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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도 문제 없다, 두 발로 누비는 스위스 알프스

그린델발트·체르마트 하이킹

초급자도 어려움 없는 걷기 여행

케이블카 타고 고지대에서 출발

절벽 따라 이어진 아이거 트레일

마테호른 바라보는 호수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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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이 높다 하면, 최대한 비껴갔다. 산을 오르는 데 재능이 없음을 늘 탓했다. 그런 등산 왕초보가 알프스 산맥의 심장부 스위스 하이킹 여행에 나섰다. 스위스에서는 해발 4000m급 고봉이 즐비한 산세에 주눅 들 필요가 없었다. 산악철도와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부에 살포시 안착해 타박타박 산 아래 마을로 내려오는 하이킹을 즐겼다. 알프스의 절경은 덤으로 따라왔다. 저질 체력에 머뭇거리는 초급자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스위스의 하이킹 코스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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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이탈리아도 알프스를 품고 있지만, ‘알프스의 나라’라고 하면 스위스다. 스위스 알프스라 하면 융프라우(Jungfrau·4158m)가 자동 연상된다. 융프라우가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4810m)을 제치고 알프스 대표 봉우리가 된 이유가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가 있어서다. 해발 3454m 고지대에 자리 잡은 기차역은 당당하게 ‘유럽의 정상(Top of the Europe)’이라고 자칭한다.

1912년 완공된 융프라우 산악열차는 세계인의 버킷 리스트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융프라우요흐로 향하는 길목인 그린델발트(Grindelwald)는 4000명 밖에 살지 않은 산악마을인데도 연중 여행객으로 북적거린다. 9월 초순 그린델발트에 도착하자마자 탄성을 뱉었다. 우람한 봉우리 아이거(Eiger·3970m)에 눈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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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취한 것도 잠시. 스위스에서 걷기로 한 길의 이름이 ‘아이거 트레일(Eiger trail)’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곤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저리 우락부락한 산을 올라야 한다니! 하이킹 가이드로 나선 산드린이 “열 살 먹은 우리 딸도 올라간다. 걱정 말라”고 했지만, 초등학생도 해내는 일을 포기하는 볼썽사나운 어른이 될까 싶어 근심이 외려 깊어졌다.

산드린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아이거 트레일은 아이거 정상에 오르는 산길이 아니라, 아이거의 북쪽 경사면을 곁에 두고 걷는 하이킹 코스였다. 코스 낙차가 700m 정도인데, 산악 철도를 타고 트레일 고점에 닿을 수 있단다. 저점까지 내려오기만 하면 됐다.


해발 1034m의 그린델발트역에서 기차를 타고 2327m에 자리한 아이거글레쳐(Eigergletscher)역에서 내렸다. 아이거글레쳐역이 하이킹 출발점이었다. 역사 옆 오솔길의 노란색 표지판이 걷는 방향을 알려줬다. 융프라우 설산을 등지고, 장엄한 산세를 마주 보며 걸었다. 걸을 맛이 나는 길이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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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오르막이 나타났다. 내리막 코스가 아니었냐고 산드린에게 따져 묻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오직 경사진 길을 오르는 데 집중했다. 기온 10도의 쌀쌀한 고산 지대에서 이마에 땀이 맺혔다. 20여 분 오르고서야 가까스로 허리를 폈다.

“하하하, 미안해. 미리 얘기하면 겁먹을 것 같았어.”


산드린이 “더는 오르막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는 오른편을 가리켰다. 해발 1600m의 아이거 북벽이 코앞에 있었다.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자랑하는 아이거 북벽은 등반이 까다로워 ‘악마의 북벽’이라 불린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을 걸으니 알프스의 절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아이거 트레일은 수목한계선 위를 걷기 때문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다. 덕분에 툭 터져 있는 광활한 풍경을 내내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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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만에 해발 1613m에 있는 알피글렌(Alpiglen) 기차역에 닿았다. 트레일의 종점이었다. 아이거 트레일 6㎞ 코스를 완주하는 데 2시간쯤 소요된다는데, 3시간 정도 걸렸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울리는 소를 만나곤 속도를 늦췄고, 이름 모를 알프스의 야생화 앞에서는 잠시 멈췄다. 짧은 오르막을 극복하니 수많은 보답이 주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알프스 하이킹 거점은 스위스 남부의 산악 마을 체르마트(Zermatt)였다. 알프스 기슭마다 아기자기한 산동네가 수두룩하지만, 체르마트는 특별 대우를 받는 동네다. 알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라는 마테호른(Matternhorn·4478m)을 벗하고 있어서다.

마테호른이 체르마트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절대적이냐 하면, 영국인 탐험가 에드워드 휨퍼가 1865년 마테호른 등정에 성공하면서부터 체르마트가 관광도시로 발돋움했다. 고작 5000여 명이 사는 마을에 호텔만 110개, 렌탈하우스는 1200개가 있다. 스위스의 평범한 산촌 마을이 1년에 여행객 숙박 200만 일을 유치하는 세계적인 여행지로 거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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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마트 사람은 자신의 수입원이 청정한 자연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가이드 발레리가 “무려 1961년부터 체르마트는 마을의 화석 연료를 퇴출했다”고 자랑했다. 짐을 싣는 차량이나 택시 모두 전기자동차다.

체르마트에는 400㎞에 달하는 하이킹 코스가 조성돼 있다고 했다. 이 중에서 발레리는 마테호른 주변 호숫가를 걷는 ‘5개 호수 길(Five Lakes Walk)’을 추천했다. 마침 한국과 연이 깊은 길이었다. 2010년 스위스관광청과 ㈔제주올레가 협약을 맺어 5개 호수 길와 제주올레 6코스를 ‘우정의 길’로 선포했다. 5개 호수 길에는 제주올레 이정표 ‘간세’가 서 있고, 올레 6코스에는 스위스관광청이 세운 이정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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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거 트레일을 걷고서 자신감도 붙었겠다, 당장 길을 나섰다. 5개 호수 길 역시 고점에서 저점으로 내려오는 방법을 택했다. 마을에서 푸니쿨라(강삭철도)를 타고 수네가(Sunnega·2288m) 전망대까지 오른 뒤, 곤돌라를 탔다. 멈춰선 곳은 로트호른(Rothorn·3103m) 전망대. 하이킹의 시작점이다. 드디어 마테호른을 영접하겠구나 기대했는데, 하늘에 먹구름이 두터워지더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체르마트는 연중 300일 맑은 날씨라 비를 맞는 게 더 특별한 일이야.”


하이킹에 동행한 스위스관광청 직원 사비나가 위로했지만, 주변 산세의 윤곽도 보이지 않으니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20분 평탄한 산책로를 걸어가 첫 번째 호수 슈텔리(Stellisee)호수에 닿았다. 날이 좋을 땐 마테호른이 호수 수면에 반영된 장면을 볼 수 있는 명소였지만, 시야가 좀처럼 확보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무거운 마음으로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천연 미스트를 얼굴에 뿌리며 해발 3000m를 걷는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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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를 걷게 되는 5개 호수 길은 말 그대로 각양각색의 호수를 지나는 하이킹 코스였다. 침엽수에 둘린 그린드예(Grindjesee)호수와 그륀(Grunsee)호수는 청록색 물빛을 자랑했고, 무지이예(Moosjiesee)호수는 빙하의 미네랄이 녹아 들어가 불투명한 옥빛이었다. 하이킹 종점 레이제(Leisee)호수는 사람과 강아지가 함께 수영을 즐기는 놀이터였다. 호숫가에 드러누워 3시간을 걷느라 지친 몸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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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호른은 여전히 구름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레이제호수에서 수네가 전망대까지 연결된 푸니쿨라를 타고 다시 슈텔리호수로 향했다. 호수 주변에는 마테호른의 온전한 모습을 기다리는 수많은 여행객이 진을 치고 있었다. 두어 시간 기다렸을까.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마테호른이 얼굴을 내밀었다. 날카로운 능선이 육상선수의 힘줄처럼 기세 좋게 뻗어 있었다. 알프스의 스타다운 자태였다. 호수 길을 걸으며 키웠던 긍정적인 마음을 두고두고 기억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린델발트·체르마트(스위스)=글·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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