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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쪽방촌' 출근하는 박용만..."3년전 뇌졸중, 내 삶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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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엣팅

[프롤로그] “제가 도울 방법이 있을까요?” 박용만 전 회장이 성빈이 기사를 보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미국인 부부가 생모의 요청을 받고 신생아 때부터 키운 성빈이를 입양하려는데, 법에 가로막힌 사연입니다. 그 뒷이야기를 듣고는 “허 참, 답답하네”라는 혼잣말을 수차례 하는 그를 보며 인터뷰를 통해 성빈이를 도우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사실 몇 달 전 누군가 속엣팅 주자로 그를 추천했지만 그땐 “부담스럽다”며 고사했던 박 전 회장. 불시에 다시 들어온 인터뷰 요청에 “낚였다”고 웃으며 수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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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중구 같이걷는길 재단 사무실에서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포즈를 취했다. 그의 책상엔 선물로 받았다는 '자유인 박용만' 명패가 놓여 있다. 우상조 기자

“사회사업가? 자유인? 난 뭔가로 규정되는 게 싫어요.”

대기업(두산인프라코어, 두산그룹 등) 총수에서 대한민국의 대기업부터 소상공인까지 아우르는 공익법인 경제단체(대한상공회의소) 수장까지. 15년 가까이 ‘회장님’으로 살아온 박용만(67) 전 회장은 더 이상의 호칭을 거부했다. “67살에야 처음 자유를 누리고 있다”면서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에 그가 사재를 털어 만든 ‘같이걷는길’ 재단 사무실에서 박 전 회장을 만났다.


박 전 회장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 일찍 동대문구 쪽방촌 주방으로 출근한다. 대한상의 회장 퇴임을 앞둔 지난 2020년 11월 그가 건물을 사들여 세운 일터다. 이곳에서 직접 반찬을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배달한다. 금요일은 종로 노인급식소에서 급식 대신 나눠줄 대체식품을 포장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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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전 회장을 만든 원천은 '호기심'과 '신앙'이다. 부활절 프로젝트로 벽에 걸린 동대문 시장 손수레로 만든 십자가를 비롯해 수녀복으로 만든 '치유의 베개', DMZ 철조망 십자가를 제작했다. 우상조 기자

Q : 봉사는 어떻게 시작했나.


A : “나에게 중요한 원천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다. 봉사도 호기심에 시작했다. 2004년 친구가 다니는 보육원에 따라갔는데, 아이들이 달려와 손을 잡았을 때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잘사는 것만 생각하다가 남을 돕는 기쁨을 알게 됐다. 그러다 2015년 천주교 단중독사목위원회를 통해 서울역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도시락 봉사를 나가면서부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Q : 어떤 생각인가.


A : “사실 술이란 선택을 한 어른보다는 선택지가 없는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부분 IMF 때 밀려나 재기하지 못한 분들이었다. 선택지가 많은 내 입장에서 본 교만이더라.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불인데 사회안전망 투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꼴찌다. 국민소득이 높아져도 양극화가 심해지니 극한의 상황에 고통받는 사람은 항상 있다.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면 구성원끼리 도와야지.”


Q : 쪽방촌 주방을 만든 계기는.


A : “2019년 북유럽 순방 출국 날 비행기가 1시간 연착됐다. 2시 20분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뇌졸중이 왔다. 예정대로 2시에 이륙했다면 병원에도 못 가보고 죽었겠지. 당시 성지순례도 다녀오고 새벽 미사까지 다녔는데 병원에선 이상하게 신앙을 완전히 잊었다. 6일 만에 찾은 휴대전화로 처음 전화한 상대가 주방 건물 구입을 맡긴 친구였다. ‘이런 일 하라고 살려주셨구나’ 싶었다.”

평생 꿈꾼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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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전 회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선다. 사진가가 되고 싶어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을 정도로 사진에 대한 그의 애정은 깊다. 우상조 기자

박 전 회장은 늘 자유인을 꿈꿨다. 대학 졸업 후 부친인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권유로 은행을 다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 건축과 입학을 준비하던 중 형님의 호출로 두산건설 뉴욕지사에 입사했다. 사진가가 되고 싶어 35살 두산음료 영업상무 시절 진지하게 회사를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그는 다만 “열심히 살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으니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Q : 정치권에선 하마평이 끊이지 않는데.


A : “자유로운 영혼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도리상으로도 안 됐다. 고민해보고 2014년쯤 완전히 결론을 냈다. 생산성과 효율이 체질화된 기업인이 정치하면 위험하다. 내가 4만명 넘는 조직의 리더도 했고 경제단체장도 했지만, 사적인 이해가 상당 부분 작용했다. 정치는 생산 논리로 한쪽을 포기할 수 없다.”


Q : 대한상의 회장 시절 ‘규제 샌드박스’ 사업을 성과로 꼽았다.


A : “우리 세대는 1인당 국민소득 100불부터 3만불까지 다 겪었다. 자부심도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선진국 국민인 젊은 세대와는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지금의 법 규제는 어른들의 필요로 만든 거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규제 때문에 사업을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시대가 바뀌면 옛날 사고를 버려야 한다. 샌드박스는 기존 법은 바꾸기가 너무 어려우니 차라리 우회해서 길을 열어준 거였다.”

■ 5년 키운 아이 "보육시설 보내라"...'美천사가족' 울린 한국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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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라함슨 부부는 생모의 동의에도 신생아 때부터 키운 막내 성빈(5)이의 입양을 번번이 거절당하고 있다.

Q : 성빈이 문제도 그런 차원이라고 보나.


A : “우리 사회가 직면한 ‘법과 규범’이라는 가장 큰 문제를 성빈이가 대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게 문제다. 법은 최소한의 범위만 규정하고, 세부 문제는 규범 안에서 정성적 평가로 풀어야 하는데 법의 잣대로만 판단하려고 한다. 당사자인 아이와는 상관없는 어른들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맞나? 그게 아이를 위한 일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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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전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경제 상황에 대해 "올해와 내년까지는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며 부동산 급등 문제에 대해선 "분노를 걷어내고 냉철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Q :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A : “지난해 3월 상의 회장 퇴임 당시 이미 ‘올해 상당히 어려워질 테니 내년을 조심하라’고 이야기했다. 코로나19 기간 각국 정부가 경제를 지탱하려고 양적 팽창을 많이 했고 이젠 정상화하지 않겠나. 1~2년은 걸릴 거다. 올해와 내년까지는 상당히 주의해야 할 것 같다.”


Q : 부동산에 대한 박탈감도 크다.


A : “당연히 분노할 수 있다.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이나 코로나로 쌓인 유동성이 불에 기름 부은 격이었다. 하지만 분노를 걷어내고 냉철하게 봐야 한다. 공급은 어디에 얼마나 할지, 세금은 어딜 손댈지 결정해야 하는데 분노가 너무 커지면 결정할 수가 없다. 대중이 분노하면 정치인은 부담을 느낀다.”


Q : 한국이 미래 경쟁력을 갖추려면.


A : “제조업 위주의 우리 경제는 중국, 베트남 등 신흥국의 부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고 규제와 노동 문제까지 과거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할 상황이 됐다. 미래 산업을 위한 토양은 이미 갖췄다. 세계 최고의 모바일 네트워크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성이다. 특히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자란 우리 젊은 세대는 선진국과 간극이 없다. 전폭적으로 규제를 풀어 이들의 앞날을 열어줘야 한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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