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종' 빵집사장의 도발 "파리바게뜨 많아져야 한다"
[폴인인사이트] 시멘트 영업사원은 어떻게 성공한 빵집 사장이 되었나
지식 플랫폼 폴인(fol:in)의 스토리북의 다섯번째 이야기 ‘오월의 종 (1) 이 집 빵맛이 변하지 않는 이유’의 일부를 공개합니다. 소셜 살롱 비마이비(Be My B)가 폴인 웹사이트에서 연재하고 있는 는 살롱에서 오간 매력적인 브랜드의 뒷이야기를 담습니다.
오월의 종은 이태원의 유명한 동네 빵집입니다. 특이하게 오전 11시에 문을 여는데, 두세 시간이면 인기 빵들은 거의 다 팔립니다. 빵이 다 팔리면 가게 문을 닫죠. 가게 앞에선 빵을 사러 줄을 선 손님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오월의 종 정웅 대표는 서른 일곱에야 빵집을 처음 열었습니다. 시멘트 회사 영업사원에서 성공한 빵집 사장으로 변신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전 사실 빵집을 오래 한 사람이 아니에요. 전 제빵을 최소 30년 정도 해야 빵에 관한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기껏해야 절반 정도, 16년 밖에 안 됐어요. 그 전엔 회사를 다녔어요. 시멘트를 파는 영업직이었어요. 건축 쪽 일은 굉장히 험합니다. 영업도 날것 그대로의 영업이라고 할까요.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거짓말을 총동원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일을 했어요.(웃음)
일을 잘했어요. 술도 좋아했구요. 점심부터 그 다음날 새벽까지 쉬지 않고 술을 마신 적도 있어요. 실적도 좋았어요. 그런데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평범한 고민이었어요. 누구나 직장을 다니면 늘 뭔가 아쉽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 일이 아니고, 그런데 괜히 내가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도 오고. 내가 정말 할 수 없는 일도 억지로 해야 하고, 방법을 도출해야 하는 부분이 조금씩 힘들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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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이었어요. 큰 지하철 공사를 수주하러 입찰장에 갔을 때였어요. 경쟁사도 우리도 영업 관련 부서가 총출동을 했죠. 전 과장이었는데 부장님, 상무님, 전무님, 오너까지 오셨죠. 임원들을 보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내가 이 일을 계속하면 저렇게 직급이 올라가도 하는 일은 똑같겠구나.’ 그래서 입찰을 끝내고 밖에 나와 한참을 생각했어요. 나름 칭찬받는 게 재미있어 회사를 다니기는 하는데, 과연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기는 한 건지. 그런데 머릿 속에 제가 좋아하는 일이 잘 떠오르지가 않는 거에요.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다시 생각해봤어요. 구체적으로 직업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작더라도 내 손 안에서 시작되어서 끝을 마무리짓는 일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 마음이 간절했어요. 그러다 문득 회사 근처에 있던 빵집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빵집을 한번 해보자’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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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 고백을 할게요. 저는 빵을 안 좋아해요. (웃음) 저는 내 돈 주고는 그 전에 빵을 사먹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남이 사주면 먹어본 정도였어요. 빵을 살 돈이면 맥주를 한잔 더 먹겠다는 쪽이에요. 그런 제가 빵집을 한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저희 회사 사장님도 “미친 것 아니냐”고 했어요. “다른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게 아니냐. 핑계를 대려고 해도 이해가 되는 핑계를 대라”고 하셨죠. 주변 반응은 싸늘했지만 저는 기뻤어요. 뭔가를 하나 찾은 것 같았지요.
빵을 안 좋아하는데 어떻게 빵을 만드느냐는 질문들을 많이 하세요. 저는 빵이 놓여있는 매대는 관심이 없어도 빵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했어요. 사표가 수리되자마자 근처에 있는 제빵 학원을 갔어요. 거기서 빵 반죽을 시작했습니다. (중략)
제가 많이 받는 질문 중에 “어떤 빵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이 있는데, 저는 명확하게 대답합니다. 전 파리바게뜨의 찹쌀 도너츠와 소세지빵, 두 가지를 제일 좋아합니다. (웃음) 몇년 전이죠. 한참 대기업 빵집이 골목 빵집을 다 죽인다는 이슈가 있었어요. 이 주제로 기자들이 저에게 인터뷰 요청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제가 “대답을 하면 그대로 기사화할 수 있는지 약속해달라”고 했어요.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시길래 전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파리바게뜨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요.
전 파리바게뜨 빵이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동네 빵집 얘기를 해볼까요. 30년 동안 빵집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 옆에 막 결혼한 새댁이 뭘 해야할 지 몰라서 파리바게뜨를 차렸어요. 그랬더니 30년 된 빵집 매출이 반으로 꺾였어요. 이유가 뭘까요. 빵이 맛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게 제 대답입니다. 예전엔 동네 빵집은 어디나 잘 팔렸어요. 빵집이 많이 없었거든요. 돈이 잘 벌리니 굳이 맛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지낸 거에요. 30년 빵집이라고 하지만 주인이 실제로 빵 만든 건 10년 밖에 안돼요. 그 뒤론 사장도 자기 빵을 먹어보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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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명감을 갖고 빵을 만드는 분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일정한 품질의 빵을 만들어내는 대기업이 있으니 맛에 대한 기준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스타벅스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고급 커피 시장이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커피 맛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을 만든 거죠. 그래서 전 오히려 파리바게뜨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거에요.
골목 빵집 논란을 자본을 가진 이와 가지지 못한 이의 대결이라고 보는데, 전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동네 빵집은 적은 양이어도 손으로 만들어내는 독특한 맛, 개성을 갖고 있어야 해요. 빵은 맛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어떤 논리도 출발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단순히 팔리고 안 팔리는 문제만 얘기하죠. 전 바깥 세상에 크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닌데, 대기업이 할 수 있는 부분과 개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기자분은 제 인터뷰를 쓰지 못했습니다.
여담인데, 제가 이태원에 가게를 낸다고 하니 주변 분들이 걱정을 하셨어요. “그 앞에 패션파이브(SPC그룹이 운영하는 디저트 전문점)가 있는데 괜찮겠어?”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랬어요. 저는 그게 옷을 파는 곳인 줄 알았어요. 저는 그 정도로 시장 조사를 하지 않아요. ‘거기 가게 자리가 났으니 가서 빵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요. 일단 게을러서 뭘 알아보는 것 자체가 싫고요, 내 일도 늘 급해요. 어디가 장사가 잘되는지, 요즘 빵 트렌드가 뭔지에 대한 조사를 전혀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게 제게 엄청난 도움이 돼요. 오히려 내 것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사를 하다가 주변에 핫하다는 걸 보면, 머릿 속에 각인이 돼요. 나도 모르게 비슷하게 쫓아가게 되거든요. 모양이든 재료든 흉내내게 되죠. ‘난 반드시 개성있는 빵을 만들겠다’고 다짐하지만, 내 손이 어느새 모방을 하고 있는 거죠. 제가 주변에 빵집을 하겠다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요. 잘되는 빵집을 다 돌아다녀보고 그런 집과 똑같이 안하면 돼. 그런데 거의 불가능해요. 제가 빵집을 시작할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밖을 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것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출중한 기준을 갖고 만든 건 아니에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재료를 쓰고 만들고 싶은 빵을 만든 거죠. (중략)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욕을 많이 먹었어요. 처음엔 아침 8시에 문을 열다가 나중에 오전 11시에 문을 열었거든요. 주변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무슨 빵집이 11시에 문을 여느냐는 둥, 주인이 게을러 터졌다는 둥. 중간중간 빵을 만들다 품질이 안 나오면 그냥 문을 닫아버렸어요. 빵은 다 버렸죠. 주변에서는 ‘분명히 주인이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게는 정말 절박했습니다. 정말로 나답게 만들겠다는 목표 하나를 갖고 왔기 때문에요. 이게 무너지면 빵이고 장사고 의미없는 게 됐거든요. 원하는 빵이 안 나오면 화가 나서 가게 문을 닫고 나갔어요. 그리고 순댓국 집에 가서 대낮부터 소주를 마셨죠.
오월의종이 이태원에 낸 첫 가게는 열평 남짓에 불과하다.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몰리면서 한남동 주택가에 2호점을 냈다. [사진 오월의종] |
어느날부터 내 마음에 드는 빵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대로 시간을 지켜가며 문을 열기 시작했죠. 문은 열었는데 그렇게 반응이 좋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면 무화과 호밀빵. 지금은 정말 잘 팔리는 빵인데, 제가 이 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빵 대회에 가지고 나갔어요. 아주 혹평을 받았어요. 일본인 셰프가 “이건 빵으로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쟁반을 들고 심사위원 평가를 받는데 그 분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듣고 쟁반을 뒤집어엎고 나와버렸어요. 그런데도 노력상인지 상장은 날아오더라구요.
무화과 호밀빵은 처음엔 10개를 만들었어요. 그럼 2개가 팔리고 8개가 남았어요. 그 짓을 3년 넘게 했습니다. 호밀빵은 오래 되면 그대로 굳어요. 남은 빵이 아까워서 가게에 쌓아뒀더니 크리스마스 무렵엔 트리처럼 수북히 쌓였어요. 거기 트리 장식을 걸었더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대단하다”며 사진을 찍더라구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내 생각을 남들이 편안하게 받아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왜 안 알아주느냐가 아니라 시간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걸 몰랐던 것 같아요. 조급해하기만 했지, 시간을 갖고 가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것 같아요. 이태원에 와서도 처음엔 빵이 잘 안팔렸어요. 그런데 정말, 어느날 갑자기, 오후 2시도 안돼서 빵이 다 팔려버린 거에요. 그래서 “어, 이 동네에 행사 있었나” 하고 두리번두리번 했어요. 그날부터 지금까지 2시가 되기 전에 빵이 다 팔려버려요.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저도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어요. 정말 어느날 갑자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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