정이도 작가가 극본을 쓰고, 나머지 제작진은 대부분 영화 스태프로 꾸렸다.


현실적인 공포감을 자아내는 고시원 세트, 매회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로 시선을 끌며 첫 주 방송 만에 드라마 TV 화제성 순위에서 ‘호텔 델루나’ ‘열여덟의 순간’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지난 3일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에서다.


올해 초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은 지난달 JTBC 16부작 ‘멜로가 체질’로 드라마 극본‧연출에 도전했다. 시청률은 1.8%(8일 닐슨코리아 제공)대로 저조하지만 서른 살 동갑내기 여성들의 일과 삶을 코믹한 대사에 실으며 마니아 시청자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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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은 최근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각본‧연출을 맡았다. 100억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나선 사람들을 그린다. 앞서 영화 ‘터널’의 김성훈 감독은 넷플릭스 좀비 사극 ‘킹덤’으로 세계적 반향을 얻었고, 박찬욱 감독은 영국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했다.



영화감독들, 왜 드라마 찍을까


영화감독의 드라마 연출이 잇따르고 있다. 드라마 제작 편수가 한해 150여 편으로 급증했고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하기 위해 영화 같은 완성도와 강한 개성을 표방한 드라마 제작이 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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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넷플릭스처럼 영화‧드라마의 구분이 없는 배급경로까지 생기면서 기존 드라마와 다른 개성의 작품들이 요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는 ‘이래야 한다’는 틀을 벗어나려면 만드는 사람이 새로워져야 했다”고 말했다. 최근 예능‧다큐 작가와 영화감독의 드라마 진출이 같은 맥락에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흐름의 선두엔 장르물 전문 케이블 채널 OCN이 올해 출범한 ‘드라마틱 시네마’ 프로젝트가 있다. 지난 2월 박신우 감독이 연출한 ‘트랩’을 필두로 후속작 ‘타인은 지옥이다’까지 충무로 인력을 대거 기용했다. 이 드라마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 OCN 스튜디오 한지형 팀장은 “기존 16부작 드라마의 문법을 파괴한 이야기와 제작방식을 찾다 보니 ‘안시성’의 남동근 촬영감독, ‘인랑’의 박재현 미술감독 등 연출 외에도 영화계 스태프가 많이 합류했다”면서 “기존 드라마에 비해 낯설지만 새롭다는 반응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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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의 경우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감독판 상영에 더해,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에 리메이크 제안도 받았다. 한국 드라마가 로맨스물이 아닌 장르물로 해외에 진출한 사례는 드물다. OCN 한 팀장은 “이런 성과에 힘입어 ‘드라마틱 시네마’ 시리즈로 내년에 4편 이상, 내후년 6편까지 기획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TV 매체는 극이 너무 늘어지거나 어두우면 시청자가 기다려주지 않기에 이야기를 푸는 방식과 리듬을 고민하며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성 잘 모르면 시행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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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 방식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드라마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두 현장의 촬영 장비 및 기법의 격차가 줄어든 것도 인력 교류가 원활해진 배경이다. 지난해 ‘킹덤’ 출시 당시 만난 김성훈 감독은 “2시간에 담지 못한 서사가 분명 있다”면서 “드라마 산업이 성장하면서 창작자 입장에선 놀이터이자 일터가 새롭게 늘었다”고 했다.


“이제 어떤 플랫폼인지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졌다.” 지난 6일 ‘멜로가 체질’ 기자간담회에서 이병헌 감독의 말이다. 7~8년 전부터 드라마 연출을 준비해왔다는 그는 배우 도경수와 6부작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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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체질'은 한집에 사는 드라마 작가(천우희), 애인을 잃은 다큐멘터리 감독(전여빈), 워킹맘 마케터(한지은)의 고충을 사려 깊게 그렸지만, 대사의 밀도가 높아 오히려 진입장벽이 높다는 지적도 받는다. “올 한해 1600만(‘극한직업’ 관객 수)부터 1(‘멜로가 체질’ 시청률)까지 다 경험했다”는 그는 “극본‧연출을 겸하는 모험이 쉽지 않았다. 제가 하고 싶은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지, 매일매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1000만 영화감독도 드라마 작가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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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채널들이 주도권을 쥐게 된 것도 영화감독의 드라마 진출을 부추겼다. 공채 PD를 육성하는 지상파 방송국과 달리 케이블은 외부 베테랑을 전략적으로 기용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선 CJ그룹 산하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이 적극적이다. 이 제작사는 지난해 tvN 단막극 ‘드라마 스테이지’ 수록작 10편 중 5편에 ‘로봇, 소리’의 이호재, ‘마돈나’의 신수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안국진 등 영화감독을 실험적으로 기용했다. 이 중 외딴 섬의 범죄사건을 그린 박정범 감독의 ‘파고’는 방송용을 재편집한 감독판이 올해 스위스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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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방영될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 극본 데뷔작 ‘방법’(tvN)도 스튜디오드래곤이 먼저 제안해 성사됐다. 국내 최대 IT기업의 비밀을 파헤치는 기자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소녀가 만난 미스터리 스릴러로, 영화 ‘챔피언’의 김용완 감독과 한동환 PD가 각각 연출과 제작 프로듀서를, ‘곡성(哭聲)’의 임민섭 프로듀서가 제작총괄을 맡았다. 본지와 통화에서 연 감독은 “드라마 제안을 받고 오래전 구상하던 아이템을 기획‧개발했다”면서 “대본은 다 나왔다”고 귀띔했다. 얼마 전 자신이 각본‧연출한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토대로 드라마 ‘구해줘2’(OCN)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신기했다”는 그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도 드라마 산업이 급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할 수 있다”고 했다. 연 감독은 현재 ‘부산행’을 잇는 강동원‧이정현 주연의 좀비 영화 ‘반도’를 촬영 중이다.



TV 드라마, 결말만 극장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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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에서 개최된 ‘2019 아시아 TV 드라마 컨퍼런스’에 참가한 넷플릭스는 현재 예능을 포함해 10편의 한국발 오리지널 작품이 자사 플랫폼을 통해 전세계 190개국에 공개될 예정이라 알렸다. 영화 ‘특별시민’의 박인제 감독이 메가폰을 이어받은 ‘킹덤’ 시즌2,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이 연출하는 초능력 미스터리 액션물 ‘보건교사 안은영’ 등이다. 이들 시리즈에 영화감독을 기용한 데 대해 넷플릭스 관계자는 “작품에 맞는 최선의 감독과 함께 한다”고 답변했다. 더는 영화‧드라마 경력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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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스멀티유즈에 대한 관심도 이런 경계를 더욱 허물어뜨릴 전망이다. 5년 전 방영된 OCN 동명 수사물 시리즈를 토대로 11일 개봉하는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가 한 예다. OCN 스튜디오 한지형 팀장은 “최근엔 기획 초기부터 영화판‧드라마판 제작을 염두에 두기도 한다”면서 “완결된 영화의 스핀오프를 TV 시리즈로 제작하거나, 드라마의 결말을 극장에서 영화로 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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