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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올 여름엔 아이보리색 바지 입어야 멋쟁이

江南人流

이탈리아 남성복 박람회 '피티워모'에서 본

올여름 남성 패션 트렌드 키워드 3


매년 6월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자들이 이탈리아 피렌체로 모여든다. ‘패션 도시’ 밀라노가 아닌, 작은 관광도시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유는 이달로 96회를 맞은 세계 최대 남성복 박람회 ‘피티 워모’(Pitti Uomo)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바이어·기자·홍보인 등 남성복 관계자 10만명이 매년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지금 멋있게 옷을 입으려면 어떡할 지, 또 6개월 뒤엔 어떤 옷이 유행할 지 살펴볼 수 있다. 지난 6월 11~14일(현지 시각)에 열린 피티워모 현장에서 올여름 남성복 트렌드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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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첫날인 지난 6월 11일 오전 9시. 피티 워모가 열리는 ‘포르테자 다 바소’ 입구는 행사장에 들어가기 위한 사람들로 이미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피렌체를 지키는 성벽으로 쓰였던 곳으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고풍스러운 성벽 분위기와 멋을 한껏 부린 남자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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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 동안 피티 워모에선 남성복을 사고 파는 거대한 도매시장이 열린다. 매년 피티 워모를 찾는다는 프리랜서 패션 디렉터 박정희씨는 “밀라노·파리 등에서 열리는 패션위크가 디자이너들이 준비한 패션쇼를 선보이는 무대라면, 피티 워모는 여러 패션 브랜드와 바이어가 한자리에 모여 물건을 거래하는 ‘비즈니스 현장’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피티 워모 기간 동안 각 브랜드에선 자사 컨셉트를 알리고 옷을 팔기 위해 부스를 차리고 바이어를 맞는다. 바이어 입장에선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고, 궁금했던 브랜드의 옷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5600㎡ 규모의 거대한 행사장 안에 차려진 크고 작은 규모의 전시관만 35개. 각각의 부스를 마련한 브랜드는 1220개에 달한다. 한국에서 온 바이어도 200명 가까이 됐다. 2012년부터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라는 브랜드로 피티 워모에 참가 중인 편집숍 ‘샌프란시스코 마켓’의 한태민 대표는 “피티워모는 세계 남성 패션 시장의 포문을 여는 곳”이라고 말했다. 바이어들은 피티 워모를 시작으로 밀라노·파리·뉴욕 순으로 옮겨가며 다음 시즌을 위한 옷을 바잉한다. 때문에 피티 워모는 세계 남성복 비즈니스의 시작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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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패션쇼가 아예 안 열리는 건 아니다. 매 시즌 가장 기대되는 디자이너 1명을 ‘게스트 디자이너’로 선정해 쇼를 연다. 한국의 정욱준(준지·2016년), 고태용(비욘드 클로젯·2018년)도 초청된 바 있다. 올해는 영국 왕자비 매건 마클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했던 클레어 웨이크 켈러가 게스트 디자이너로 선정돼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지방시’의 패션쇼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피렌체가 고향인 럭셔리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이탈리아 브랜드 ‘MSGM‘이 대형 패션쇼를 열어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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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티 워모는 전통적으로 슈트 중심의 클래식한 남성 패션을 다뤄왔다. 슈트 메이커, 가죽 공방, 원단 공장 등의 패션 산업이 발달해온 피렌체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일맥상통하는 컨셉트다. 그래서 이곳을 페도라를 쓰고 말쑥하게 슈트를 빼입은 신사들만 모이는 곳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본 피티 워모의 본 모습은 달랐다. 컬러풀한 슈트를 한껏 빼입은 사람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이곳을 축제처럼 즐기러 온 ‘패션 피플’들일 뿐이다. 이곳에 ‘일’을 하러 온 업계 관계자들은 이들을 ‘공작새 빌런’(화려하게 치장한 악당이란 의미)이라고 저격하기도 했다. 옷을 팔거나 사러 온, 피티 워모의 본질과 상관없이 사진가에게 찍히기 위해 온 사람들이란 의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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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데는 이유가 있다. 남성복 메이커나 바이어만이 모이던 행사에 7~8년 전부터 스콧 슈먼, 토미 톤 같은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들이 찾아와 참가자들의 멋진 스타일을 촬영해 SNS에 공개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폴 앤 샤크'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해 방한했던 유명 패션 디렉터 닉 우스터 역시 그 중 하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신의 사진을 유명 잡지나 SNS에 올리기 위해 과도하게 치장하고 행사장을 찾아 하릴 없이 서성이는 사람이 많다. 패션 사진작가 휴고 리는 “이들 때문에 마치 ‘피티워모=화려한 클래식 슈트’가 공식처럼 여겨지는데,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티 워모의 주최사인 피티 이마지네의 라파엘로 나폴레오네 회장은 “피티 우모는 클래식 슈트를 포함해 지금의 세계 패션 트렌드인 스트리트·아웃도어 등 캐주얼까지 남성 패션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오히려 이곳에서 옷을 가장 잘 입은 사람은 브랜드 관계자들이었다. 움직이는 광고판처럼 자신의 브랜드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고 멋진 스타일을 보여줬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지금 유행하는 트렌드가 무엇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다음은 이번 피티 워모에서 찾아낸 남성복 유행 키워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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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내추럴룩, 그 중에서도 아이보리색 바지

이번 피티 워모에는 아이보리·카키·브라운을 중심으로 한 내추럴톤의 댄디 캐주얼 입은 사람이 유독 많았다. 내추럴 룩은 올여름 국내에서도 '얼스(Earth) 룩'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받고 있는 트렌드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라르디니, 가브리엘 파시니 등 클래식 슈트와 댄디 캐주얼을 함께 선보여온 브랜드들의 부스에선 특히 이런 분위기가 더 느껴졌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부스에서 만난 캐롤리나 쿠치넬리 브랜드 매니저는 “이번 시즌 컨셉트는 ’편안함’과 ‘스타일’”이라며 “자연에서 온 컬러를 활용해 편안하면서도 세련되게 남성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리넨·면 등 천연 소재를 사용해 헐렁하고 여유로운 실루엣을 갖춘, 보기에도 활동하기에도 편안한 옷들이 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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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이보리 등 밝은 색 바지는 피티 워모를 찾은 패션 관계자들이 꼽는 올해의 주요 아이템이다. 남성 편집숍 ‘맨 온 더 분’의 디렉터 겸 자신의 편집숍 ‘알란스’를 운영하고 있는 남훈 대표는 “면이나 코듀로이로 만든 밝은 색 바지가 올해 아주 큰 히트를 칠 것”이라며 “여름하면 떠올리는 흰색 바지보다는 연한 아이보리색을 선택하는 게 더 세련되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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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행지에서 입기 좋은 질 좋은 흰 티셔츠


여행과 스포츠는 이번 피티 워모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마르코 디 빈센조와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슈트와 함께 여행지에서 입을 수 있는 가벼운 점퍼와 바지, 티셔츠, 커다란 가방까지 여행패션을 대거 선보였고, 울마크 컴퍼니는 프라다 재단과 함께 요트 경기복을 특수 제작해 발표했다. 피티 워모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슈트 안에 드레스 셔츠 대신 티셔츠를 받쳐 입거나 리넨 재킷 아래 트레이닝복 스타일의 통 넓은 바지와 운동화를 신는 스타일이 인기였다. 라파엘로 나폴레오네 회장은 “여가·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피티 워모에서도 정통 슈트보다 편안한 캐주얼이 강세다. 멋쟁이들 사이에서도 슈트와 캐주얼의 경계가 모호하게 섞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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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고 독특한 디자인보다는 가장 평범하고 기본적인 옷을 선택하는 것도 이번 시즌 트렌드다. 한태민 샌프란시스코 마켓 대표는 “남성복이 점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클린룩’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 흰 티셔츠, 베이지·카키·검정 면 바지 등 단순한 기본 아이템을 선택하되 품질을 상급으로 올리는 게 이번 시즌의 특징”이라고 전했다. 여기엔 어려워진 경기의 영향도 있다. 바이어들이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한 대표는 “10년을 입어도 괜찮을 옷을 선호해서 ‘타임리스’란 말이 지금처럼 남성복에서 회자된 적이 없었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3>하이테크 원단을 사용한 가벼운 봄 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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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피티 워모에선 스트리트 스타일의 ‘터치’(TOUCH)관과 아웃도어 스타일의 ‘아이 고 아웃’(I GO OUT)관의 인기가 높았다. 기능성 원단을 사용한 점퍼들에 바이어들의 관심이 쏠렸고, 정통 슈트 브랜드들 역시 가볍고 부드러운 하이테크 원단을 사용해 재킷과 점퍼를 앞다퉈 만들어 냈다. 울리치코리아의 여상엽 이사는 “부드러운 나일론 소재의 가벼운 재킷류는 봄·여름 시즌 활용도가 높은 아이템”이라며 “최신 패션으로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피렌체)=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윤경희 기자, 피티 이마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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