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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발상] 하이드, 스위니토드…잔혹 살인범은 왜 19세기 런던에 있나

[유성운의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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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막을 올린 뮤지컬 ‘스위니 토드’가 27일 막을 내리면 2019년 무대 위에 올랐던 ‘빅토리아 시대 런던 잔혹극’ 뮤지컬 3부작이 모두 마무리됩니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 잔혹극’이 무엇이냐고요? 한국에서 꾸준히 롱런 중인 라이선스 뮤지컬 세 편, ‘지킬 앤 하이드’ ‘잭 더 리퍼’ ‘스위니 토드'가 모두 ‘영국 빅토리아 시대(시대적 배경)’, ‘런던(공간적 배경)’, ‘살인(주요 사건)’을 다루고 있어 붙인 명칭입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고 불린 시기에 세계의 중심이었던 이곳이 유독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는 음침하고 잔혹한 범죄의 소굴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산업혁명의 빛과 그림자


빅토리아 시대는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 1837년부터 서거한 1901년까지 60년이 조금 넘는 시기를 가리킵니다.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은 경제적 번영을 일궈내는 데 성공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커다란 혼란에 직면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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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의 수도 런던은 산업화에 성공한 국제무역의 중심지로서 세계에서 가장 번영을 누리는 도시였습니다.


도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농촌에서 경제적 빈곤에 내몰린 사람들은 대거 도시로 이동했고, 여기에 감자 기근을 피해 이주한 아일랜드 이주민 등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1801년 약 110만명이던 런던 인구는 1850년대엔 250만명, 1900년 초엔 600만명까지 증가했는데, 당시 런던 인구의 75~80%가 노동자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저임금 노동자나 온갖 허드렛일을 맡으며 도시의 저소득층으로 편입됐습니다.


도시의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이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는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에 치안, 위생, 교육 등의 여건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대규모 전염병과 연쇄살인, 인신매매 등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에 따르면 런던의 하층민 중 밤을 어디에서 보내야할지 모르는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5000명 가량 됐으며, 1주일 단위로 내는 집세를 감당할 수 없어 하룻밤에 침대만 빌려주는 집단 숙박업소를 찾는 사람들도 다수였다고 합니다.


특히 의지할 데 없는 여성은 범죄의 주요 희생 타깃이 됐습니다. ‘잭 더 리퍼’나 ‘지킬 앤 하이드’에서 희생자가 모두 가난한 매춘여성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지요. 한 연구에 따르면 빅토리아 시대의 매춘은 가난한 여성들의 직업 순위 중 4위를 차지할 정도로 만연했다고도 할 정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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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 속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탐정 ‘셜록 홈즈’가 탄생하기도 했지요.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주인공을 내세운 첫 작품(『주홍색 연구』)을 발표한 것이 바로 빅토리아 시대 후반부인 1887년입니다. 연구가들에 따르면 셜록 홈즈는 1854년생, 홈즈와 왓슨의 첫 만남은 1881년이었다고 하니 이들의 활약상은 빅토리아 후반기가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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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대한 불만과 악화된 민심은 정치사회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번지며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죠.


독일인 마르크스가 친구인 엥겔스의 도움을 받아 영국에서 『자본론』을 집필한 것도 이런 분위기가 한 몫을 차지했죠. 그는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 무대는 영국의 대도시가 될 것이라고 본 것이죠. 물론 이들의 예상이 빗나간 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지만 그만큼 당시 런던의 민심이 흉흉했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 잔혹극’ 중에서 계급 갈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스위니 토드’를 볼까요.


선량한 이발사 벤자민 바커는 판사에게 억울하게 가족을 빼앗긴 뒤 이발사 스위니 토드로 변신해 돌아와 복수극에 나섭니다.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토드와 그 시체로 인육 파이를 만드는 러빗 부인은 사제, 변호사, 정치인, 판사 등의 맛을 논하면서 사제는 비계가 많다거나, 정치인은 기름기가 많다고 노래하며 박장대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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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역시 ‘세상엔 자신의 자리에 안주한 사람들과 그들의 얼굴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라며 상류계급에 대한 증오감을 드러냅니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도 하이드가 주교, 장군, 귀부인 등을 살해하면서 이들이 연관된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허위 공모, 물욕 등을 드러내 위선을 까발리기도 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노동자 계층의 실질임금은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이들의 실질임금과 생활수준이 하락했다는 연구들이 우위였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이 시기에 영국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2배 상승했고, 생활수준도 높아졌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여기서 언급된 뮤지컬은 모두 20세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미친 과학자'들의 꿈과 좌절


이처럼 세 작품에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 경제의 빛과 그림자가 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빅토리아 시대가 기괴하고 음산한 세 작품의 무대로 선택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바로 과학입니다.


빅토리아 시대는 전례 없는 과학의 발견과 기술의 혁신이 일어난 시기였습니다. 특히 1859년 영국인 찰스 다윈이 발표한 『종의 기원』은 종교, 과학, 인간, 철학 등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진화론과 각종 과학 혁명이 맞물리면서 이 시대는 과학이 사회의 주요 테마로 급부상했고, 이는 문학과 미술 같은 예술 영역에도 깊숙하게 파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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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시기에 과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우호적이진 않았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은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의 세계였습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 같은 고급 교육기관에서 연구하는 정식 과목이 아니었고 '오타쿠적' 영역으로 치부될 때도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자들은 열악한 경제적 상황 속에서 연구해야 했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의 초반부를 보면 지킬 박사가 병원 이사회에 자신의 새로운 실험을 열심히 설명하지만, 지원을 거절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훗날 하이드가 살해하는 주요 대상도 바로 이사회 멤버들인데, 그만큼 당시 과학자들의 입지는 허약했고 외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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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분위기는 또 어떻습니까. ‘지킬 앤 하이드’나 ‘잭 더 리퍼’의 실험실은 컴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외부와 단절된 공간입니다. 현대의 병원이나 바이오 분야의 연구실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죠.


이곳에서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은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신약을, '잭 더 리퍼'의 다니엘은 장기이식 실험을 벌입니다. 전통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고, 도전을 불러오는 실험들이죠.


빅토리아 시대가 만든 이같은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는 캐릭터에도 반영됩니다.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든지, 실험에 몰두하다가 폐쇄적으로 바뀐다든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면모가 그것이죠. 또한 이들의 실험이 결국 모두 실패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는 플롯 역시 과학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배어 있습니다.


비록 공간적 배경이 런던은 아니지만, 생명체를 창조하려는 과학자의 야망과 실패를 다룬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 역시 영국인입니다. 빅토리아 시대보다는 20년가량 앞선 1818년 발표됐으니, 이후 나올 각종 작품들의 선구자 같은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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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인들이 결합돼 영국 런던은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마치 배트맨의 '고담' 같은 잔혹 범죄와 응징의 도시가 됐습니다.


한국에서 이같은 뮤지컬이 인기를 끄는 것은 작은 뮤지컬 시장을 참작하면 다소 의외이기도 합니다. 2007년 '스위니 토드'가 처음 들어올 당시 한 뮤지컬 관계자는 "미국 같은 큰 시장에서는 동성애, 범죄, 스릴러 같은 소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이런 뮤지컬이 얼마나 가겠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스위니 토드'는 한국 시장에서 10년 넘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덧붙여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역시 '스위니 토드'가 막 들어왔을 때인데, 공연 개막 전 리허설을 취재하러 갔다가 기겁한 적이 있습니다. 이발사인 스위니 토드가 칼로 손님의 목을 그었는데, 목에서 피가 콸콸 솟아 나오는 것을 보고서였습니다. 작은 호스를 몸에 달아 만든 특수효과였는데, 조금만 멀리서 봐도 정말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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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장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정작 미국 브로드웨이에선 칼에 물감 같은 것을 묻혀 목에 빨간 줄만 그어지도록 한다더군요. 그래서 당시 연출가였던 캐나다 출신 에릭 셰퍼에게 "한국은 뮤지컬 시장이 작은데, 오히려 브로드웨이보다 더 잔인하게 피가 튀도록 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하더군요.


"어라, 한국인들 하드코어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캐나다에 소개된 한국 영화들을 봤더니 꽤나 수위가 높던데요?"


"한국 영화요? 어떤 영화를 봤는데요?"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살인의 추억'요. 그래서 나는 브로드웨이 수준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신경 써서 저런 효과를 만든 거예요. 저 정도면 한국 관객들이 만족할까요?"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이 기사는 추재욱 『실험실의 과학 혁명—빅토리아시대 소설에 나타난 ‘미친’ 과학자들의 실험실』, 최승연 『공포의 스펙터클- 빅토리아 시대를 향한 뮤지컬의 동경 〈지킬 앤 하이드〉, 〈스위니 토드〉, 〈잭 더리퍼〉를 중심으로 -』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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