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가 먹는 보양식, 우리에게 친근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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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용환의 동의보감 건강스쿨 (69)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음식과 약은 근본 뿌리가 같다는 뜻이다. 매일 두세번 이상의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생활을 하니 음식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음식만 잘 먹어도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고, 치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의학 덕분에 식약동원의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는 나라다. 음식을 약처럼 쓰는 지혜는 많은 곳에 있지만, 약초를 음식처럼 먹는 나라는 흔하지 않다. 특히 뿌리 약초를 이렇게 마음대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도라지, 더덕 같은 것들이 시골 시장 동네 할머니가 나와서 파는 나물처럼 느껴지지만, 어디 외국에서 이런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자메이카에서 얌(마)가 유명해진 것이 우사인 볼트 덕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가 ’나의 힘의 원천은 얌 덕분이다“라고 한 인터뷰 때문에 이제는 아예 국민 간식이 되었다. [중앙포토] |
서양에서는 한 때 감자도 악마의 식물이라고 하여 먹지를 못했다. 땅속에 커다란 덩이가 막 자라는 모습이 그네들 눈에는 기괴했나 보다. 한참을 지나 익숙해져 이제는 주식으로까지 자리매김했지만 식물의 뿌리는 여전히 접근하기 힘든 부분이다. 특히나 뿌리는 맛이 강해서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향을 좋아하고, 뿌리에 풍부한 각종 미네랄을 비롯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이 될만한 성분들을 맛으로 즐길 줄 아는 민족이다.
한의학 약초들을 이용한 한약은 이런 지혜가 녹아 있다. 음식으로 쓸만한 것들을 약으로 사용하는 정도이니 부작용 없이 치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도 한약의 큰 특징이다. 아주 소수의 약초가 약의 성질이 매우 강해서 치료할 때 몸에 약간의 무리를 줄 가능성도 일부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한약에 쓰이는 약초들은 1년 내내 먹어도 좋으면 좋지 무리가 안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뿌리 약초 중에서 음식처럼 흔하게 여기지만 약의 성질 또한 대단한 것이 있다. 산에서 나는 장어라는 별명이 있다. 말 그대로 산에서 나는 약이라는 뜻의 약초, 마를 소개하려 한다. 마의 한약재 명은 산약이다. 즉, 산에서 나는 약이라는 뜻이다. 여러 약초 중에서 그만큼 좋으니 그런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뿌리 약초를 마음대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도라지, 더덕 같은 것들을 외국에서는 보기 어렵다. [중앙포토] |
우리나라에서 마는 삼국시대부터 익숙한 약초다. 백제 무왕으로 알려진 왕의 어릴 적 이름이 마를 캐는 아이라는 뜻의 서동이다. 맞다. 신라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 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노래를 퍼뜨려 마침내 성공한 그 유명한 서동요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 당시부터 마는 우리의 인기 음식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마에 산에서 나는 장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그만큼 우리의 원기를 북돋아서 체력을 도와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마를 먹을 줄 아는 외국에서도 알려진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자메이카라는 나라에서도 역시 마를 즐긴다. 이 나라의 마는 얌이라 불리는데, 자메이카 얌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이 우사인 볼트 덕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가 “나의 힘의 원천은 얌 덕분이다”라고 한 인터뷰 때문에 이제는 아예 국민 간식이 되었다.
마는 노화를 방지하는 생리활성 물질이 굉장하고, 체력을 키워주며, 소화기 특히 장의 기능을 좋아지게 하는 성분들이 풍부하다. 이런 성분들이 들어 있는 핵심적인 부분이 끈적이는 곳이다. 마를 잘라보면 끈적끈적한 물질들이 나와 들러붙는다. 끈적이는 성분에 들어 있는 뮤신이 여러 역할을 해서 마의 효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뮤신은 당단백질로 소화기관에서는 소화기 점막을 보호하고 소화 연동운동을 하는 윤활제 역할을 하며, 위산과다와 위궤양을 치료하는 성분으로 작용한다. 또한, 이 성분은 정력을 높이는 자양강장제로 쓰인다.
우리가 먹는 여러 음식 중에서 끈적이는 것이 나오는 것들이 건강에 좋은 것들이 많은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역이나 다시마를 치대보면 끈적이는 점액들이 나오고 이는 수용성 식이섬유로 피를 맑게 해 준다. 메주를 띄우거나 청국장, 낫또를 휘휘 저으면 끈적한 실 같은 물질들이 막 나오고, 뿌리채소인 연근도 자르면 끈적이는 것이 나온다. 오크라 모로헤이야 같은 외국에서 익숙한 채소 중에서도 끈적이는 물질이 나오는 것들이 있다. 모두 장에도 좋고, 면역도 도와주는 음식들이다.
마 하면 떠오르는 원기회복과 체력을 담당하는 성분은 아르기닌과 디오스게닌이다. 아르기닌은 부신의 호르몬을 왕성하게 만들어 몸의 생리대사기능을 끌어 올린다. 아르기닌은 성장호르몬 분비를 도와 항노화 기능이 있고, 혈관 내 산화질소 NO의 양을 늘려서 혈관 확장 및 순환 기능을 하게 하는 성분이기도 하다. 디오스게닌은 성호르몬 관련 물질의 원료로 현대 의학에서 인공적인 성호르몬을 만드는 성분이기도 하다. 이 성분은 성호르몬 전구체가 되어서 DHEA가 되고, 여기서 에스트로겐이나 남성호르몬이 만들어진다. 이런 성분들 덕분에 힘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혈액순환도 되다 보니 남성의 기운을 올려주는 음식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생식능력인 성 기능 뿐만 아니라 두뇌에도 역시 “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정력에 좋다, 자궁에 좋다는 약초들이 두뇌의 기능도 좋아지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매, 알츠하이머 등 뇌 기능을 좋게 하는 연구가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세계적인 관심주제 중의 하나인데, 여러 약초 중에서 마가 관심을 받는 이유도 역시 이 때문이기도 하다.
마에서 나오는 성분들을 약리적으로 이용해서 치료제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의 하나가 관절염 치료제이다. 코르티손이라는 성분은 마에서 뽑아낸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원료로 해서 만들었다.
마는 노화를 방지하는 생리활성 물질이 굉장하고, 체력을 키워주며, 소화기 특히 장의 기능을 좋아지게 하는 성분들이 풍부하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마를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생으로 썰어 먹거나 갈아 먹는 경우가 흔하다. 일식집에서 강판에 갈아서 전채로 나오기도 하고, 마를 사다 깍둑썰기로 썰어서 반찬으로 먹어도 훌륭하다. 하지만 간혹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이 있다. 마 껍질을 깔 때도 가려운 정도라면 생으로 먹기가 곤란하다. 그런 경우에는 구워 먹거나, 찌거나 부쳐 먹으면 괜찮다.
각종 요리에 넣어서 식감을 살리거나 풍미를 좋게 하는 방법도 좋다. 계란찜이나 계란말이에 마를 넣으면 부드럽게 된다는 것은 잘 알려져서 쉐프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피자를 할 때 치즈 대용으로 마를 넣기도 한다.
끈적이는 성분을 최대한 이용하는 전통 요리 중에 하나로 마장국이 있다. 메주에 마즙을 넣어서 만든 것으로 콜레스테롤을 줄여주고 혈관을 맑게 해 주는 효능이 있다. 마장국을 먹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은 이런 이유 때문에 나온 말이다.
떡으로 해서 먹는 레시피 중에 유명한 것이 구선왕도고다. 세종 때 어의인 전순의가 편찬한 식료찬요에 나오는 요리비법으로 마, 백복령, 연자육, 맥아, 백편두, 감인, 시상, 사당, 율무 등의 재료를 넣고 떡으로 해서 먹는 것이다. 아마도 여러 질환으로 고생하던 세종에게 올리기 위해서 당뇨에 좋다는 마를 주된 재료로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식약동원의 최고 강국인 한국인의 지혜가 담긴 한의학 속의 식재료들로 건강과 맛을 함께 챙기는 식사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 식탁에 마 한 뿌리를 챙겨 보기를 권한다.
하랑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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