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와 男, 둘에게 결혼반지…프레디 머큐리의 '인생 사랑'은
약혼까지 했던 평생의 ‘소울메이트’
“누구라도 메리를 대신할 수 없어”
런던 부촌의 대저택 유산으로 남겨
전속 미용사로 알려졌던 동성 연인
반지 낀 채 숨 거둘 때 까지 함께 해
정작 유산은 50만 파운드만 남겨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9일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열흘만이다. 전설의 록밴드 ‘퀸’을 다룬 최초의 상업영화라는 사실만으로 개봉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보헤미안 랩소디’는 관객의 호평과 입소문을 타고 흥행 대열에 들어섰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기본적으로 히드로 공항의 수하물 직원이었던 파로크 불사라가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되는 모습을 담아낸 전기영화다. 퀸의 명곡을 배경음악 삼아 성공-좌절-극복의 스토리를 풀어냈고, 똑 닮은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극장을 콘서트장처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가 사랑한 남과 여…영화에는 없는 진짜 삶
지난 5월 영화 예고 영상이 처음 공개됐을 때 SNS에서는 “머큐리가 양성애자였고,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영화가 숨기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머큐리의 약혼녀였던 메리 오스틴과의 관계가 영화를 지배하는 반면, 머큐리가 죽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동성 연인 짐 허튼과의 관계는 지나치게 짧게 다뤄졌다는 지적도 있다.
전형적인 ‘스트레이트 워싱(Straightwashing)’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스트레이트 워싱’은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묘사하거나 보이게 하고, 역사적인 인물의 정보를 바꿔서 그 내용이 이성애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머큐리는 직접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알려진 그의 개인사를 통해 그가 양성애자였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실제 머큐리는 영화에 등장한 오스틴과 허튼 외에도 독일의 여배우 바바라 발렌틴, 독일의 레스토랑 경영자였던 남성 빈프리드 키르히베르거 등과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어쨌든 이같은 영화의 ‘빈틈’이 궁금증을 남겼다. 그 질문 중 하나를 지난 1일 미국 매체 베니티 페어의 기사가 던졌다.
‘보헤미안 랩소디: 프레디 머큐리의 연인관계에 관한 진짜 이야기(Bohemian Rhapsody: The True Story Behind Freddie Mercury’s Relationships)’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베니티 페어는 “영화가 두 사람(메리 오스틴, 짐 허튼)과 머큐리와의 관계에 대한 디테일을 생략하고, 중요한 팩트를 윤색하고 수정하고 있다”며 실제 이야기를 전했다.
머큐리의 ‘유일한 친구’, 메리 오스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크리스마스에 큰 박스를 받았다. 박스 안에 또 박스가 있고, 또 박스, 박스… 마침내 작은 박스에 보석 반지가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는 속삭였다. ‘결혼하겠다’고.”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했다. 머큐리는 부모에게 오스틴을 소개했고, 자신의 마음을 담아 오스틴을 위한 곡을 작사·작곡했다. 불후의 명곡 ‘Love of My Life’다.
하지만 결혼식은 결국 취소됐다. 2013년 데일리메일 인터뷰에서 오스틴은 “머큐리가 양성애자임을 털어놓은 뒤 결혼식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이렇게 끝났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은 누구보다 가까운 서로의 ‘소울 메이트’로 평생 교류했다. 머큐리는 공공연히 오스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왜 자신이 메리를 대신할 수 없냐고 나의 연인들이 묻곤 하는데, 그건 그냥 불가능하다”는 식이었다. 1985년 어느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했다.
“나의 유일한 친구는 메리이며, 다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내게 그녀는 관습법상 아내이고, (우리 관계는) 결혼생활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그걸로 충분하다”
오스틴은 훗날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지만, 머큐리와의 관계는 그가 에이즈 진단을 받고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머큐리는 유언장을 통해 오스틴에게 자신이 거주하던 영국 런던 부촌인 켄싱턴에 있는 방 28개짜리 저택 ‘가든 로지’와 900만 파운드(약 132억원) 상당의 자산을 상속했다. 머큐리는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동성 연인 대신 오스틴에게 저택을 남기면서 “나의 아내가 됐을 것이었기 때문에 (이 집은) 너의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현재 2000만 파운드(약 294억원)의 가치를 가진 이 저택을 오스틴은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이곳은 지금까지 ‘퀸’ 팬들의 성지(聖地)로 여겨진다. 머큐리가 묻힌 곳이 그의 유언에 따라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머큐리의 마지막 연인, 짐 허튼
영화 속에선 허튼의 직업과 두 사람이 만난 시기 등이 실제와 다르게 묘사돼 있다.
두 사람은 1983년에서 1985년 사이, 런던의 게이클럽 ‘헤븐’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튼은 당시 사보이호텔 소속 미용사였다.
허튼이 2006년 영국 타임스오브런던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두 사람은 머큐리가 사망할 때까지 약 7년간 연인 관계를 이어갔지만, 첫눈에 서로에게 반하지는 않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처음 만났을 때 머큐리는 허튼에게 술을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그가 슈퍼스타라는 걸 알아채지도 못했던 허튼은 거절했다. 그렇게 끝났을 관계는 1년 반 뒤 또 다른 클럽에서 다시 마주치면서 이어졌다. 두 사람은 데이트를 시작했고, 1년 뒤 허튼은 머큐리의 저택 ‘가든 로지’로 이사했다.
외부에 사생활이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렸던 머큐리는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허튼은 외부에 연인이 아닌 전속 미용사로 소개되곤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이로 오랜 시간 함께했다.
허튼은 인터뷰에서 두 사람의 생활을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와 함께 소파에 누웠다. 그는 내 발을 마사지해주면서, 하루가 어땠는지 묻곤 했다”
머큐리의 연인 짐 허튼이 펴낸 『머큐리와 나』. 책 표지 속 작은 사진이 짐 허튼과 프레디 머큐리다. |
87년 머큐리가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뒤엔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병색이 완연해지면서 알리지 않고 싶어했던 에이즈 감염설이 퍼졌고, 마지막 1년은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튼은 투병 기간 내내 머큐리 옆에 있었다.
허튼은 머큐리가 숨지기 며칠 전 나눈 마지막 대화를 기억했다.
“새벽 6시 그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싶다고 했다. ‘계단을 내려갈 수 있을까’ 물은 그는 혼자 난간을 붙잡고 걸었다. 그가 넘어지지 않도록 내가 앞서 걸었다. 의자에 그를 앉히고 조명을 켜 각각의 그림을 비췄다. ‘오, 정말 멋져’ 그의 말이었다”
머큐리의 사망 후 ‘가든 로지’가 오스틴에게 상속되면서 허튼은 갈 곳을 잃게 됐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머큐리는 허튼이 머무는 조건으로 오스틴에게 저택을 상속했지만, 쫓아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튼은 자신 대신 오스틴에게 저택을 상속한 머큐리를 탓하지 않았다. “(머큐리가) 50만 파운드(약 7억 3000만원)를 남겨준 덕분에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서다. 허튼에 따르면 머큐리는 그가 선물한 결혼반지를 낀 채로 숨을 거뒀다.
두 사람과의 이야기를 담은 책 『머큐리와 나(Mercury and Me)』를 펴낸 허튼은 2010년 사망했다. 그 역시 90년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